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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월광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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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해 한광일 Feb 07. 2024

가야 태자 월광기(記)

제8화. 월광의 도피(逃避)


  “태자, 예서 무엇을 할 수 있겠소? 이복 찬실을 보시오. 그 아이가 대가야의 새로운 태자가 되리란 걸 모르겠

  단 말이오? 태자는 부디 신라에서 힘을 기르고 길러 신라의 힘을 이끌고 대가야를 되찾으시오.”

  월광은 모후인 이뇌 왕후의 말이 몹시 혼란스러웠다. 

  “신라의 힘이라니요? 나는 모릅니다, 어마마마. 나는 모르겠습니다.”

  월광이 문을 벌컥 열고 뛰쳐나가다마라고 한 그림자 앞에 멈춰섰다. 아령 공주였다. 월광은 부왕의 동생이자 자신의 고모인 아령 공주를 곤혹스런 눈빛으로 쳐다보다가 몸을 돌려 달아나듯 벗어났다. 아령 공주는 월광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다기 월광이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천천히 항아전에 들었다.     


  혼란이 거듭되는 속에서도 세월만은 공평하여 드디어 무소불위의 법흥왕도 결국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법흥왕은 끝내 대가야를 취하지 못한 것과 후사를 두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하였다 했다. 나이 쉰이 넘어서도 간절히 후사를 원했으나 왕후인 보도부인은 노산으로 사경을 헤매다 끝내 딸 하나를 더 낳고 말았을 뿐이었다. 법흥왕은 크게 낙심하여 아우 갈문의 장남 삼맥종을 태자로 세운 지 칠 년째 되는 해, 마침내 삼맥종에게 양위하고 자신은 불법에 귀의했으나 얼마 되지 않아 임종을 맞고 말았다. 서라벌에선 슬픔이 깊었지만, 상가라도는 기쁨이 넘쳤다. 상가라도 거리의 주점 곳곳에 술상이 넘치게 펼쳐졌으며, 거리로 몰려나온 백성들은 간간이 만세 소리마저 드높였다. 이뇌왕도 묵은 체증이 뚫린 듯 가슴이 시원했다. 이제 막 서라벌 쪽으로 드리우던 미움을 거두어들여도 되지 않겠는가. 이뇌왕은 법흥왕의 서거가 대가야와 신라에게 새로운 전기가 되리라 믿었다. 가야궁의 대신들도 새로운 신라와 대가야가 새로이 선린을 맺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진흥왕은 곧 다름 아닌 대가야의 십이 가야 회합연에 신라의 참사(參使) 자격으로 다녀갔던 그 신라의 왕자 삼맥종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뇌왕은 진흥왕의 즉위식에 축하사절을 보냈다. 법흥왕 때의 악연을 끊어내고 젊은 진흥왕과 새로운 관계를 맺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럴수록 대가야와 신라 사이의 국경에 경계를 더 강화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진흥왕이야말로 법흥왕을 초월한 엄청난 재앙이 될 것이라는 것을 이뇌왕과 대가야는 꿈에도 알지 못했다.      


  “장군 이사부는 지금 당장 도살성과 금현성을 취하라.”

  진흥왕의 기개가 펼쳐진 곳은 뜻밖에도 고구려와 백제의 전장터였다. 진흥왕의 행보에 이뇌왕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진흥왕은 그야말로 범 같은 인물이 아닌가? 처음 상대가 고구려와 백제라니! 고구려와 백제가 뒤엉킨 전장

  을 기습하다니! 고구려와 백제를 한꺼번에 상대하다니!’

  진흥왕의 명을 받은 이사부는 즉시 명을 받들었다. 도살성과 금현성을 두고 오래도록 결판을 내지 못하고 있는 고구려와 백제의 싸움 한가운데를 짓쳐 말과 군대를 몰았다. 이사부는 일제히 거친 기습 공격으로 두 나라 군대를 모두 쫓아내고 두 성을 모두 차지해 버렸다. 순식간에 두 성을 잃고 쫓겨난 백제와 고구려는 망연자실하였다. 그러나 이 한 번의 공격은 백제와 고구려에 뼛속 깊이 신라의 새로운 힘을 새겨 넣었다. 진흥왕은 아직 백제와 고구려가 패배의 충격이 다 가시지 않은 얼마 뒤에 바로 장수 거칠부에게 정예의 군사를 주어 백제로 향하게 했다. 백제에 함께 고구려에 맞서자 연맹을 제안하였다. 무령왕의 뒤를 이은 백제의 성왕은, 처음엔 얼토당토않다 호통을 쳤으나 한편으로 고구려를 기어이 이겨보고 싶었다. 장고 끝에 성왕은 진흥왕의 손을 잡기로 했다. 도살성과 금현성이 그저 신라군의 기습 공격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신라가 저리 무모하게 우리 사이의 전장 안으로 뛰어든 것이 어쩌면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결코 신라는 허약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어림없을 것 같았던 원수지간의 동맹이 이렇게 맺어진 것이다. 

