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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북이 Apr 23. 2023

스물다섯, 폭식증 그리고 우울증 #5

구름의 그림자

구름이 드리우기 전, 태양은 그렇게 뜨거울 수 없다. 한국에서보다 훨씬 높은 떠 강하게 비추는 태양은 나의 머리카락을 따끈하게 데운다. 영상 10도 언저리의 날씨에도 포근함을 느끼게 해 준다.

 잘 해내고 있었다고 믿었다. 나는 6개월간 매주 심리상담을 받았고, 운동도 꾸준히 했다.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더 가졌으며, 여러 가지 공부를 하기도 했다. 자격증도 따고, 토익 점수도 올렸다. 체중은 과체중에서 정상체중의 범위로 돌아왔고, 음식을 생각하는 시간도 현저히 줄었다. 그래서 새로운 것을 도전하고 싶었다. 나는 더 나아가고 싶었고, 내가 나아졌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때의 나는 맑은 날 만이 존재할 것으로 기대했고, 바랬다.


맑은 날에도 구름은 늘 내 시야에 존재했다. 때로는 비행운으로, 때로는 층운이나 적란운으로. 구름은 태양 주위를 맴돌다 갑작스레 태양을 막아선다. 그 작은, 한 점의 구름이, 지구 지름의 109배에 달하는 거대한 태양 에너지의 도달을 방해한다.

 그 증명으로, 나는 일을 하기로 했다. 나는 생활스포츠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피트니스 트레이너로 일을 시작했다. 나와 같이 운동, 섭식장애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돕고 싶었다. 제삼자의 눈으로 보기에 그 직업은 그토록 빛나 보였다. 자기 관리를 하면서 그것이 직업이 되는 삶. 이것이 얼마나 달콤해 보였는지. 그래서 구인광고에 지원을 했고, 운 좋게도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일은 나의 상상과는 달랐다. 경력도, 실력도 부족했던 나는 한 달간 수업이 전혀 없었으며, 저녁시간조차 없이 7시간 내리 근무를 했다. 내가 하는 일은 회원 등록과 간단한 청소가 다였다. 너무 힘들어도 웃어야 했고, 가끔씩 오는 공격적인 회원들과 마주해야 했다. 새 일상이 폭식증 재발의 시발점이 되었다.


 퇴근시간이 11시라면, 나는 미리 음식을 주문해 두고 집에 가면 그것을 먹어 치우기 바빴다. 근무시간에는 늘 굶주렸고 피곤했기에, 나에게 그 음식은 마치 하루에 대한 보상과 같았다. 내가 얼마만큼의 음식을 먹는지도 모른 채 눈앞의 모든 것을 내 위장에 넣어버렸다. 그 순간만큼은, 그 행위가 나의 공허함과 분노와 슬픔 모두를 없애 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분명히 틀린 것이었고, 나를 더욱 망가지게 했다. 체중은 급격하게 다시 증가하게 되었으며, 자기 전에 과도하게 섭취한 음식은 나를 늘 피곤하게 했다. 주 5일간 이런 일상을 반복하였고, 난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일을 하다가도 금방 눈물이 흐를 것 같았다. 누가 나를 볼까, 화장실에서 울고 진정하고 다시 웃었다. 나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남들은 잘만 하는데 나만 왜 이럴까. 나만 이렇게 나약한 거겠지. 내가 잘못된 거야. 나를 다독이기는커녕 나를 혼내기만 했다.


 여느 날처럼 음식을 잔뜩 먹고 잠들었다. 웬일인지 새벽 5시에 일어났다. 멍하니 시계만 마라보다, 어느 순간, 정신병원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을 먹으면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며. 당장 병원을 찾기 시작했다. 가장 가깝고 빨리 여는 병원을 찾아서 나갈 준비를 했다. 부산스러운 내 인기척에 엄마가 깨서 거실로 나오셨다. 그리고 내가 찾는 것이 무엇인지 듣고, 엄마는 처음으로 내 앞에서 울었다. 나는 그저 멍했고, 마음은 아팠다. 오히려 너무나 죄송했다. 내가 잘못된 아이인 것 같아, 엄마를 슬프게만 하는 것 같아 내가 참 못났다 싶었다.


구름을 바라보고 있자면 때로는 촛불을 끄듯 후 불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렇게 하면 아주 간단하게, 구름을 사라지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병원은 문을 열었고, 나는 엄마와 함께 병원에 도착했다. 며칠간 씻지 않아 잔뜩 헝클어진 머리와 대충 끼워 입은 체육복을 입고. 세수조차 하지 않고 병원부터 찾아갔다. 이윽고 진료가 시작되었다. 난 한마디를 할 때마다 울음을 삼키기 위해 수없이 내 손등을 세게 꼬집었다. 남에게 눈물을 보이는 것이 가장 추한 것 같았다.  감정을 꾹꾹 눌러 담고,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나 자신을 통제할 수 없다고. 지속적인 우울감을 주체할 수 없다고. 그리고 처음으로 항우울제를 처방받았다. 나는 항우울제로 내 우울감을 지워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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