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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향 Galadriel Dec 01. 2021

내일이 없는 사람

떠나는 시간은 내가 정한다

디지털시계에 켜진 빨간색 아라비아 숫자 11:55, 어느새 반나절이 다 지나가고 있었다. '일어나야지' 하면서도 세탁을 해서 보송보송한 흰색 리넨 이불을 온몸으로 돌돌 말며 돌아 누웠다. 그때, 잠들기 전에 읽으려고 침대 옆에 두었던 책 한 권이 침대 밑으로 툭 떨어졌다. 일 년 치 일어날 사건 사고가 한꺼번에 몰려온 듯 분주했던 일주일 동안 표지만 쓰다듬다 잠이 들던 책, 림태주 시인의 "이 미친 그리움"이었다. 책갈피 속엔 내 영어 이름 ‘레이첼’이라고 쓰인 봉투가 끼워져 있었다. 받아 읽고는 한동안 잊었던…. 


삼 년 전 겨울,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삼십여 명으로 구성된 합창단이 찾아왔다. 검은색 연미복에 빨강 나비 타이를 맨 은발의 신사도 있었고 이제 막 마흔 고개를 넘은 듯해 보이는 다소 젊은 층에 속하는 남자 단원들과 검은색 긴 드레스에 빨간색 꽃 한 송이를 가슴에 달고 한껏 멋을 부린 오륙십 대 여자 단원들로 구성되었다. 두 시간여에 걸쳐 펼쳐진 공연 동안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노래를 따라 부르는가 하면 음악에 맞춰 춤을 추셨다. 한해를 무사히 보낸 것에 대한 감사와 다가오는 새해의 건강을 소망하면서 …. 


삼백 명이 넘는 거주자가 함께 살아가는 곳이라 눈여겨보지 않으면 누가 빠졌는지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공연이 무르익을 무렵 객석 맨 뒷줄 구석자리에 석고상처럼 앉으신 랄프 할아버지가 보였다. 그즈음 그 할아버지는 아무런 이유 없이 자주 식사를 거르셨다. 식사시간에 테이블에 앉아서도 소량의 음식을 주문하시고 그것도 다 드시지 않았다. 늘 마음이 쓰이던 할아버지... 한겨울 눈 속에서 찾은 매화가 그만치 반가울까. 그 어떤 공연이나 행사에 단 한 번도 참석한 적 없는 할아버지는 190센티미터가 넘는 키에 허리나 등이 굽지도 않으셨으며 청력과 시력, 거기에 정신까지 맑으셔서 102살이라고 믿기가 쉽지 않은 분이셨다. 깡 마르긴 했지만 덩치도 크고 과거도 대단해서 "자이언트 랄프"란 별명이 붙은 분... 나는 조용히 다가가 할아버지 옆자리에 앉았다. 잠시 숨을 고르고는 마른 고사리 같은 할아버지 손위에 내 손을 가만히 올려놓았다. 한참 뒤, 할아버지는 다른 쪽 손을 내 손위에 가만히 올려놓으셨다. 그렇게 공연을 지켜보는 동안 할아버지도 나도 서로의 체온으로 따뜻해져 있었다. 


공연이 끝나자 합창단과 입주민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조명도 말소리도 없이 직원들의 부산함만 남아 있었다. 그때까지 혼자 구석자리에 앉아 계시던 할아버지께 "이제 그만 방으로 돌아가세요" 했더니 “누가 나를 기다린다고…” 하시며 말끝을 흐리셨다. 이미 밤은 깊었고 큰아이를 픽업해야 했기에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가 없었다. 방까지 모셔 다 드릴 테니 일어나자 했다. 할아버지께서는 특유의 낮고 조용한 음성으로 "혼자 갈 수 있어"하시기에 “See you tomorrow” 했더니 “I don’t have a tomorrow” 하시고는 긴 다리를 옮겨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가셨다. 나에게 내일은 없다시는 할아버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셨다. 할아버지와 달리 나는 쉽게 그 자리를 떠나올 수가 없었다.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기운이 내 발길을 붙들었던 것이다. 102년의 희로애락을 등에 지고 걸어가는 뒷모습이 딸아이를 픽업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나를 따라왔다.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표현할 수 없었던 그 기운은 슬픈 예감이었다. 언제든 슬프고 불길한 예감은 나를 배신해도 좋으련만 언제나 정확히 과녁에 날아가 꽂혔다. 그로부터 이틀 뒤 크리스마스이브에 심장마비가 왔고 앰뷸런스에 실려 병원으로 호송돼 가셨지만 다시 리타이어먼트 홈으로 돌아오시지는 못했다. 할아버지는 이미 오래전에 천국행 열차표를 예매해 두고 계셨다. 