  성왕은 무령왕의 치세 덕분에 백제는 잃어버렸던 옛 힘을 거의 회복해가고 있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어려운 사비천도를 완수함으로써 고구려로부터의 직접적인 타격권을 비켜설 수 있게 되었으며, 왜는 다시 백제의 조정을 드나들며 불교와 의학, 역학에 대해 물었다. 서해 건너 저쪽의 양나라도 백제와 교류를 텄다. 노리사치계와 의박사 역박사를 일본에 다녀오게 했다. 저들은 백제의 또 다른 힘이 될 것이라는 셈이 있었다. 

  과연 고구려는 신라와 백제 동맹군을 당해내지 못했다. 성왕의 요청에 따라 신라군과 가야군이 백제군과 함께 고구려 군대와 맞섰다. 신라군과 가야군은 백제군과 다행스럽게도 한 몸처럼 호흡이 잘 맞았다. 신라군뿐만 아니라 대가야 병사들도 강군이었다. 선대에 잃었던 한수(漢水)가 다시 백제의 손에 들어오자 성왕은 진심으로 감개무량했다. 고구려를 대적함에 있어 백제의 작전에 말없이 따라 준 신라도 흔쾌히 군사를 내어준 대가야도 고맙기만 했다. 신라군은 성왕의 예상대로 물러설 줄 모르는 강군이었다. 언제 저들이 저토록 강해졌을까? 성왕은 신라군에 감탄하였다. 고구려는, 백제는 몰라도 신라에 밀린 것이 어처구니없었다. 이제껏 신라의 그 누구도 백제와 고구려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 왕은 없었다. 더욱이 신라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왜와 금관가야에 밀려 망국의 위기에 처해 구해달라 간청하던, 고구려에 제후(諸侯)를 자처하던 약소의 나라가 아니었던가. 

  그 즈음 정예의 거칠부 군 휘하에는 금관국 마지막 임금 구형왕의 셋째 아들 무력이 신라의 장수가 되어 활약하고 있었다. 대가야는 무력의 소문이 몹시 못마땅했다. 구형왕이 법흥왕에게 스스로 항복한 것도 못마땅한 판에 그의 셋째 아들이 부끄러움을 모르고 원수의 나라를 위해 맹렬히 칼을 휘두르고 있다는 것이 몹시 불쾌했던 것이다. 그럴 것이었다면 금관국을 끝까지 지키다가 죽었어야 했다는 게 가야 누리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어쨌거나 진흥왕의 밑으로는 점점 더 많은 인물이 모여들었다. 진흥왕의 기개는 이미 선왕인 법흥왕을 넘어섰다는 평가가 자자했다. 진흥왕이 즉위한 후 처음으로 대가야의 번국 야이차가 가야 누리에서 신라 쪽으로 이탈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 일은 상처가 아물어가던 이뇌왕에게 참으로 통탄할 일이었다. 백제를 도와 신라군 백제군과 함께 고구려를 물리친 자부심을 일으켜 보고자 하던 때였다. 법흥왕에게 세 고을과 무려 사천이 넘는 병력을 잃은 지 일 년도 채 안 된 때였다. 그러나 법흥왕 때처럼 대가야는 야이차를 응징하지 못했다. 차마 강성한 신라에 맞설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자 이번엔 야이차의 이웃인 가소국에서 신하들과 백성들이 함께 나라를 신라에 넘기고 신라의 신민이 되겠다며 폭동을 일으켰다. 결국 가소국의 번왕은 신하와 백성의 소원대로 가소국을 신라의 한 귀퉁이로 바치고 말았다. 대가야가 속수무책일 때, 우륵이 신라로 망명하는 사건마저 벌어졌다. 대가야만 흔들리는 것이 아니었다. 온 가야가 갈라지고 흔들리고 번(藩)들이 사라지고 야단이었다. 이제 가야 연맹에는 몇몇 작은 번들과 대가야와 아라가야 뿐 이었다. 번들이 연달아 신라에 귀속하자 대가야는 이제 신라에게 직접 겨냥당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애쓰는 이뇌왕에 가야 누리의 번들은 신뢰를 보내지 않았으며, 다시 일어서려는 대가야를 진흥왕도 그대로 두지 않았다. 신라는 대가야의 눈치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오는 가야 누리의 번들을 덥석덥석 삼키는 야수가 되어있었다.

