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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향 Galadriel Dec 09. 2021

비밀번호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지 않는다

"어디로 가?" 하고 물어 오면, 나는 "글쎄?"라 대답한다. 세월이 흐를수록 생생하게 달려오는 내 조국 대한민국을 방문할 때, 제일 먼저 머물 곳을 두고 심각한 결정장애를 앓는 언니와 내가 대화를 시작하는 방식이다. 유달리 우애 깊은 우리 형제자매는 오빠 둘에 언니 셋, 막내인 나를 합해 모두 여섯이나 된다. 그 덕에 오라는 곳도 많고 가야 할 곳도 많다. 서로 자신의 집으로 먼저 가자고 하고 공항에도 서로 마중을 나오겠다 하니 그야말로 행복한 고민을 한다.

 

몇 년 전의 일이다. 자주 한국을 왕래하던 시애틀의 언니는 어쩌다 보니 큰 오빠 집에 제일 많이 머무르게 됐었다. 사업 실패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작은 오빠네는 안 가는 것이 도와주는 일이라며 오랜 고민 끝에 이번엔 무조건 셋째 언니네로 가자고 했다. 큰 올케 언니의 수고도 덜어줄 겸 고루고루 폐를 끼치자는 배려 아닌 배려였다.

 

난기류에 멀미까지 심하게 한 우리는 비몽사몽 간에 따라간 셋째 언니의 아파트에 짐을 던져 놓고 기절하듯 쓰러져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 보니 세 개나 통과해야 들어올 수 있는 출입구의 비밀번호를 적어두고 언니는 이미 출근을 하고 없었다. 우리는 비밀번호를 들고 요양원에 계신 친정어머니를 뵙기 위해 집을 나섰다. 아파트 문을 닫고 나가는 일은 그야말로 누워서 떡 먹기보다 더 쉬운 누워서 천장 보기였다. 옛날처럼 열쇠를 사용하지 않고 키 패드를 이용해 여닫는 출입문이니 그냥 닫고 나가면 되었다. 들어오는 것도 비밀 빈호를 알고 있으니 열쇠를 들고 다닐 일도 들고 다니다 잃어버릴 염려도 없으니 여간 편한 게 아니었다. 우리는 "우리나라 좋은 나라, 우리나라 편한 나라"를 외치며 어머니께 드릴 선물을 안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연로하신 부모님과의 만남은 누구라도, 언제라도 그렇듯, 울고 불고 얼싸안고 비비고 신파극이 따로 없다. 요양원으로 들어 가신지 1년밖에 안 되신 어머니는 다행히 건강을 회복하고 계셨지만 얼마나 야위셨는지 눈만 퀭한 얼굴은 손바닥 하나로도 다 덮일 만큼 작아져 있었다. 삼켜야 할 알약이 밥양보다 많았던 터라 평소 좋아하시던 당근 케이크도 한입 드시다 말고는 "배 불러 그만 먹을래" 하셨다. 머리를 빗겨드리고 꽃핀을 꽂아 드렸다. 꿈에도 그리던 딸 둘을 한꺼번에 만난 기쁨이 얼마나 크셨던지 진통제를 안 드셔도 통증을 느끼지 않으시는 어머니와 어머니께서 즐겨 부르시던 노래를 부르며 언니와 번갈아가며 어머니를 안고 쓰다듬었다. 신파로 시작해 재롱잔치로 마무리한 방문을 마치고 내일 새벽에 다시 오겠다며 쉬이 놓지 못하시는 어머니 손을 놓고 돌아서 나왔다. 눈물을 숨기느라 떨리는 어머니의 눈동자를 날카로운 조각도로 긁어 심장에 새기고, 머지않은 내일의 내 모습을 똑똑이 바라보면서 .


