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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향 Galadriel Jan 05. 2022

그리움의 증거

안 하는 건 있어도 못하는 건 없다

매일 오후 3시가 되면 등반 준비를 하고 나타나는 분이 계신다.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에베레스트가 목표다. 하루도 쉬지 않고 모습을 드러내시는 분은 일흔일곱 살 할머니 리나다. 모서리와 손잡이가 낡고 색이 바랜 검정색 배낭을 등에 메고, 한 손에는 지팡이 다른 한 손엔 이불을 들고 나타나신다. 베이스캠프는 2층 다이닝룸 한쪽 벽난로 옆이다. 도착해서 제일 먼저 하시는 일은 등받이가 널찍한 1인용 윙 체어에 앉아 들고 오신 노란색  작은 이불을 무릎 위에 펴 덮으신다. 그런 다음 천천히 배낭을 열고 빨강, 파랑, 검은색 볼펜 3개와 두 권의 노트를 탁자 위에 꺼내 놓으신다. 마지막으로 돋보기를 쓰고 두꺼운 책 한 권을 펴서 무릎 위에 올리면 등반 준비는 끝이 난다.


꺼내 놓으신 책은 할머니 연세만큼이나 세월이 쌓인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다. 할머니는 매일같이 ‘율리시스’라는 산으로 등반을 떠나신다. 방대한 량은 제쳐 두고라도 난해한 문장과 서술 방식에 영문학 전공자들조차 쉽게 도전하지 않는 장편 소설이다. 그래서 혹자는 율리시스를 에베레스트에 비유했나 보다. 뭐 좀 아는 척, 책 좀 읽은 척하고 싶던 시절, 척하고 싶던 마음에 도전했다가 반도 못 읽고 포기했던…. 재미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런 미로 같고 엉뚱한 소설에 시간을 바치고 싶지 않다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달아놓고 맘 편히 내려놓은 소설이다. 나의 지적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선택했다가 반도 오르지 못했던 산 율리시스를 할머니는 벌써 세 번째 오르고 계신다.


율리시스는 아무런 준비 없이 오를 수 있는 마을 뒷산이 아니란 걸 읽어본 사람들은 안다. 상당한 체력과 인내심, 사전조사와 기술을 필요로 한다. 히말라야 고산 베이스캠프에서 자신의 젊음과 체력을 앞세워 무모하게 도전한 젊은 근육들이 중도에 포기하고 돌아설 때, 할머니는 자신만의 보폭으로 뚜벅뚜벅 쉬지 않고 올랐다. 철저한 준비와 77년 쌓인 인생 내공이 할머니의 속도에 맞춰 함께 걷는다. 읽고 계신 책을 슬쩍 넘겨다보았다. 인쇄된 활자보다 할머니가 달아 놓은 해석과 주석이 더 많은 페이지도 있다. 두 권의 노트에는 소설 속 등장인물에 대한 분석은 말할 것도 없고 아일랜드의 역사와 문화 뼈대가 되는 오디세이아의 배경과 등장인물에 대한 기술이 바둑판처럼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저것만 있으면 나도 오를 수 있을 것 같은 욕심이 스멀스멀 목구멍을 타고 올라온다.


리나는 37년을 호텔리어로 일했다. 직장일을 하며 홈리스를 위한 자원봉사를 했다. 봉사자들 중 자신에게는 없는 유머와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레스토랑을 운영하던 남편은 잘 생기고 로맨틱했으며 경제력도 있었다. 무엇보다 독서가 취미인 두 사람은 대화가 통했다. 만날 때마다 서로에게 책을 선물하던 그들은 만난 지 5개월 만에 " 완벽한 소울 메이트"라는 확신이 들었고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다. 완벽한 소울 메이트라며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결혼식을 했지만 부부의 사연은 부부밖에 모른다는 말은 그들을 두고 한 말인지 좋은 날도 많았지만 싸운 날이 더 많았다. 영원히 함께하자 맹세한 지 십 년이 안돼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남남이 되었다.


아홉 살이던 딸과 일곱 살이던 아들도 부모의 이혼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다행히 남편이 양보한 집이 있었고 매달 보내주는 양육비와 든든한 직장이 있어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었다. 친정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고 홀로 계시던 아버지를 모셔와 함께 살았다. 아버지는 모셔오던 해에 발생한 암으로 고생하시다가 큰 딸의 고등학교 졸업식을 일주일 앞두고 돌아가셨다. 수월하게 커준 딸은 대학생이 되면서 자연스레 독립을 해 나갔다. 큰딸과 달리 아들은 부모들의 이혼 후 마음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소식도 없이 집을 나갔다. 그때 나이가 열아홉이었는데 일 년에 한 두 번 전화를 걸어올 뿐 찾아온 적이 없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어차피 인생은 혼자 왔다 혼자 가는 길 이잖아”라고 무심한 척 가벼운척, 툭 던지셨다. 가볍게 던진다고 가벼운 것도 무심한 척한다고 무심할 수 없는 존재가 자식이다. 평소보다 유달리 빨라진 말의 속도는 무심할 수 없고 부정할 수 없는 그리움의 증거다.


