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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북이 Nov 28. 2023

스물다섯, 폭식증 그리고 우울증 #10

중간(中間)

Delayed gratification, or deferred gratification, is the resistance to the temptation of an immediate pleasure in the hope of obtaining a valuable and long-lasting reward in the long-term.

Wikipedia


 '마시멜로 실험'이라고 하면 대부분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미래의 보상을 위해 현재의 충동을 억제하는 것. 내가 나태함에 물들어 있을 때, 나에게 부재했던 또 하나는 바로 '충동조절'이었다. 부끄럽게도 성인이 된 후에 조차 나 스스로를 완벽히 통제할 수 없었다. 체중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내 우울감의 시작이었지만, 나를 되찾는 과정에서 내가 생각하는 선을 넘어섰다. 내가 나의 충동을 조절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나는 늘 내가 하고자 하는 쪽의 손을 들어주었다. 체중조절 중 먹고 싶은 음식을 먹지 못했을 때, 새벽에 잠이 들지 못해 아침까지 깨어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래서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지 않으면 또다시 불면증에 시달릴 거야."라는 합리화를 하며 과식을 하고 잠든 나날이 몇 개월간 반복되었다. 항우울제를 복용하며 기분이 시시때때로 변하던 때에는 "지금 내가 쉬지 않으면, 지금 내가 나의 기분을 좋게 만들지 않으면 더 우울해질 거야."라며 또다시 변명을 늘어놓기 바빴다. 극단적으로 단기적인 쾌락에 집중하고 나를 위로하는 것이 먼저였던 나는, 이제야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체중은 몇 달 사이 4kg이 증가했으며, 잦은 야식으로 인해 얼굴은 늘 부어있었다. 해야 할 일은 마감 직전에 허덕거리며 마치는 게 대부분. 그 '합리화'가 내 마음의 여유를 찾아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다르게, 모든 것이 망가져가는 내 모습을 보며 절망스러웠다.


 모든 것은 내 손에 달려있다. 나의 성취, 인간관계. 정말 나만 바뀌면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 그래서 하루 루틴을 바꾸는 것부터 시작했다. 멜라토닌을 복용해서라도 밤에 반드시 잠에 들고자 했다. 새벽에 잠들고 낮에 일어나는 루틴에서 벗어나는 게 가장 중요했다. 낮에 해야 할 일을 최대한 마무리하고, 늦은 시간 운동을 하는 것도 자제했다. 그 결과 하루가 정말 길어졌다. 아침식사를 하고 차 한잔을 마시며 천천히 등교 준비를 했다. 피곤에 찌들어 학교에 가곤 했던 내가, 학교 가는 시간을 기다리게 되었다. 수업시간에 듣는 내용이 흥미로워지고, 다양한 사고를 할 수 있을 만큼의 에너지가 생겼다. 이 작은 노력이 내 삶에서 이렇게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중고등학생 시절부터, 나는 늘 '중간'이 어디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나와 친구들을 비교하기 바빴다. 공부는 몇 시간씩 하는 게 '보통'인가, 잠은 몇 시간 자는 게 '보통'인가. 그 중간을 맞추는 게 내게는 참 어려웠다.


 눈 깜짝할 새 지나간 1년. 그동안 너무나 많은 것을 배우고, 그로 인해 발전했다. 나를 밀어붙이기도, 적당히 타협도 해보았다. 수시로 채찍질을 하던 삶은 나를 피폐하게 만들었고, 타협만 하던 삶은 나를 게으르게 만들었다. 이 극단적임에 지친 나는 채찍과 당근의 수직선에서 가운데를 찾고자 했다. 때론 조금 너그럽게, 때론 엄격하게 나를 다루어가며 삶에서 '중간'이 어디인가에 대한 정답에 가까워지고 있는 듯 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나의 중간에 대한 수렴이 당신이 보기에는 중간에 못 미치거나 중간 이상일 수 있을 것이다. 이 '중간값'은 비교 가능한 값이 아니다. 개개인에게 부여된 고유의 값이다. 이 개념에서 '비교'는 그 의미를 잃는다.


 나처럼 20대 중반을 지나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 자신의 길을 찾은 친구들도 많고, 나처럼 길을 잃었던 사람, 지금도 헤매고 있는 사람 등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정답은 없다. 정답이 있다면 모두 그 길로만 걷지 않았을까. 우리가 사는 세상 속에 다양한 사람들은 마침내 자신만의 길을 찾고 그곳으로 발을 내디딘 것이다. 길을 잃어도 좋다. 주저앉아 울고 싶으면 울어도 좋다. 다만 나와 당신 모두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 삶의 바다에서 내가 헤엄치고 싶은 곳으로 발버둥이라도 쳐보면, 저 멀리 보이던 뭍이라도 조금씩은 가까워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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