      

  성왕은 간교하고 매몰찬 진흥왕이 싫어졌다. 처음부터 성왕이 신라의 우의를 못 믿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성왕은 진흥왕이 이끄는 신라군이 강군인 것을 진심으로 다행스럽게 여겼다. 진흥왕과 더불어 고구려를 공격한 선대로부터의 우의 또한 믿었기 때문이다. 선대에 신라와 백제는 혼인동맹으로 맺어졌었다. 진흥왕도 그러한 우의로 흔쾌히 고구려와 함께 맞서겠다 했으리라 믿었다. 그래서 도살성과 금현성에서의 신라의 무례를 큰 한숨으로 참아냈다. 그랬었다, 신라는 사실 대가야보다 먼저 백제와 두 번이나 혼인동맹을 맺은 적이 있었다. 눌지마립간 때는 백제의 비유왕과, 소지마립간 때는 백제의 동성왕과 혼인동맹을 맺었다. 그런 인연을 배신할 순 없는 일이어서 무령왕은 고심을 거듭한 끝에 대가야에서 군사를 멈춘 것이었다. 이뇌왕의 대가야와 다시 혼인으로 동맹한 신라였지만, 선대부터 맺어온 신라와의 우의를 저버릴 순 없다며 무령왕은 대가야에서 군사를 거두었던 터였다. 동맹의 인연을 귀히 여긴 건 성왕도 마찬가지였다. 그 까닭으로 성왕은, 함께 고구려를 몰아낸 신라가 한수 이북의 고토를 차지하고 물러나지 않는 몽니에도 쓴 인내심으로 참아내고 있는 터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상대인 진흥왕은 그런 우의나 인정에 흔들리는 성정이 아니었다. 그는 오직 삼한의 강자가 되는 것이 목표였다. 목표를 달성하는데 있어 수단이나 방법의 정당성은 개의치 않았다. 그는 성왕의 너그러움 속의 약점을 쉽게 찾아내었다. 성왕은 자신과 힘을 합쳐 고구려를 물리친 뒤, 방어 병력의 대부분을 여전히 고구려군에 맞대고 있었다. 성왕은 몇 번인가 신라가 차지하고 있는 한수 이북 땅은 원래 백제의 고토이니, 지금 물러서면 나중에 후히 갚으리라며 점령지에서 물러서라 으르렁대었지만, 진흥왕은 신라의 공적을 인정하라며 듣지 않았다. 성왕은 결국 분노를 가라앉히고, 진흥왕의 한수 이북 점령을 묵인하고 창끝을 온전히 고구려 쪽으로 돌렸다. 급습에 물러났지만 가만히 있을 고구려가 아닐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동맹의 신라도 온전히 고구려에 맞설 수 있게 하려면 신라와 다투지 않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신라의 욕심은 그쯤일거라 생각하고 더 이상의 의혹을 거두어들인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조치는 진흥왕에게, 한수 이북의 신라 점령군에게, 백제군의 옆구리를 그대로 노출한 결과가 되고 말았다. 성왕은 이번에도 진흥왕을 믿었지만, 진흥왕은 그 헛된 믿음의 틈을 놓치지 않았다. 진흥왕은 백제가 틈을 보이자마자 그 틈바구니로 기습적으로 서라벌의 대규모 병력을 기습적으로 투입하였다. 예상대로 옆구리를 찔린 백제는 눈앞의 막강한 고구려군에게서 눈을 거두지도 못한 채, 신라군을 맞아 저항 한 번 제대로 못하고 뒷걸음으로 물러섰다. 진흥왕은 이번에도 쉽게 백제가 수복한 한수 이남 땅마저 점령해 버렸다. 허를 찔린 성왕은 참았던 분노를 한꺼번에 터뜨렸다. 자신의 우의에 대한 진흥왕의 무례를 성왕은 참기 힘들었다. 이만큼 양보했으니 신라도 그만하면 양심은 있으리라 믿었다. 신라군 쪽의 군사를 거두고 눈앞의 맞닥뜨린 고구려군을 전력으로 경계하던 백제는, 옆구리를 공격해오는 신라군의 단 한 차례의 맹렬한 기습에 한수 이남의 땅을 모두 잃고 만 것이다. 언제 저들이 저토록 용맹하였던가. 얼이 빠진 것은 백제군을 마주하고 섰던 고구려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그들 눈앞엔 백제군을 대신하여 신라군의 기치가 가득 휘날리고 있었다. 고구려가 어리둥절 상황 분별을 못 하고 있는 사이에, 진흥왕은 이번엔 직접 군대를 이끌고 고도의 전술과 속전속결, 그리고 기습으로 고구려를 연일 무너뜨리고 있었다. 진흥왕의 속도를 막아내지 못한 고구려는 어느새 황초령, 마운령까지 밀려 있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불패라 했으나, 고구려군 사이에서는 진흥왕의 전략은 뻔히 알면서도 당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진흥왕은 간교하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 놀라운 것은 그의 결단력이었다. 결국 고구려가 정신을 겨우 가다듬은 것은 황초령과 마운령까지 모두 내주고 난 뒤였다.     