시차와 재롱잔치로 온 몸 구석 구속 남아 있는 에너지란 에너지는 다 써 버린 우리는 말없이 두 개의 출입문을 비밀번호로 열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아뿔싸! 엘리베이터를 타고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아파트 호수가 기억나지 않는 것이었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을 더듬어 나는 502호라 했고 언니는 702호라 했다. 두 사람의 기억이 각기 다르니 먼저 5층에 내려 확인하기로 했다. 집 앞에 도착해 출입문을 보니 그곳엔 키 패드가 없었다. "거봐 7층이잖아, 언니 말을 들으면 한겨울에도 꽃방석에 앉는 단말 몰라?" 하며 특유의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이는 언니를 따라 7층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웬걸, 꽃방석은 고사하고 붙어 있어야 할 키 패드가 702호 출입문에도 없는 게 아닌가. 그때부터 우리는 우왕좌왕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키 패드가 붙은 집을 찾아다녔지만 어느 한집도 키패드가 있는 집은 눈을 세 번 닦고 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하는 수 없이 업무 중인 줄 알면서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알고 보니 손잡이 옆에 손바닥을 펴서 갖다 대면 키 패드가 나타나는 최신식 잠금장치였다. 세계를 주도하는 IT 강국에, 한국인들의 수준 높은 패션 감각과는 다소 차이가 나는 탓에 시애틀 촌닭이라 불리는 언니와 밴조선(비하하는 말이 아닌 한국인의 빼어난 패션센스에 떨어지는 탓에 붙은 밴쿠버 조선족의 줄임말)이라 불리던 내가 알 턱이 없었다. 우리에겐 듣도 보도 못한 마법의 잠금장치였다. 말로만 듣던 첨단 기계장치로 무장한 선진 대한민국을 제대로 체험한 웃지 못할 사건이 되었다. 그 일로 우리는"덤 앤 더머"라는 꼬리표를 달았지만 무식하면 용감한 건지 용감해서 무식한 건지 우리는 무지 씩씩하게 잘 살고 있다. 


 언제부터 인가 우리는 자신의 집은 물론이요 컴퓨터에 셀 폰까지 비밀 번호를 입력해야 입장이 가능하고 사용이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 이곳 리타이어먼트 홈도 마찬 가지다. 정문으로 들어올 때는 두 개의 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첫 번째 문은 자동으로 열리지만 두 번째 문은 비밀번호를 입력하거나 방문자의 신분을 확인한 후 안에서 열어주어야 입장이 가능하다. 정문뿐 아니라 패티오로 나갈 때도 마찬가지다. 비밀번호는 매니저들과 담당자 외에 일반 직원들과 입주자인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모른다. 안전을 위해 필요한 조치인 것이다.

 

지난해 장미가 한창이던 6월, 할머니 몇 분이 패티오에 나가셨다. 여러 날을 연거푸 내리던 비가 그치고 화창하게 날이 개자 신선한 바람과 햇살이 그리우셨던 것이다. 패티오에는 허리까지 닿는 커다란 화분이 테이블 사이사이 놓여있었다. 그곳엔 새빨간 제라늄과 보랏빛 캄파 롤라 하얀 페튜니아 등, 봄에 심은 꽃들이 만발해 있었다. 꽃들은 며칠 동안 내린 비로 말끔히 씻은 얼굴을 햇살 아래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몇 분은 펼쳐져 있던 빨간색 파라솔을 접어 놓고 뜨거운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담소를 나누셨다.  또 다른 몇 분은 지저분해진 잎사귀며 시든 꽃잎을 따 주고 꽃 향기도 맡아가며 느긋하게 오후 햇살을 즐기셨다.

 

