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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북이 Nov 22. 2023

스물다섯, 그리고 연애 #6

점, 선, 그리고 면

'우리'라는 그래프의 일치율이 100%에 가깝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어떠한 어려움 없이 영원히 단짝이 될 수 있을 텐데. 이 헛된 기대는 내게 실망만 불러온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시작했다. 끔찍한 기억은 여전히 이따금씩 떠올라 나를 괴롭히지만, 나는 이 사람은 다를 것이라고 나를 안심시키며 그 고마운 마음을 받아들였다. 나는 나를 바꾸는 게 참 쉬운 사람이었다. 갈등을 두려워했고, 피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번의 도전에서 나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두 사람이 몇 십 년간 다른 세상을 살아왔음은 그만큼의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인정’의 과정을 견디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난, 회피하기보다는 그 사람을 더 알기 위해, 더 사랑하기 위해, 당신의 마음속에 파고들어 가고자 했다.


중학교 1학년 수학 교육과정에서 우리는 모두 점, 선, 그리고 면에 대한 내용을 학습하였다. 점이 모여 선, 선이 모여 면이 되는 것. 우리의 관계도 이와 같다. 작은 말, 행동이 모여 ‘우리’를 이르는 것. 관계는 이처럼 아주 작은 '점'들로 구성되어 있다.

 

 당신을 알기 위해 나는 오늘도 당신을 관찰한다. 첫 번째는 눈으로 시작. 맑고 큰 갈색 눈동자가 인상적이다. 보기 드문 소처럼 선한 눈망울이 마음에 든다. 두 번째 차례는 당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 무례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솔직하고 당당한 당신의 말이 좋다. 마지막은 행동. 내가 힘들까, 어디 아플까 걱정만 가득한 당신의 배려가 고마웠다. 이 모든 점들은 당신과 나를 이어주는 선이 되었다. 이 선이 모이면 면이 되겠지. 면이 되었을 때의 우리는 더 행복할까. 혹은 선이 끊어지고 우리는 다시 두 개의 개체가 되어버릴까. 과거의 기억에서 여전히 허우적대지만, 그럼에도, 당신이 주는 사랑에 나는 이 공포를 조금씩 덜어내려 한다.


실험실에서 도출한 값을 그래프로 그리고자 할 때, ‘Q-test’ 처리를 한다. 그려진 선형의 그래프에서 특이한, 튀는 값을 입력해야 할 때 이 값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우리 관계에서 잘 그려지던 선형 곡선에 떨어져 있는 그 '점'은, 버려야 할까, 그대로 두어야 할까.


 연애에서 좋은 순간만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름을 인정하는 과정에서 갈등상황이 생기고,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분명히 생긴다. 나 또한 그렇다. 나의 가치관에서 벗어난 행동을 보이면 그것은 ‘특이한 점’으로 인식된다. 그리고 나만의 Q-test를 진행한다. 내가 이를 받아들일 것인가, 도저히 그럴 수 없는가. 신뢰도가 높은 선형 그래프를 그리고자 하면 Q-test 처리는 엄격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연인이라는 관계를 생각해 보자면, 그토록 쉽게 포기할 당신이라면, 나는 애초에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튀는 점’을 포용하고자 한다. 신뢰도 100%의 그래프란 존재하지 않음을 알기 때문에. 완벽은 존재할 수 없으며, 그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현재 ‘확인’되었기에 나는 신뢰도를 낮추면서 그 점들을 포용한다. ‘당신’이라는 그래프의 신뢰도가 얼마나 낮아질지는 모르겠다. 그 ‘특이한 점’들이 일반적인 점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다. 당신은 내 영원한 짝이 될까 아니면 그저 잠깐 불어 지나가는 봄바람이 될까. 내 모든 것을 보여주어도 당신은 여전히 당신일 것인가. 수많은 질문이 머리를 스쳐가지만 난 당신에게 집중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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