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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해 한광일 Feb 06. 2024

가야 태자 월광기(記)

제7화.  금가는 동맹

  

  “나는 끝내 왕후와 월광을 지켜낼 것이오.”

  이뇌왕은 법흥왕의 되풀이 되는 요구가 괴로웠으나 왕후를 끝내 신라에 내어주지 않을 작정이었다. 왕후 역시 서라벌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신라의 사신을 거듭거듭 물리쳤다. 왕후는 자신이 대가야의 안위에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진심으로 이뇌왕을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법흥왕은 집요했다. 왕후를 내어놓지 않으면 온 가야를 멸하겠다며 왕후를 공격의 구실로 삼았다. 법흥왕은 월광이 태어나기 일 년 전, 즉 지금으로부터 십칠 년 전 고구려 광개토왕의 처절한 공격에 이미 쇠락할 대로 쇠락한 금관가야를 거듭거듭 공격했었다. 금관은 신라의 거듭되는 공격에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마침내 허물어지는 담장처럼 무너지고 말았다. 결국 아들 셋을 데리고 법흥왕에게 항복하고 만 금관가야의 구형왕은 금관의 마지막 임금이 되고 말았다. 금관가야의 항복은 가야의 번국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금관가야는 고구려 광개토왕에게 철저히 패하긴 했지만 금관이 무너지리라고 믿진 않았다. 금관은 오백 년 세월 동안 가야 누리의 맹주였기 때문이었다. 가야누리는 금관가야의 항복에 대해 충격과 두려움이었으나 곧 무정한 배신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것은 무시로 금관가야를 넘어 가야누리 이곳저곳을 마음대로 휘젓는 신라의 횡포로부터 패망한 금관은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비로소 가야누리는 기댈 언덕이었던 금관가야의 붕괴의 의미를 실감하게 된 것이다. 


  법흥왕은 구형왕과 그 족속들은 후히 대했으나 금관가야의 흔적은 철저히 파괴했다. 금관가야의 갑작스런 항복에 대가야 역시 몹시 당황스러웠다. 금관가야를 지원하기 위해 가실왕은 지원군을 강 건너 이편 대가야 땅에 잇닿아 있는 금관가야의 조문촌에 발을 들여놓은 상황이었던 것이다. 가실왕은 조문촌에서 병력을 철수해야 할지 그대로 주둔하고 있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한 채 초겨울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실왕은 갑자기 조문촌 땅에서 붕어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뒤를 이뇌왕이 즉위하였다. 상중이어서 그랬을까? 대가야 군이 조문촌에서 미처 철수하지 않고 있었음에도 법흥왕은 강 건너 금관가야의 땅, 그러니까 대가야군이 진주해 있는 그 땅 조문촌을 밟으려 강을 건너지 않았다. 그렇게 조문촌은 지금껏 의도치 않게 대가야의 영토로써 대가야의 지원군이 주둔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뇌왕은 새삼 법흥왕이 조문촌을 문제 삼지나 않을까 걱정이었으나 웬일인지 법흥왕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오히려 법흥왕은 조문촌에 대해선 입을 다문 채 탁순국을 공격했다. 탁순이 공격을 받자 십오륙 년 만에 다시 가야누리에 공포가 번지기 시작했다. 대가야의 상좌를 자처하던 이뇌는 그러나 탁순국에 병력을 보내지 못했다. 그러자 번국들의 불안은 가야누리 전체로 들불처럼 번졌다. 금관가야를 대신한다며 상가라도 가야성으로 자신들을 불러들여 가야 십이 곡을 연주하게 했던 이뇌왕의 지난날은 무엇이었던가. 번국들은 이뇌왕을 향해 코웃음을 쳤다. 두려움은 돌발 사태를 부르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녹기탄 왕이 법흥왕에 대한 두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가야누리를 이탈하여 신라에 귀순하고 말았다. 이번에도 이뇌왕은 녹기탄에 어떤 행동도 하지 못했다. 그저 법흥왕을 향해 선 녹기탄 왕의 뒷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녹기탄은 저절로 신라의 땅이 되고 말았다. 스러져가는 가야누리를 보고 16년을 쌓아온 이뇌왕의 영도력은 법흥왕의 횡포 앞에 무력하기만 했다.     


