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 고울 땐
떠나고 싶어
몸이 들썩들썩했을 테다
가겠다니 말없이 다 놓아주곤
극빈의 수행자로 거룩하게 돌아서는 모체(母體)를
못 본 건 아니지만
휘도는 바람의 대세를 놓치고 싶진 않았을 테다
바람과 함께 숲을 휩쓸고, 도로를 가로지르고
세상을 주유하리라 맘먹었을 테지만
모든 게 뜻대로 되는 게 아니란 걸 알았을 테다
점점 뜻이 퇴색된 채 세파에 시달리다 보니
가지고 있던 색소를 모두 소진하게 되었을 테다
온전히 잃고 나서
몸에 서리꽃까지 돋친 어느 날 아침
상실된 자아에 까무러치게 놀랐을 테다
바람이
다시 이끌어도
자꾸만 재촉해도
등을 떠밀어도
비로소 멈춰
생각해야 할 때임을 알았을 테다
흔들리지 않을 자리가 필요했을 테다
구석으로 몰린 게 아니라
스스로 구석으로 찾아들어
추근대는 바람을 비껴
오래도록 고독을 곱씹어 볼 요량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