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라, 기다림
북유럽의 가장 큰 선물은 오로라가 아닐까 싶다. 초록, 보랏빛으로 밤하늘을 물들이는 오로라를 보고 있으면, 내가 마치 신비한 나라에 있는 것만 같다. 하지만 오로라를 목격하기 위해서는 가장 맑은 날과, 가장 어두운 밤과, 오로라의 세기가 강한 날이 겹치기를 기다려야 한다. 기다림의 끝에서 우리는 오로라를 끝내 볼 수 있을까.
“오늘 하루도 잘 보내.”
매일 아침마다 확인하는, 하루에 한 번 오는 연락이지만 늘 같은 말. 이 한 줄은 나를 너무나 무력하게 만들었다. 내가 어떤 답장을 해도, 내가 얼마나 많이 연락을 보내도 돌아오는 답장은 언제나 이 한 줄이었다. 내가 보낸 메시지를 확인은 했는지. 그저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반복해서 보내며 살아있음만을 확인시켜 준다.
그는 누구보다, 나에게만은 다정한 사람이었다. 내가 교환학생을 위해 핀란드로 떠날 때만 해도, 그는 수십, 수 백번의 연락을 매일 주고받을 정도로 나를 사랑하고 걱정하고 보고 싶어 했다. 나를 다정하게 불러줬고, 매일 전화를 했었고, 서로의 모든 일상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우리의 ‘대화’는 사라졌다. 어느 순간부터 힘들다, 피곤하다 등의 말을 남긴 채, 내 일상에서 안개처럼 서서히 사라져 갔다.
전화 또한 소용이 없었다. 수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자느라 못 받았다는 답장이 태반. 처음에는 화가 났다. 내가 왜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정말 이해하기 힘들면서도 너무나 그 사람을 원했다. 반쯤 포기했던 순간. 드디어 연락이 닿았다.
“출근 중이야?”
“응. 아침부터 일이 많네.”
“그래. 오늘도 힘내요. 요새 연락이 잘 안 되네.”
“미안, 피곤해서 먼저 잤어.”
“문자 한 번은 남겨줄 수 있지 않을까.”
“나 번아웃 증후군이 시작된 것 같아. 지금은 연애할 여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 나를 아직 좋아하는 건 맞아?”
“그러니까 지금 전화받았겠지. 근데, 지금 네가 울면서 전화하는 것, 나에겐 정말 지치는 일이야.”
“알겠어. 힘내란 말도 안 할게. 그냥 기다릴게.”
강한 감정은 신체 부위가 아프다는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난 매일 아팠고, 이날은 아픔을 참기 어려웠다. 심장을 누군가가 찌르고 쥐어짜는 느낌이 들었고, 숨을 쉬기 어려웠다. 항우울제 복용이 부족했나 싶어서 하루분량을 더 먹어봤다. 그래도 나아지지 않았다.
상황을 잊으려고 갖가지를 시작했다. 브런치 연재를 비롯해서, 피곤해도 친구들을 더 만나고, 밖에 나가고, 장을 보고. 반쯤은 멍한 상태로 모든 일을 해냈다. 감정을 숨기는 것은 마치 폭우를 댐으로 막는 것과 같아서, 언젠가 범람하게 되어있다. 이런 연애를 억지로 이어 간지 한 달 반쯤 지났을 때, 내 기다림의 댐은 찰랑임을 넘어 범람하기 시작했다. 사랑이라는 감정의 우물은 가뭄이 한창인 것처럼 말랐는데, 기다림의 댐은 흘러넘치고 있었다. 그래도 그 사랑이란 우물은 결코 사라지지 않아서, 그게 나를 더욱 괴롭게 했다. 이렇게 마음이 아프고 힘든데도 왜, 도대체 왜 그 우물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지.
감정을 흘려보내려 노력했다. 글도 자주 쓰고, 혼자 생각하는 시간도 가졌다. 그래도 안 됐다. 폭식증이 다시 나를 찾아왔다. 내가 먹는 게 무엇인지도 모른 채, 많은 음식을 입게 구겨 넣기 바빴다. 그리고는 술을 마셨다. 처음에는 기분이 좋았지만, 술을 마셔도 해결되는 것은 없었다. 또다시 폭식증, 그리고 술. 일주일간 이 패턴이 반복되었다.
마침내 이별을 통보받았다. 당신은 전부터 준비했던 이별이었다고 한다. 기나긴 기다림의 끝에, 오로라를 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나는, 이것이 나의 환상이었음을 깨달았다. 당신은 이미 이토록 긴 당신만의 불행에 지쳐있었고, 내가 해줄 수 있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