  이뇌왕 십구 년. 법흥왕의 무력과 겁박을 모멸감으로 견디어내며 버틴 것이 무려 삼 년이었다. 그 세월이 흐르는 동안 대가야는 신라에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그 사이 무쇠같이 단단했던 이뇌왕과 왕후 사이마저 봉합될 수 없을 만큼 벌어지고 말았다. 대전에서는 대신들이 연일 법흥의 요구대로 왕후를 신라로 돌려보내자는 주장이 점점 더 거세어졌다. 민심도 사나웠다. 옛날의 백성들이 아니었다. 상가라도 백성들 사이에서는 심지어 왕후만이 아니라 월광까지도 신라로 추방해야 한다고  수군대는 무리들조차 적지 않았다. 상가라도 저잣거리의 소문이 왕후의 귀에까지 들어오자 왕후는 힘겨운 걸음을 옮겨 대전에 들었다. 왕후는 이뇌왕에게 월광의 신분을 보장받고 싶었다. 그러나 왕후는 대전에 한 발짝 들어서서 들은 것은 대가야 신하들의 신라에 대한 크나큰 원망뿐 이었다. 그들은 이뇌왕 앞에서 월광을 폐하고 후실 소생인 차자 찬실이야말로 대가야의 순수 혈통이니 그를 태자에 다시 책봉하자는 주장을 기탄없이 내뱉는 중이었다. 저런 소리는 상가라도 저잣거리의 백성들의 수근거림이란 소리에 놀라고 분기가 솟았건만, 이곳 대전에서의 중신들 입은 그런 소리를 조금도 거리낌이 없이 거친 숨결로 터뜨리고 있었다니…. 백성들의 수근거림이란 게 결국 저들의 망발이었구나. 대전의 소란을 더 듣고 서 있을 수 없어 돌아서던 왕후에게 양승의 높은 호통소리가 등 뒤로 들려왔다.


  “군신 간의 의가 어찌 이 모양인가? 그대들의 왕후마마는 누구이며, 또 그대들의 태자마마는 누구인가? 지금 그대들을 대가야의 신하라 할 수 있겠는가?”

  양승의 꾸짖는 소리는 높았으나 잠시 후 다시 소요가 일고 반대편의 무리들은 다시 꺼져가는 불을 지피듯 목소리를 돋우었다.

  “의라니요, 의를 모르는 것은 저 서라벌의 법흥왕이 아니오이까? 우리는 의를 버리자는 것이 아니라 그들로부터 오신 왕후마마와 태자마마를 돌려드리자는 것입니다.”  

  그제서야 신하들의 눈초리가 왕후의 등 뒤로 쏟아졌다. 

  ‘그래. 의가 아니다. 신라는 의가 아니고말고.’

   어지러움을 겨우 참고 대전을 물러 나온 왕후는 기어코 몸의 중심을 잃고 말았다. 시녀가 겨우 왕후를 부축하여 모셨다.     


   법흥은 이마 노왕(老王)이었음에도 여전히 정복욕을 불태웠으며. 노기도 가라앉히지 않았다. 결국 법흥왕은 대가야 본토를 공략해왔다. 대가야 정병들이 법흥왕을 죽기로 막아섰지만 치열한 전투 끝에 대가야의 세 고을이 결국 저들의 손에 떨어졌다. 본토를 공략당하고 나서야 이뇌왕은 법흥왕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그동안 견디어왔던 치욕과 굴욕이 분노와 경멸의 눈빛으로 바뀌어 흔들렸다. 대가야는 비로소 법흥왕의 횡포에 맞서 신라를 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뇌왕의 결의가 다져지자 상대적으로 왕후와 월광에 대한 눈빛이 식어가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이뇌왕은 후궁 소생인 찬실을 대가야의 적통으로 삼으라는 신하들의 주장을 곱씹었다. 이뇌왕은 더 이상 월광을 두둔하기 어려운 처지가 되고 말았다. 아니, 이제 이뇌왕 스스로도 신라와 법흥으로부터 온 것을 모두 내치고 나서야 저들의 적으로 우뚝 맞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법흥에게 당한 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치가 떨렸다. 마침 그즈음. 백제에서 가야의 어려운 처지를 논의하자며 사신을 보내왔다. 대소 신료들은 백제의 사신을 한 목소리로 반겼다. 때맞추어 나타난 백제의 사신이 이뇌왕도 고맙기 그지없었다.  

   

   갑작스런 어지럼증에 시달리며 업히다시피 대전을 물러난 이뇌 왕후는 항아전에 들자마자 곧바로 몸져누웠다.

  “어마마마. 소자 힘을 기르려면 어찌해야 합니까? 신라에 맞설 수 있는 힘을 기르고자 합니다.”

  “태자.”

  왕후는 월광에게 답을 줄 수 없었다. 

  “어마마마, 신라를 멈추어야 합니다.”

  “태자, 미안하오. 그러나 내가 신라로 가면 그 즉시 신라가 상가라도로 몰려올 거   요. 그걸 막아야 하오.”

  왕후는 누운 채 조용히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왕후를 바라보던 월광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려 하는데 왕후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태자, 차라리 서라벌로 가시오.”

  모후의 엉뚱한 말에 월광은 당황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옵니까? 저 무례한 신라를 멸해도 분이 다 삭지 않을 판인데,   그 무슨 말씀이옵니까?”

  “대가야도 살고 태자도 사는 길은 그 방법뿐 일 것 같소.”

  “무슨 말씀이신지 속 시원히 가르쳐 주세요, 어마마마.”

  “때가 되면 저절로 알게 될 거요.”

  “지금 알아야겠습니다. 알려주십시오.”

  그러나 왕후는 지그시 월광을 바라보던 눈을 거두고 돌아누워 꼼짝도 하지 않았다. 며칠 후 왕후가 기력을 회복한 후 월광을 부르기 전까지 월광은 어려운 수수께끼를 조금도 풀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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