27살 대기업 직장인, 마음의 병 치유기 - 3편

회피의 순간들이 모여 큰 위기로

by 오터

이런 내 사회생활에 약의 부작용이 있으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다.

몇 천 건의 엑셀을 분석하고, 파워포인트로 제작해 보고해야 하는 업무의 반복인데 정신이 멍할 수 있다니… 있을 수는 약 부작용이었다.

의사선생님의 처방과는 다르게 약을 피했다.

아침, 점심약은 먹지 않으며 버텼고, 그렇게 지내면 저절로 내 증상들이 나아질 거라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바보 같은 짓이다.)


내가 속한 부서에서는 그룹 계열사를 대상으로 업무 프로세스, IT 관련 컨설팅을 진행한다.

현재 기업이 마주한 위기를 진단하고, 어떻게 하면 극복해 나갈 수 있을지 수많은 아이디어와 타사 벤치마킹을 수행한다.

그만큼 업무 난이도는 높은 직군이다. 엑셀과 파워포인트를 붙잡고 사는 삶은…

고객사를 대상으로 설득하는 과정, 납득시키는 과정들이 타임 어택으로 진행되며 벅찰 때가 많다.

(실제로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 하루 종일 회의실에 갇혀 있는 날도 수두룩하다.)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일하다 보면 내가 누구인지, 이 방향이 맞는 건지 수도 없이 고민하게 된다.

여기에 회식자리가 많아 술만 마시면 희롱을 하는 사람들도 허다했다.


참 힘들었다. 낮에는 공황장애 증상으로 숨 쉬기가 어려웠고 집에 돌아오면 무기력함과 우울함이 동시에 찾아왔다.

간신히 마음을 추스르고 자려고 누우면 새벽 2~3시까지 뜬 눈으로 지새웠다.


집중력에 문제가 생길까 약을 피하다니. 누군가는 독하다고 말할 것이고 누군가는 미련하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회사에서 인정받고 있는 이 순간에 마음의 병 때문에 가지고 있는 것들을 잃고 싶지 않았다.

(예를 들면 규모가 큰 사업의 경우에는 인정받는 직원들을 우선으로 프로젝트에 투입시킨다. 내가 그 인정받는 직원이었다.)


그렇게 2주를 참고 버텼더니 결국 일이 터졌다.

퇴근을 하고 잠이 오지 않아 동네를 산책하고 있었는데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한 두통이 찾아왔다.

나를 제외한 세상이 빙글빙글 돌고, 숨이 목 끝까지 차올라 죽어버릴 것 같은 느낌.

(이 고통은 ‘정신병원에도 아침이 와요’ 라는 넷플릭스 시리즈에 잘 명시되어 있다. 눈과 귀를 모두 닫고 오로지 빨대로만 숨을 쉬는 느낌이라 표현한다)


그렇게 이 추운 겨울 길에 주저 앉아 울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나 진짜 아프구나.”

그렇게 난 스스로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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