  성왕은 당장 신라를 요절내고 싶었지만 흩어진 병력을 수습하는데 만도 시일이 걸렸다. 이번엔 침착한 성왕도 평정심을 잃었다. 사비성은 연일 성왕의 분노로 달아올랐다. 

  “내 더는 파렴치한 진흥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다. 진흥을 쳐서 백제의 중흥을 이루고, 가야 누리와의 우의

  를 다시 세우리라.”

  아무리 진흥왕이 교활하다 해도 백제는 여전히 강한 나라였고, 세상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사비성에서 신하들을 연일 머리를 맞대고 성왕은 신라를 요절낼 방법 찾기에 절치부심하였다. 건곤일척. 충분히 준비하여 단 한 번으로 결정을 보리라 마음먹었다. 대신들의 의견에 귀를 세웠고, 신라를 분석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백제가 가진 힘을 한 자루의 창끝에 모으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사비 회의에 부름을 받은 나라는 아라가야, 대가야뿐 만이 아니었다. 바다 건너 왜의 아소카에서도 성왕의 소집에 기꺼이 응했다. 이뇌왕은 성왕의 사신에게 지체없이 친서로써 화답했다. 백제는 고구려에 맞설 만큼 강한 나라다. 이번에야말로 신라의 끝을 보리라.    대가야에 은밀히 사신이 당도하자 이뇌왕은 진심으로 기뻤다. 혼인동맹의 우의를 혼자만 지키면서 상대인 법흥왕에 이은 진흥왕의 횡포를 견디느라 가슴을 앓던 차였다. 신라의 횡포를 끊어내야만 한다 절치부심하던 중이었다. 그러나 신라는 혼자 힘으로 어쩔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성왕의 서신을 읽는 이뇌왕은 기쁨으로 목이 멜 지경이었다. 그동안 상국으로 섬겨 온 신라를 벗어 버릴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신라가 진정한 상국이었다면 가야 누리를 그렇게 핍박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고 가야인들 모두 신라를 향해 쓰디쓴 원한을 씹어오지 않았던가. 신라에 원한을 갚기 위해서는 다시 백제의 신하나 다름없는 부용국(附庸國)이 되는 것쯤이야 어떠하랴. 성왕은 덕치의 군주가 아닌가. 이뇌왕은 백제의 요구에 기꺼이 응하겠다 답신을 사신에게 들려 보냈다. 그러나 백제의 요구는 생각보다 컸다. 군사 일만은 가야 연맹의 정병 모두를 합쳐도 감당하기 어려운 숫자였다. 총력전인가? 당황스런 요구였다. 그러나 이뇌왕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백제와 함께 이번 싸움에 모든 것을 걸기로 했다. 

