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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북이 Sep 05. 2023

스물다섯, 폭식증 그리고 우울증 #7

오늘 나의 가치

0과 1의 확률에서 사람들은 대개 0이나 1에 집중한다. 0.7 따위의 숫자는 얕보이기 십상이다. 삶은 늘 최고점을 유지할 순 없다. 0과 1 사이의 무수한 실수로 이루어진 삶을 단순한 숫자로 나타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0.98일 때의 나도 존재하고, 0.34인 나도 존재한다.



 이런 모든 순간에서 나의 가치가 모두 다르게 생각된다. 폭식을 한 어느 날 나의 가치는 0.1 숫자 그대로. 이 날의 나는 예쁜 옷을 입을 수 없고, 밖에 나갈 수 없다. 다음날 또한 폭식을 했다면 0.05. 이날은 더욱 가혹해진다. ‘거울을 보지 말 것.’ 이날에는 지침이 하나 추가된다. 집에 있는 모든 거울 앞에서 눈을 피하고, 휴대폰 화면도 조심한다. 간혹 0.03인 경우에는 단식을 한다. 나에게 매일 스스로 매겨지는 점수는 나를 수시로 조였다 푼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밉기도, 한심스럽기도 하다. 그 간단한 것, 적당히 먹는 게 그토록 어려워 이렇게 나에게 벌을 주는지. 이해할 수 없다가도 체념하게 된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어떻든, 실수를 하든 성공을 하든 고쳐주고 축하해 주는 이들이다. 하지만 나 자신이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질 때면, 소중한 이들에게 벽을 세우고 만다. 나를 작은 방에 가두고 모든 것을 잊고자 한다. 나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지우고자.


수많은 일상이 나를 위협한다. 인간관계, 해야 할 공부, 일. 스케이트보드를 탈 때 자그마한 돌이 나를 넘어지게 만들듯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주 사소한 것들이 나를 무너뜨린다.


 항우울제를 매일 복용해도, 한 달에 한번 이상 찾아오는 이런 날을 견디기는 여전히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질 것이기에, 나의 삶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에, 불안해 떨면서도 이불 끝을 잡고 끝내 버텨낸다. 분명 다시 불행으로 빠질 것이지만, 반드시 나올 수 있다는 믿음으로 스스로 지지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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