아버지가 떠나시고, 아이들도 떠나자 그토록 갖고 싶었던 혼자만의 시간이 찾아왔건만 기쁨보다 공허감이 더 크게 밀려왔다. 승진을 하고 부러움을 사며 다니던 직장일도 시큰둥 해지고 "이렇게 일만 하다 죽나? 어차피 죽을 건데 왜 아웅다웅 살아야 하나?" 하며 수많은 불면의 밤이 찾아왔다. 이렇게 살아도 한평생, 저렇게 살아도 한평생 "누가 나한테 관심 있다고 멋져 보이는 삶을 살아? 내 맘대로 살자"싶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볼 겨를 없는 타인의 시선에 굿바이를 날리고, 밤새 쓴 사직서를 출근하자마자 미련 없이 던졌다. 


구석구석 추억이 묻어 있는 집, 관리하느라 힘도 들고 돈도 드는 큰 집을 팔아 조그만 원룸 아파트로 거처를 옮겼다. 이불과 베개만 꺼내 놓고 배낭 하나 달랑 메고 꿈만 꾸던 유럽으로 날아갔다. 2개월에 걸친 긴 여행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여독도 풀리기 전에 자신이 사랑한 헤밍웨이의 흔적을 찾아 또다시 쿠바로 날아갔다.  헤밍웨이가 담갔던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그가 마셨던 칵테일 ‘모히또’를 마셨다. 하룻밤 짧은 사랑도 해봤고

밤새도록 여행자들과 어울려 춤도 춰 봤다. 밥 한 끼만 사 달라는 가난한 여행자에게 속아 지갑을 몽땅 털리기도 하고 수영을 하다 파도에 휩쓸려 죽을 고비도 넘겼다. 많은 사람들이 꿈에서나 하는 말 "난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살았어” 하셨다.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원하는 여행, 원하는 삶은 늘 ‘언젠가’로 미룰 때, 다 쓰지도 못할 노후자금을 걱정하며 일을 하고 돈을 모으는 대신 "일단 저질렀어"하시며 "내가 살면서 제일 잘한 일이야" 하신다. 많은 이들이 죽음을 선고받은 뒤에나 할 수 있는 일들을 '지금 당장'으로 옮기는 행동대장이시다.


쿠바에서 돌아온 후, 예전에 남편과 했던 자원봉사를 다시 시작했다. 밤이면 읽고 싶었던 책과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며 허리둘레 걱정에 참았던 아이스크림을 먹고 도너스를 먹었다. 그런 여유와 행복도 잠시, 69세가 되던 해에 봉사활동을 다녀오던 중 음주 운전자에 치이는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몇 번의 수술을 받고 오랜 시간 재활치료를 받았지만 오른쪽 다리가 제대로 펴지지 않아 지팡이 없이는 걷는것이 불편하시다. 일상생활이 불편해 지자 모든 걸 정리하시고 이곳 리타이어먼트 홈에 입주하셨다. 낮에는 책을 읽고 친구가 필요한 사람에게 수화기 너머로 책을 낭독해 주는 봉사로 즐겁게 사신다. 


기나긴 밤에는 뜨개질을 하고 자서전을 쓰신다. 자서전을 출간할 때 추천서를 부탁하신다며 보여주신 노트가 세 권이나 된다. 불행히도 필기체로 쓰신 그림 같은 글씨는 읽고 이해하기가 율리시스 수준이다. 나에겐 또 하나의 에베레스트다. 그러니 출간하신 후 독자의 영광을 달라고 거절하는 수밖에 …. 킬링 타임용이라 하시지만 할머니의 뜨개질은 그 솜씨가 정말이지 대단하다. 알록달록 이불은 물론, 애기들 옷 가지며 가방에 인형까지 얼마나 예쁜지 모두 다 가지고픈 유혹에 바늘이 있으면 무릎이라도 찌르며 사고픈 충동을 참아야 한다. 그렇게 예쁜 작품들은 일 년에 두세 번 열리는 바자회 때 인기리에 팔려 나간다. 거의 모든 작품이 다 팔리는데 판매 수입금 전액을 불우 이웃 돕기에 기부하신다. "다리가 못하면 손이 한다, 손이 못하는 건 입술로 한다" 그것이 그녀 삶의 방식이며 모토(Motto)다.


봄이 되자, 지난해 가을 집안으로 들여놓으면서 가지치기를 해준 벤자민이 새 가지를 내밀었다. 잘린 가지 옆으로 싱싱하고 건강한 나뭇가지가 두 개나 팔을 뻗는다. 할머니는 새로 나온 벤자민 나뭇가지가 태양을 향해 팔을 뻗어 나가듯 새 길을 만들어 가신다. 커피 한잔에 한 조각 빵이 전부인 아침도 즐겁게 드시고 감사하게 드신다. 안 하는 건 있어도 못하는 게 없는, 날마다 등반을 떠나는 빛나는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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