  대가야의 전군 일만 이천여 명 중 도성과 변경 수비 병력을 제외한 전 병력 칠천여 명을 정벌군으로 편성했다. 뿐만 아니라 가야 누리 방방곡곡 방을 붙여 정벌군을 모집하였다. 이뇌왕의 굳은 결의는 망설이던 아라가야도 움직이게 하였다. 아라가야에서 정병 사천을 상가라도 가야궁으로 보내온 것이다. 아라 가야의 군이 당도하자 대가야군에 사기가 충천하였다. 아라에게 정병 사천이란 아라의 전 병력의 절반을 넘는 숫자였다. 불과 이레도 안 되어 가야 연맹의 정벌군은 일만을 훌쩍 넘겼다. 언제 이렇게 많은 가야의 병력이 한자리에 모였던가. 가야군의 기세가 자못 등등했다. 이뇌왕의 신속한 응답에 성왕도 적잖이 놀라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가야궁 밖 상가라도 벌판은 출정을 앞둔 가야 연맹군들의 북소리와 징소리, 함성으로 기세가 드높았다.     

 

  월광은 두려웠다. 이제 곧 신라는 망하고 말 것만 같았다. 월광은 자신도 모르게 신라를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흠칫 놀랐다. 궁 밖의 난데없는 갑작스런 정벌군 소식을 보고받은 이뇌 왕후도 크게 놀라고 당황스럽기만 했다. 신라에의 저항 의지를 전의로 바꾸어 맹렬히 불태우고 있는 이뇌왕을 보고 있자니, 지금의 이뇌왕은 이전의 이뇌왕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인 것만 같았다. 백제 파병 반대 의견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지금은 완전히 지워진 목소리가 되고 말았다. 오직 신라 격퇴만이 한 목소리의 구호였다.     


  출병 전 이뇌왕은 가야궁에서 어전 회의를 집전했다. 월광과 이복 찬실도 들라 무거운 명이 내려진 자리였다. 전의로 가득 찬 장수들과 대신들의 결기로 가득한 대전으로 월광이 들어섰다. 이복 찬실이 먼저 대전에 들어와 있었다. 드디어 이뇌왕이 엄숙한 얼굴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 대가야는 지금까지 신라와 동맹을 맺은 이래 단 한 차례도 우의를 저버린 적이 없었소. 그 우의로 제힘

  만 믿고 우리 대가야를 핍박하는 것도 지금까지 꿋꿋이 참고 견디어 왔소. 하지만 지난날의 저 교활한 법흥

  은 탁순국에서의 제 시종들의 무례는 묻지 않고, 함부로 변복한 자들을 추방한 탁순왕을 꾸짖어 멸하고, 우

  리 대가야를 핍박하였소. 게다가 적반하장으로 왕후의 신변에 대해 우릴 믿을 수 없으니 서라벌로 돌려보내

  라 겁박해 왔소. 그러나 의가 바로 세우지 않는 나라를 어찌 나라라 할 수 있겠소. 왕후는 언제까지나 대가야

  의 왕후요. 왕후를 지키는 것은 대가야의 의요. 이제 법흥이 죽고 진흥이 등극하매, 신라에도 비로소 의를 아

  는 자가 생긴 줄 알았소. 그러나 진흥은 제 아비보다 더 살벌한 야차임을 드러냈소. 우리의 야이차와 가소국

  을 겁박하여 무너뜨리고 빼앗았소. 부왕 가실 임금님께서 그렇게도 사랑한 우륵은 또한 진흥의 버러지가 되

  어 버렸소. 나는 이제부터 나 혼자만 지켜온 동맹의 우의를 거리낌 없이 버리고자 하오. 오늘부터 우리 대가

  야에는 왕후를 제외한 그 어떤 신라도 남겨두지 않을 것이오. 먼저 우륵을 버릴 것이요. 그리고….”

   이뇌왕이 말을 끊고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대전의 모든 눈과 귀가 이뇌왕에게 쏠렸다.

  “태자 월광을 폐할 것이오. 그리고…그의 자리에, 찬실을 새로 세우겠소.”

  일순간 대전이 어리둥절한 대신들로 어수선하였으나 한목소리가 소란 속을 뚫고 화살처럼 날아들었다.

  “성은이 망극하여이다.”  

  그 소리에 비로소 신하들이 정신을 차린 듯 일제히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성은이 망극하여이다.”

   그와 동시에 월광은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세월이 하수상하니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으리라 모후에게 듣지 못한 바 아니었으나 막상 폐태자 선고를 듣자 심한 현기증에 어지러웠다. 뜻하지 않게 자꾸만 헛웃음이 나왔다. 그러다 곧 웃음도 모두 고갈되어버렸는지 뱃속도 가슴 속도 헛헛하기만 했다. 월광은 두 팔로 버티고 자리에서 일어서고자 했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아바마마, 성은이 망극하여이다.”

