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그리고 가을은
10월의 하늘은 너무나 아름답다. 푸르고 높은 하늘을 보고 있자면 세상의 고민이 모두 사라진 듯, 초월적인 느낌마저 든다. 여전히 따스한 햇살과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 모든 게 완벽해 보인다.
4개월간의 기나긴 회복 끝에, 드디어 누군가를 사랑해 볼 용기가 생겼다.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맸다. 분명 ‘그’보다 나은 사람이 많이 존재했다. 마음을 열고 둘러보니,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참 많았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고, 대화하고, 어울렸다. 반복되는 만남에서, 약간의 기대와 설렘이 가을의 햇살처럼 나의 온몸을 내리쬐는 것만 같다. 하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늘 두려움을 외쳤다. 따사로운 햇살 사이에 잠시 불어오는 찬 바람에 섬 짓 놀라듯이. 그 바람이 나를 따뜻한 온기에서 벗어나게 만들었다. 내가 진짜 나를 드러내는 순간 이들이 모두 나에게 등을 보일 거야. 이전의 관계처럼, 여러 핑계를 들어가며 나를 멀리하고 결국은 이별을 통보하겠지. 나는 또다시 버려지겠지. 다 똑같아. 이렇게 모든 이성이 같은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스스로 단언해 버렸다. 어느 순간부터 허물어질 수 없는 거대한 벽이 생겨버렸다. 이 벽을 허물면 난 다시 무너지고 또다시 그 고통의 시간이 찾아올 거라는 불안함만이 나를 꼭 채우고 말았다. 그 기분 좋은 따사로움은 몇 번의 사고과정 끝에 공포로 변하였다.
가을은 앞으로도 가을로 불릴 수 있을까. 요즘의 날씨를 보아하면 가을은 여름과 겨울 둘로 갈라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동전을 뒤집듯이 휙휙 바뀌는 날씨에, 마지막일 수 있는 가을을 더 느끼고 싶다.
즐거운 대화에 마음속까지 따끈해져도, 우리 사이의 자그마한 오류에 나는 단숨에 차갑게 식어버린다. 이렇게 나의 벽은 견고해졌다. 나의 친구, 가족 외에는 누구도 벽을 허물 수 없도록 단단하게 문을 걸어 잠갔다. 누구를 만나도 나의 100%를 보여주지 않았다. 나는 바닥에 놓인 동전이 되고자 했다. 누구도 내 뒷면을 볼 수 없게.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들었다. 내가 싫어하는 주제에도 웃어 보였으며, 결코 나를 내어주지 않으려 애썼다. 피상적임과는 정 반대인 나에게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또다시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그러자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은 거대한 성벽을 기웃거리다 그저 지나가거나 문을 두어 번 두드리다 이상하다며 발걸음을 돌리기를 반복했다. 그때마다 마음이 동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이게 나를 지키는 방법임을 확신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