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獅子) 론(論)

by 인해 한광일

어떤 반을 맡아 봐도 고자질쟁이(?)는 있다. 올해는 이우슬이 그렇다. 잘 이르진 않지만 얼굴이 붉어지도록 자주 다투는 아이도 있다. 또 놀린 아이를 잡으러 다니느라 식식거리는 아이도 있다. 좀 넉넉히 잡아 우리 반 스물여덟의 아이들 중 삼 분의 일 정도의 아이들이 이런 성향을 보인다. 예전보다 이런 경향이 좀 더 두드러지는 것 같다. 어느 날은 이런 고자질이 유난스런 날도 있다. 그런 날은 또 하필 학교 일마저 두루두루 바쁘곤 하기 일쑤다. 이런 날은 약간 과장하자면, 내가 벌집 옆에 종일 서 있는 듯한 환청 같은 것을 느끼곤 한다. 그럴 때 나는 수업 종이 울렸어도 잠시 교과서를 내려놓고 아이들을 천천히 바라본다. 사자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할 때인가 보다.

아이들은 나의 사자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사자 이야기를 듣고 나면 아이들은 확실히 점잖아진다.

“초원의 사자는 귀가 매우 밝은 동물이다. 밀림에는 사자 말고도 수많은 생명체들이 살고 있다. 동물의 왕국이란 TV 프로그램을 보면, 확실히 사자는 낮잠의 왕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사자는 잠을 자면서도 귀를 계속 쫑긋 세우기도 하고 다시 늘어뜨리기도 한다. 어떤 때는 잠에서 깨어 멀리 바라보다가 다시 눕곤 한다. 그렇다. 초원은 결코 조용한 곳이 아니다. 사자는 자면서도 수없이 많은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수없이 많은 소리를 귀로는 들으면서도 마음으로는 거의 듣고 있지 않은 것이다. 혹시 어떤 소리는 가끔 사자들에게 개개는 하이에나 소리일지도 모른다. 또 어떤 소리는 잠자는 사자쯤은 하나도 겁나지 않는다는 듯, 사자의 영역권 안에서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푸르륵 거리는 영양이나 스프링벅의 소리일지도 모른다. 또 어떤 소리는 육중한 코끼리들의 발소리일지도 모른다. 그제야 일어나면 되는 것이다. 코끼리는 사자에게 위험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물 한 모금을 축인다. 아이들은 누구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여전히 이야기를 기다린다.

“사자가 초원에서 들려오는 모든 소리에 다 반응하며 화를 내거나 달려든다면 그야말로 속 좁은 동물에 불과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모든 소리를 따라다니느라 언제나 헥헥거리며, 신경질만 부리는 못난이 동물이었을지도 모른다. 사자가 힘이 세고 무섭기는 하나 자기 영역 저 먼 곳에서 어슬렁거리는 치타에게 화가 나서 으르렁거리며 쫓아다니다간 발 빠른 치타는 벌써 저만치 달아나 서 느긋하게 사자 쪽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그 결과 사자만 지쳐 우스운 꼴이 되고, 화만 더 날 것이다. 또 가까이에서 들려오는 하이에나들의 낄낄거리는 소리를 못 참고 혼자서 맹렬히 쫓아가다간 사방으로 흩어지는 하이에나를 얼마 못 쫓고 또 금방 지쳐 헥헥거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지친 사자 한 마리를 하이에나들이 둘러싸고 더욱 더 시비를 걸어올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되면 사자는 화를 풀기는커녕 난처한 처지가 되어 어쩌면 자존심에 커다란 상처를 안고 돌아서서 도망쳐야 하는 신세가 될지도 모를 것이다. 꼴이 말이 아니게 되는 거지. 다행히 사자는 그렇게 살지 않는단다. 세상에 들리는 수많은 소리 중 자기가 정말 귀담아들어야 할 소리에만 귀담아들으며 살 줄 알기에(그러니까 자기에게 위협적인 코끼리 소리는 귀담아 듣는), 느긋하게 낮잠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하이에나들이 가까이서 낄낄거리든 말든,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스프링 벅이 겁도 없이 푸르륵 거리던 말던 신경도 쓰지 않는다. 코끼리 소리가 아니면 나머지 소리는 다 무시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 결과 사자는 충분한 낮잠을 잔 뒤, 온몸에 충만한 힘을 내뻗으며 기지개를 켠 후, 온 초원이 덜덜 떨리도록 우렁찬 목소리로 울부짖을 수 있는 것이다. 당연히 초원의 모든 동물들은 이렇게 힘이 충만한 사자의 포효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잠을 잘 자고 난 사자는 여전히 초원의 왕인 것이다. 초원의 왕 사자의 이 멋지고 건강한 모습은 다시 말하지만, 자기 주변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쓸데없는 소리는 다 무시하고 꼭 필요한 소리만 귀담아들을 줄 아는 지혜 때문이 아닐까?”

아이들은 별것도 아닌 이야기에 잠시 더 침묵 중이다.

“우리도 때때로 누가 또 나에 대해서 무슨 얘기를 하나 하고 신경 쓰지 말고 지내는 게 더 좋을 때가 있지 않을까? 혹시 내 귀에 들려오는 나에 대한 조그만 이야기쯤은 무시하고 지낼 줄 아는 세련된 인격이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그래야 우선 내 마음도 편하고, 친구들은 그런 나를, 웬만해선 화를 잘 안 내는 마음 넓 은 아이라고 좋아하지 않을까?”

나는 ‘내 맘대로 사자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풀어놓고 얼른 훈화를 마무리한다. 다행히 아이들은 동의하는 눈치이고, 나는 이후부터 고자질쟁이나 자기를 놀린 아이를 잡으러 뛰어다니는 아이들, 얼굴 붉히며 다투는 아이들에게 '사자 이야기, 안 까먹었지?'하고 묻는 것으로 간단히 생활지도를 대신하곤 한다. 그래도 한참 지나면 아이들은 다시 업그레이드 된 ‘사자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안다. 쉬는 시간인데도 고자질하러 오는 아이들이 없다. 벌들이 분봉하여 나갔(?)는지 웅웅거리는 소리가 현격히 줄어드니 잠잠하여 귀가 편하다.




호열이


우주는 몰라도

지구엔 가득한

소리

소리

소리

차 소리

피아노 소리

애들 떠드는 소리

강아지 소리

선거 유세 소리

헌 전자제품 사는 소리

나뭇잎 스치는 바람 소리


그리고

축구 속으로 날아든 소리


-호열아.


공차다 말고

어머니께 달려가는

호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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