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시모음2

사색에 빠지다

by 인해 한광일

단풍 고울 땐

떠나고 싶어

몸이 들썩들썩했을 테다


가겠다니 말없이 다 놓아주곤

극빈의 수행자로 거룩하게 돌아서는 모체(母體)를

못 본 건 아니지만

휘도는 바람의 대세를 놓치고 싶진 않았을 테다


바람과 함께 숲을 휩쓸고, 도로를 가로지르고

세상을 주유하리라 맘먹었을 테지만

모든 게 뜻대로 되는 게 아니란 걸 알았을 테다


점점 뜻이 퇴색된 채 세파에 시달리다 보니

가지고 있던 색소를 모두 소진하게 되었을 테다


온전히 잃고 나서

몸에 서리꽃까지 돋친 어느 날 아침

상실된 자아에 까무러치게 놀랐을 테다


바람이

다시 이끌어도

자꾸만 재촉해도

등을 떠밀어도


비로소 멈춰

생각해야 할 때임을 알았을 테다

흔들리지 않을 자리가 필요했을 테다


구석으로 몰린 게 아니라

스스로 구석으로 찾아들어

추근대는 바람을 비껴

오래도록 고독을 곱씹어 볼 요량일 테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겨울 백록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