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 시간이든 사회 시간이든 또는 국어 시간이든, 민주시민의 자질에 연관 지을 교과는 얼마든지 있다. 쉬는 시간이라도 좋다.
“내가 버린 거 아닌데요?”
내가 태윤이에게 옆에 떨어진 종잇조각을 주우면 좋겠다고 하였더니, 태윤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뜨악해한다.
“그래서 주울 책임이 없으니, 안 줍겠다?”
“네. 제가 버린 거 아니라니까요.”
“그러니, 내 자리를 지저분한 대로 그대로 두겠다?”
“네, 그럼 어떡해요? 내가 한 게 아닌데요.”
태윤이가 눈망울을 느릿하게 감았다 뜬다. 오히려 내가 이상하다는 눈치다. 흔하진 않았지만 나의 30년 교단 중 태윤이처럼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려는 아이가 몇 있긴 있었다. 태윤이는 태윤이의 논리가 왜 점검되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운가 보다. 태윤이에게 한 마디를 더 찔러 본다.
“태윤이가 아파트가 아닌, 마당이 딸린 집에 살고 있는데, 어떤 강아지가 와서 응가를 해 놓고 갔다면, 그게 태윤이네 강아지는 분명 아니고, 강아지 주인도 알 수 없다면, 그래도 그냥 그대로 둘 건가, 태윤이네 마당이 개똥 마당이 되었는데도?”
와르르 사태를 지켜보던 아이들의 입에서 웃음이 터진다. 비로소 태윤이의 눈빛이 순해지면서, 목소리도 좀 낮아진다.
“그건 아니죠. 그건 다르죠.”
그러면서도 태윤이는 여전히 자기 자리에 떨어진 종잇조각을 줍지는 않는다. 그때 태윤이 앞에 앉은 성종이가 몸을 일으켜 종잇조각을 줍는다. 나도 아이들도, 태윤이도 말을 멈추고 성종이의 행동을 지켜본다. 성종이가 종잇조각을 종이류 함에 넣고 돌아온다. 내가 본 것을 아이들도 보고 있었다. 내가 손뼉을 치자 아이들도 따라서 박수를 친다.
결국 또 나는 잔소리꾼이 된다. 봉사가 아름다운 것은 내 의무를 다하여, 내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남을, 남의 일을 돕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희생이 아름다운 것은,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권리를, 자신에게 귀한 것을 내어놓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관순 열사는 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도 희생시킨 분이다. 봉사와 희생의 의미를 좀 알겠느냐고 묻자 아이들 반쯤이 고개를 끄덕인다.
“겨울철에 눈이 오는 것은 사람이 한 짓이 아닌 것은 누구나 다 알 것이다. 자기가 한 일이 아닌데도 사람들은 집 앞을 깨끗이 하기 위하여, 또 어떤 사람은 그대로 두면 길이 얼어 다른 사람이 자기 집 앞에서 미끄러져 넘어질까 봐 스스로 눈 치우기를 한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기가 저지른 일이 아니더라도 생활 속에서 봉사를 실천하면서 살아가고 있단다.”
이야기를 마치면서 성종이와 태윤이에게 번갈아 눈을 맞춘다.
“태윤아, 내가 버린 쓰레기는 아니지만 줍지 않는 것보다 줍는 것이 더 아름답겠지? 지금의 태윤이 자리는 조금 전의 태윤이 자리보다 깨끗하지?”
태윤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이제 태윤이의 마음이 바뀌었다니 선생님도 기분 좋다.”
성종이를 불러낸다. 태윤이도 불러낸다. 성종이에게 아몬드 두 알, 태윤이에게 아몬드 한 알을 준다. 그리고 모든 아이들에게도 아몬드 한 알씩 나누어 준다. 아몬드가 과용되었다.
난 아무것도 준 게 없는데
- 먹을래?
짝꿍이
귤 한 조각 내민 걸 받을 때
난 왠지
짝꿍한테 지우개 안 빌려준
어제가 생각나
오늘을 빚진 느낌이 들곤 해
내가 버린 건 아니지만
내 발밑에서
담배꽁초 휴지 병뚜껑
하나하나 주우시며
자원봉사 할아버지 할머니들
지나가실 때
난 왠지
세상에 빚진 느낌이 들어
그분들에게서
내 그림자까지
멀리 치우곤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