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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북이 Nov 23. 2023

스물다섯, 폭식증 그리고 우울증 #9

마주하고 싶지 않았지만

게으름. 내가 인지하지 못한 채 나의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이것은 내 모든 슬픔의 근원이었다. ‘게으름’은 늘 내가 나의 이상향에 닿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다시 그 깊디깊은 무기력에 빠질까, 나는 내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았다. 아주 사소하고 작은 것 또한 나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다는 생각에 아무것도 나를 건드리지 못하게 했다. 시작은 체중계를 두려워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내 몸무게를 직면하고 받아들일 용기가 없어 그것을 내 눈앞에서 치워버렸다. 그다음은 사람들이었다. 나의 외모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을 일부러 피했다. 내 입장에서 그들은 내게 고의로 상처를 주고자 하는 사람들로 인식되었고, 그들의 솔직함은 내게 오직 무례함으로 받아들여졌다. 또 다음은 거울. 나를 속일 수 없는, 나를 적나라하게 비추는 거울조차 싫었다. 그것의 정직함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 더욱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나를 정확하게 바라보아주는 모든 것을 차단했다. 몇 년간, 나는 달콤한 위로에 중독되어 있었다.


도파민 효과는 쾌락 및 보상과 관련된 뇌 영역에서 크게 나타난다. 보상은 행동을 통제하기 때문에 우리는 도파민을 방출하는 행위를 반복한다. … 강한 단맛이 유발하는 보상 효과는 코카인도 뛰어넘을 정도다. … 즉 설탕 섭취를 포기하는 선택으로 심리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불쾌감을 느낄 수 있다는 뜻이며, 어떤 사람들은 식단 개선 이 더 어려울 수도 있다. 이런 증상에 대한 근거는 뇌의 '보상경로'와 관련 있을 가능성이 높다.

James Brown, Aston University in Birmingham


 달콤함은 나를 중독시켰다. 스스로 도파민을 쫓은 결과, 당류가 들어있지 않은 것은 전부 무시해 버렸다. 나는 헨젤과 그레텔처럼, 설탕 부스러기를 쫓기 바빴다. 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나를 더 발전시켜 줄 씁쓸한 것들을 피하고자 했다. 그 결과 나는 내가 발걸음을 멈췄던 자리 근처만 맴돌았다. 늘 하던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좇았기 때문이다. 이런 내 모습을 인지하고 나니, 후회스러움에 마음이 갑갑했다. 우울증이라는 감정의 공포 때문에 내가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걷어찼다는 사실에 나 자신이 더 싫었다.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우울증이라는 감정 또한 자기 위로와 ‘게으름’에서 파생되었다는 것을. 내 게으름이 나를 실망시켰고, 내가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사라지게 했다. 그 결과 내 삶에서의 ‘도전’과 ‘발전’은 서서히 사라져 갔던 것이다. 이 사실을 알면서도 외면했던 나는, 100%의 노력 이하에서 우울감의 굴레에 갇혔다.


Changes
They might drive you half insane
But it’s killing you to stay the same
But it’s all gonna work out
It’s all gonna work out someday
Moments living with your eyes half open
You’ve been thinking about these changes
It’s all gonna work out
It’s all gonna work out someday

"Changes" Lauv


 2018년. 재수생이었던 기억을 떠올려 본다. 그때 내가 늘 되뇌던 말은 “포기만 하지 말자.”였다. 내가 포기하지 않고 잡고 있으면 어떤 결과든 “결과”라는 게 돌아오니까. 그래서 나는 스트레스에 체중이 22kg이 감소하면서도, 머리카락이 조금씩 빠지면서도 꿋꿋이 버틸 수 있었다. 이번 학기에는 그때와 같은 목표를 설정했다. 내 기분, 내 상황과 상관없이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을 포기하지 말자고. 이 끈을 놓지 않고 버티고 난 후의 결과를 받아들일 용기가 생겼다. 그 결과가 아름답지는 않더라도, 나는 전보다는 단단한 사람이 되었을 테니. 나는 겁쟁이로 그 자리에 남아있기보다는, 현재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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