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체 누구인가?
의사 선생님의 간단명료한 말씀에 짧으면 짧다고 할 수 있는, 아니 나에겐 최선의 연속이었던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6살쯤 난 주변 어른들에게 ‘키우기 정말 쉬운 아이’였다. 친구들이 놀이터의 흙을 보면 달려갈 때 난 엄마 허락을 먼저 받는 아이였고, 흙보다는 책을 가까이한 아이였다.
그렇게 커 가며 고3을 맞이했을 때는 예민하지만 모범적인 아이가 되었다. 선생님들의 사랑을 가득 받았고, 그를 증명하듯 내 학교생활기록부는 칭찬으로 가득했다. 평범하게 학교 생활을 마무리하고 서울에 상경해 남들이 흔히 말하는 ‘인서울 대학교 학생’ 이 되었다.
대학생이 되고도 학교 수업 지각은 한 번도 한 적 없고, 성실하고 성적도 좋은 학생이 되었다. (교수님들께서 대학원을 권유할 정도였다.)
이렇게 살면 실패 없는,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 수 있으리라 믿었다.
4학년부터 코인에 대한 열풍이 불고, 영끌족들이 넘쳐난다는 기사들이 쏟아졌음에도 난 대기업 직장인이 되고 싶었다.
(사실 부모님의 충분한 지원이 있었기에 돈 욕심이 덜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내 노력 덕분이었을까? 4학년 2학기가 개강한 9월 대기업 직장인이 되었다.
꿈만 같았던 순간이었고, 부모님께는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을 안겨주었다.
회사에서는 본가로 꽃다발과 고급 쿠키세트를 보내줬고, 난 평생 효도를 다 한 효녀가 되었다.
같은 부문에 입사한 동기는 총 8명이었다. (지금은 한 명이 이직한 상태다)
동기들 나이가 가지각색이었는데 난 그중 가장 어렸다. (사실 이 뒤로 신입을 뽑지 않아 3년째 막내다)
상사분들의 자녀분들과 비슷한 또래였고, 대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채 이 어두운 취업 시장을 뚫고 합격했다는 이야기는
나의 어깨를 으쓱하게 했고 인생을 제대로 살았다는 훈장 같았다.
근데 그로부터 2년 4개월 뒤 공황장애, 우울증, 불면증이라뇨?
인생을 통째로 부정당한 느낌이었다.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괜찮은 척 약을 처방받고 복용법을 안내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엉엉 울었다. 성공한 딸, 부모님의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딸이기에 가족들에게 말도 못 했다.
정신을 차리고 처방받은 약에 대해 구글링을 해보았다.
약을 먹고 살이 엄청 쪘다는 사람들, 집중력이 미친 듯이 떨어져 퇴사를 한 사람들.
약이 아니라 독약 같았다.
당장 출근해 작성해야 할 보고서와 문서들이 생각났고, 하루종일 이어질 회의시간에 내가 집중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이때까지도 난 나 자체보다 사회적인 내 모습이 중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