  찬실이 주저앉아 있는 월광을 그림자로 덮으며 지나가 이뇌왕 앞에 엎드렸다.

  “아바마마, 성은이 망극하여이다.”

  대소신료들이 다시 이뇌왕에게 허리를 굽혔다.

  “폐하, 아니 되옵니다. 월광 태자님이 신라의 해악을 이 가야성에 불러들인 것이 아니온 데 폐태자라니요? 

  예로부터 나라의 근본은 수이 움직이는 법이 아니라 하였사옵니다.” 

  “그러하옵니다. 양승의 말이 옳습니다. 월광 태자는 지혜와 덕이 충만하여 후에 대가야의 중흥을 가져오실 

  분입니다.”

  “그만하라.”

  “그만하시오.”

  이뇌왕과 폐태자 월광의 외침이 거의 동시에 겹쳐 터져 나왔다. 월광은 아직도 고개조차 들지 못한 상태로 주저앉아 몸을 이리저리 흔들고 있었다. 이뇌왕이 흐느적거리는 월광을 돌아보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양승과 아량은 나의 결단을 막아서지 말라. 모두 들으라. 지금부터 누구든 월광을 비호하는 자가 있다면, 출

  정에 앞서 그의 목을 먼저 벨 것이다.”

  이뇌왕이 좌중을 크게 꾸짖는 소리에 월광이 미치광이처럼 웃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높고 웃음소리가 월광의 웃음을 째며 들이쳤다.

  “그래요, 폐하. 저 월광을 폐하소서. 그런 연후에 폐태자 월광을 소녀에게나 맡겨 주시지요. 내 그를 제대로 

  된 배꾼으로 만들어 보렵니다. 월광은 신라의 피와 가야의 피를 한 몸에 지녔으니 장사판은 제법 널리 펼칠 

  수 있지 않겠어요?”

  “시끄럽다. 뭣들 하느냐? 월광을 항아전에 유폐하라.”

  이뇌왕은 동생 아령 공주의 비아냥이 몹시 불쾌했다.   

  

  “태자님, 어서 피하소서.”

  “피하다니, 무슨 말이요?”

   왕후가 다그쳐 물었다.
 “왕후마마, 찬실 왕자님 처소로 살수(殺手)들이 모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찬실 일당이 모략을 세우는 게 분명하다며 양승이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월광이 항아전에 내쳐진 지 한 식경도 안 된 시간이었다.

  “서라벌로 보냅시다. 신라로 가는 가장 가까운 길이 어디요? 서둘러주세요.”

  넋이 빠진 월광을 애처로이 바라보며 눈물짓던 왕후가 양승에게 바짝 매달렸다.

  “아량과 함께 지금 당장 달려갈 것이옵니다. 말은 이미 준비되었습니다.” 

  왕후가 양승에게 머리를 끄덕인 후 월광을 돌아보았다.

  “태자, 이 나라는 태자의 나라요. 지금은 살기 위해 신라로 가지만 나중에 반드시 돌아와야 하오. 돌아와 반

  드시 가야궁의 바른 자리에 앉으시오. 난 그날까지 악착같이 살아갈 것이니 내 걱정은 조금도 하지 마시오. 

  태자의 아바마마는 미쳤소이다. 태자를 폐하고 찬실을 봉한 것은 태자와 신라뿐 아니라 이 나라 대가야에도 

  또한 그릇된 일이오. 가시오. 가서 아비의 그릇된 명과 태자를 모살하려는 찬실의 역모에 맞서시오.”

  왕후의 말에, 월광도 입술을 굳게 다물고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왕후의 손을 덥석 잡았다. 

  “어마마마, 뜻대로 서라벌로 가겠사옵니다. 가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장하오, 태자. 몸을 진중히 움직이고 뜻을 굳건히 하시오.”

  이뇌 왕후가 시녀에게 눈짓을 하자, 이미 준비가 되어있었던 듯 시녀가 태자검을 대령했다.

  “이 검이야말로 대가야 태자의 표증(表證)이요. 선대로부터 태자에게 물려 내리는 보검이니 찬실이 곧 이 검

  을 앗으러 올 것이요. 이 검을 절대로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마시오. 알아들었으면 당장 떠나시오.”

  월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밖에서 갑자기 칼 부딪는 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찬실의 살수가 닥쳤는가. 긴박한 순간 문이 벌컥 열렸다. 다행히 아량과 그의 무리였다. 문밖에 신원 미상의 병사 서넛이 거꾸러져 있었다. 

