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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북이 Apr 09. 2023

스물다섯, 폭식증 그리고 우울증 #4

해빙기

호수는 바다와 다르다. 달의 인력과 바람에 의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바다와 달리, 호수는 그 자리에 고요히 멈춰있다. 추운 겨울은 호수를 천천히 얼린다. 영하의 온도로 몇 달을 지내고 나면, 어느새 두꺼운 얼음이 그 위를 덮고 있다. 그리고 봄이 다가오면 호수는 우리가 모르게 서서히 얼음을 녹여낸다.


 기나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태양의 남중고도는 서서히 높아진다. 태양이 지평선 위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태양은 우리를 뜨겁게 데운다. 태양은 나그네의 옷을 벗겨냈지만, 또한 내가 밟고 있는 호수를 녹이기도 한다. 나는 수면 위에서 걷고 있지만, 언제든 심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위험이 늘 존재한다. 얼음이 깨지면 나는 곧장 그 차가운 물에 빠져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다.


우리는 호수의 어느 부분이 두텁고, 어느 부분이 얇은지 알 수 있을까. 호수는 그저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고, 우리는 그 속을 알 수 없다. 따라서 내딛는 발은 늘 신중해야만 한다. 잘못 디디면 차디찬 호수 속에 가라앉고 말 테니.


 ‘살얼음 위를 걷는다.’라는 말이 있다. 나의 회복은 그와 같았다. 언제 어디서 나의 어둠이 다시 드리울지 몰라, 내딛는 한발, 한 발이 두려웠다. 내가 이것을 먹으면 다시 폭식이 시작될까. 내가 지금 계속 쉬고 있으면 앞으로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지지 않을까. 내 두뇌는 쉼 없이 알 수 없는 미래를 계산해 댔다. 그래서 언제나 불안하고, 불안정했다. 사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무언가를 많이 먹거나,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 때면 문득 다시 이전으로 돌아갈까 무척 두렵다. 아침에 부은 얼굴을 보기 싫어 거울 속 내 눈을 피할 때, 몸이 너무나 무거워 운동을 가지 않을 때. 또다시 그 깊은 심연에 갇힐까, 상상도 하지 못할 두려움이 나를 뒤덮는다.


호수 근처로 걸어가면 낚시꾼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얼음을 뚫고 그 속을 들여다보는 사람이다. 만약 우리가 호수를 걷고 싶다면, 호수 위의 얼음이 충분히 두터운지 알아내고 싶다면 다가가 물으면 된다. 이 얼음 위에서 걸을 수 있는지.


 하지만 전과는 달라진 것은, 나는 나 자신이 보내오는 신호를 무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언가 스스로 나아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병원에 가보기도 하고, 항우울제를 복용하기도 한다. 또는 나에게 늘 따뜻하게 다가오는 주변의 관심에 기대기도 해 본다. 어떤 방식이든 어둠을 뚫고 나가고자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럼에도 실패는 늘 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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