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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북이 May 24. 2023

스물다섯, 그리고 연애 #3

석양 이후에

5월 중순 오후 10시. 드디어 해가 지기 시작한다. 붉게 물들어가는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자면, 이 태양이 영원히 그 자리에 멈춰주길 바랄 만큼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태양이 지고 나면 그 자리에는 무엇이 남아있는가.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 중 하나는,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을 때이다. 사랑에 빠진 순간만큼은 그와 내가 세상의 주인공이 되고, 다른 사람은 ‘우리’라는 무대의 조연이 된다. 내가 그리는 미래의 모든 순간에 그가 있었으면, 과거에도 그가 존재했으면 하고 바란다. 달콤한 초콜릿이 입에서 녹는 장면이 상상된다. 이 단맛이 영원히 지속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 하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이 달콤함은 아주 잠깐임을. 그러나 우리는 그 잠시를 위해 모든 것을 감내하며 몇번이고 사랑에 빠지고자 한다. 해가 매일 지고 뜨는것처럼 어두운 밤 이후에는 밝은 낮이 찾아올까 하는 희망을 안고.


석양이 하늘을 뒤덮은 순간은 모든 것이 알록달록 물들어있다. 그러나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면, 하늘의 민낯이 드러난다. 분홍색 솜사탕 같던 구름은 다시 회색으로, 빨간색에서 하늘색으로 찬란히 물든 하늘은 다시 단색으로 돌아간다.


 밝고 찬란했던 사랑이 마침내 끝나고 나면, 우리는 늘 그랬던 것처럼 어둠속에 혼자가 된다. 달콤함에 취했던 그때를 그리워하면서. 밋밋하고 컴컴한 밤하늘을 쳐다보면 그것이 마치 텅 빈 나의 마음 같다. 내 마음속의 커다란, 태양처럼 어디서든 비추던 열정이 갑자기 사라진 느낌. 당신이 나를 사랑해 주던 그 순간들 또한 삶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인연의 끝을 맞이하고, 내 전부를 잃은 느낌이었다. 세상에 나를 혼자 두고 당신만 떠난 것 같았다. 난 다시 반복될 이 순간이 그토록 두렵다. 누군가를 다시 사랑하게 된다면, 또 상처받지 않을까. 그리고 끝은 다시 정해져 있겠지. 하는 생각. 내 모든 것을 쏟아부었으나, 결국은 끝을 맞이했던 인연들이 반복해서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그래서, 누군가가 한 걸음 다가오면, 나는 두 걸음 물러난다. 다시는, 다시는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석양뒤의 어둠이 무서워서.


 나도 한때는 쉽게 사랑을 약속했었다. 그리고 그것을 굳게 믿었다. 그러나 내가 모든 것을 주어도, 상대방에게 나는 삶에서의 ’선택사항‘ 불과했고, 그들은, 당신이 가진 것에서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면, 늘 나를 선택했었다. 난 또 버려질까 두려워 도망만 다닌다.


 누군가의 ‘선택사항’이 된 기분을 상상해 보았는가. 내가 무엇을 잘못했지, 내가 어디가 잘못된 것이지. 스스로에게 수없이 질문했다.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옵션(Option)’이었을 뿐이다. 불필요시 ‘취소’ 가능한.


 나에게 다시 용기가 생겼으면 한다. 전부를 쏟아부어 사랑할 수 있는 용기 말이다. 도망만 다니고 싶지 않은데, 자꾸만 그렇게 된다. 다시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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