저녁 식사 시간이 다가오자 할머니들은 건물 안으로 들어오시려고 출입문을 밀었다. 안쪽에서 자동으로 잠긴 문은 열릴 턱이 없다. 자동 잠금장치인 걸 모르셨던 분도 있고 벨을 눌러 열어 달라고 요청을 해야 된다는 걸 잊어버린 분도 계셨다. 잠시 후 사태를 파악하신 할머니들은 깔깔 웃으며 문을 두드리고 손을 흔들어 내 주의를 끌려고 애를 쓰셨다. 나는 할머니들의 모습에 계속 눈길을 주고 있던 터라  행동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문을 열어 드리려고 유리문 가까이 다가갔지만 사라지지 않는 내 장난기가 또다시 발동했다.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고는 도대체 왜 그러시는지 모르겠다는 듯 두 손을 가슴 높이로 들어 올리고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할머니들은 처음엔 장난 인 줄도 모르고 문 여는 시늉을 손짓 발 짓에 “문 열어 줘" 하시며 고래고래 소리까지 질러가며 애원하셨다. 나도 긴 시간 장난할 여유가 없었으므로 문을 빼꼼이 열고 “암호” 했다. 내 성격을 잘 알고 자주 농담을 주고받던 앤지 할머니께서 재치를 발휘해 “I love you” 하셨다. 나는 웃으며 앤지 할머니를 안으로 들어오시게 했다. 그러자 잠시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던 할머니들도 금세 눈치를 채고 “I love you”를 연발하며 줄줄이 문을 밀고 들어오셨다. 마지막으로 평생 사랑한단 말은 해 보지도 않았을 것 같은 차가운 할머니 엔젤라까지 “I love you” 하시며 들어오셨다.

 

말도 몸도 아끼시는 엔젤라 할머니와 가족들은 오랜만에 만나도 반가워하는 기색은커녕 모두가 조용히 밥만 먹고 헤어지는 특이한 가족이다. 캐네디언들이 밥 먹듯 숨 쉬듯 사용하는 "사랑한다"는 말과 만나고 헤어질 때 당연히 하는 포옹도 하지 않는 보기 드문 가족 풍경이다. 세상의 예쁘고 다양한 색깔은 다 어디로 가고 짙은 회색만이 존재하는 우울한 가족의 식사 광경은 무성영화가 따로 없다. 배경 음악도 색깔도 소리도 없이 포크와 나이프만 오가는….


그런 풍경 속 만년설같이 차갑던 할머니께서 이젠 나와 마주치면 수줍은 미소를 보여 주신다. 눈이 녹기 시작하는 봄이면 봄 햇살에 녹은 눈이 대지로 스며들듯 미소가 번지기 시작한 할머니께서 도움이 필요하거나 말 벗이 필요하실 땐 “나도 암호 알아” 하시거나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I love you”하신다. 그러면 나는 “I love you too” 한다. I love you와 함께 은근슬쩍 어깨를 안으면 처음에 주춤하시던 할머니도 이젠 내 품에 안겨 내가 할머니를 풀어 드릴 때까지 내 가슴에 당신을 허락하신다. 그 짧은 포옹의 순간 붉어지는 눈시울을 보면 할머니는 사랑이 고프신 거다.


돌아보니 나이가 들면 필연적으로 혼자가 되고 외로울 수밖에 없는 생에 외로움을 가불 해다 쓰는 세상에 내가 살고 있다. 일인 가구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것. 이런 현상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닌 글로벌 현상이다.  언젠가부터 유행처럼 번진 욜로(YOLO)도 분명 한몫을 한 것이리라.


삼 년 전, 십 년 만에 나를 찾아온 친구 K는 "혼자여서 빨리 가고 많이 가질 수 있었는데 이 모든 것 나눌 사람이 없네"라며 씁쓸한 미소를 남기고 돌아갔다. 여자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고 평가받는 친구는 아무것도 이루어 놓은 것 없는 내 삶을 부러워했고 나는 그녀의 삶을 동경했다. 상처 투성이 고단한 삶이었지만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시는 할머니 *세라는 "사랑하고 사랑받은 내 인생, 털끝만큼도 후회 없어" 하셨다. 표현할수록 풍성해지고 퍼 낼수록 샘솟듯 솟아나는 사랑,  절대로 녹지 않는 만년설 같던 엔젤라 할머니를 녹인 암호도 사랑이었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고 모든 것을 가능케 한다 하지 않는가.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 모든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었다. 모든길은 로마로 통하지 않는다. 사랑이야 말로 유일한 길이요, 모든 길이다. 


*세라:수필 (딱 하루만)의 주인공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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