이곳에 입주 시, 입주자들은 자필로 서명한 입주자 카드를 제출하게 된다. 생년 월일과 병력을 꼼꼼하게 기술한 신상명세서다. 특이 사항 란에는 인위적인 생명 연장술에 대한 사전 선택권도 명기한다. 생명 연장술 이란 심장마비 등 위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사용, 약물 투여나 인공 영양제 투입 등 인위적으로 하는 의료행위를 말한다. 할아버지도 DNR(Do Not Resuscitate) 즉 어떠한 생명 연장술도 받지 않겠다는 본인의 의지를 표기하셨다. 밥 세끼 먹으려고 사느냐고, 모두가 떠난 뒤 홀로 남겨진 이 세상에 미련 따윈 없다고, 이제 지쳤다며 하루 바삐 사랑하는 아내 곁으로 가기를 고대하시더니 그 뜻을 이루셨다. 



얼마 전, 그림 소재를 찾다가 우연히 들어간 갤러리에서 할아버지를 연상케 하는 그림을 만났다. 19세기 독일의 초기 낭만주의 화가이며 ‘뒷모습의 인물’ 이란 용어를 유행시킬 만큼 뒷모습을 많이 그린 카스파 다비드 프레드리히의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라는 작품이다. 가파른 벼랑 위에서 안개바다를 내려다보며 고독하게 서 있는 뒷모습의 남자는 할아버지와 많이 닮았다.  연세가 말해주듯 할아버지는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낸 역사의 산 증인이었다. 한때 뉴욕의 월 스트리트를 활보하며 부와 명예를 거머쥐고 세상을 호령하던 화려했던 시간은 세월 속에 묻혔다. 뒷모습의 방랑자처럼 안갯속으로 사라져 가버린 부모형제, 친구들과 세명의 자녀,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까지 먼저 보내고 홀로 남겨져 견뎌야 하는 하루하루가 어쩌면 고통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여든, 아흔 고개를 넘기면서 삶은 떠나가고 생존만 남은 분들을 어렵지 않게 만난다. 구멍이 숭숭 뚫린 스위스 치즈 같은 가슴을 안고 혼자서 오래도록 살아남기 만을 바라는 사람이 있을까. 같은 시대를 살아온 친구들과 형제자매는 물론, 젊은 시절부터 동고동락하며 함께 자식을 낳아 기른 배우자와 엇비슷한 시기에 맞이하는 죽음으로 이 세상과의 인연을 정리할 수 있다면 이 또한 축복이 아닐까?


할아버지 장례식 후 딸이 방문했다. 일흔을 바라보는 막내딸 트레이시였다. 환하게 웃는 그녀 손에는 한 묶음의 카드가 들려 있었다. 할아버지 생전에 함께했던 모든 스텝들에게 전해질 감사 카드였다.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한다며 나에게 카드를 건네 줄 때는 잡은 내 손을 한동안 붙잡고 놓지 않았다. 나는 한 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고 다른 쪽 손으로는 그녀의 등을 꼭 끌어안았다. 친애하는 레이첼로 시작된 카드에는 “우리들의 아버지는 기쁘게 떠나셨습니다. 마지막 시간을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당신이 보여준 미소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미소는 무료한 우리 아버지의 일상 중 커다란 기쁨이었습니다.  언젠가 당신이 우리 아버지 볼에 키스해 준 것에 대해서도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아버지에게 유일하게 키스해 준 당신의 사랑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라고 적혀 있었다. “기쁘게 떠나셨다”는 첫 문장을 읽고 또 읽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삶의 시작’이라는 믿음에 도달한 할아버지와 자녀들의 마음이 이 한 문장 안에 모두 담겨 있었다. 


"이 미친 그리움"으로 나를 미치게 한 림태주 시인은 바닷가 우체국에서 그리움을 배웠다. 시인의 그리움을 빌어 한 번도 보낸 적 없는 주소지로 편지를 쓴다. "받으셨는지요? 어제는 빨간 동백꽃을 접어 우체통에 넣었고, 오늘은 내 그리움의 도착지에 계신 할아버지께 안부를 여쭙습니다. 더 이상 외롭지 않아도 되는 그곳에서 할머니 만나 행복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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