  “어마마마 꼭 돌아오겠나이다. 그리고 이 칼끝에는 결코 가야의 피 한 방울도 묻히지 않겠나이다. 어마마마, 

  평안하소서.”     


    마당에는 이미 말을 탄 사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넓은 등을 가진 사내가 월광에게 고개를 숙였다. 

   “어서 오르시지요.”

   아량이 재촉했다. 거친 숲을 달렸다. 나뭇잎들이 얼굴에 부딪혀 쓰라렸다. 나뭇가지가 자꾸만 옷깃에 스쳤다. 월광은 넓은 등짝에 얼굴을 바싹 붙인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윽고 숲을 나와 평지에 이르렀다. 아직 날이 밝지 않았지만 월광은 말이 신라를 향해 달려오지 않았음을 알아챘다. 말이 다시 길을 잡아 달리기 시작하려 할 때 비로소 월광이 물었다.

  “어디로 가는 것이냐?”

  그러나 월광을 태운 넓은 등짝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어디로 가는 것이오, 아량?”

  월광이 뒤따르는 아량에게 고개를 돌려 물었다. 그러나 아량도 입술을 굳게 다문 채 대답이 없다. 아량이 끝내 대답하지 않자 월광은 화가 나서 넓은 등짝의 팔을 잡아채며 말을 세우려 했다. 

  “멈추지 마소서, 태자마마.”

  아량의 입술에서 엄한 목소리가 떨어졌다. 

  ‘내게 명령이라니….’

  월광은 아량을 쳐다보았으나 아량은 여전히 월광에게 눈길을 주지 않고 앞만 보고 내달렸다. 밤이 새도록 달리기만 했다. 달리고 또 달렸다. 마침내 말이 멈춘 곳은 멀리 성채가 아련한 들판에서였다. 날이 희끄무레 밝아오고 있었다.

  “무례를 용서하소서. 아령 공주님의 명을 따랐을 뿐입니다.”

  “아령 고모님을?”

  월광은 어리둥절하였다. 그때 저쪽 안개 속에서 누군가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월광 태자요?”

  아령 공주였다. 낮에 대전에서 뵈었던 아령 공주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어떻게 여기에서 있을까? 귀신이 곡할 노릇에 월광은 혼란스러웠다.

  “태자가 탈출하였으니, 신라와 대가야의 국경이 발칵 뒤집혔을 것이오. 그러니 태자는 올곧게 신라로 갈 수 

  없었을 것이오. 찬실의 살수(殺手)들은 아마도 태자께서 이곳 아라로 오신 줄은 꿈에도 모를 것이니 이제 마

  음을 놓아도 좋을 것이요. 자, 아량과 함께 따르시오.”

  아령 공주를 따라 월광 일행은 아라가야의 성산성으로 들어섰다. 미리 연통이 닿은 것인지 성산성의 병사들은 공주를 보자 군례를 취했다. 열린 성문으로 월광은 아령 공주의 뒤를 따랐다. 아령 공주는 월광을 여령왕에게 안내했다. 아령 공주는 월광 일행을 잠시 떼어두고 여령왕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마쳤는지 여령왕이 몸을 일으켜 월광에게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월광은 여령왕에게 고개를 숙여 먼저 예를 표했다. 그러나 월광은 여령왕의 환대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불안하기만 한 탓에 표정이 어둡기만 하였다. 밤새 말을 달려 피로가 쌓였는지 갑자기 졸음이 쏟아졌다. 월광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며 아령 공주가 여령왕에게 미안한 얼굴을 하였다. 왕이 자애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아령 공주도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고 월광을 부축하여 대전을 물러 나왔다. 공주는 월광을 미리 마련되어 있던 숙소로 이끌었다. 월광은 곯아떨어져 한낮이 지나도록 깨어날 줄 몰랐다. 다시 날이 저물어 저녁이 되었으나 월광은 여전히 일어나지 못했다.

  복면을 한 검은 두 그림자가 궐의 높은 담을 넘었다. 그림자들은 호위병의 뒤로 소리 없이 접근하더니 단박에 숨통을 끊어버렸다. 호위병들이 덜 채워진 보릿자루처럼 힘없이 옆으로 쓰려졌다. 드디어 살수(殺手)들의 그림자가 흰 문창호지를 검게 덮어왔다. 월광은 이불 밑에 숨겨 둔 칼자루로 손을 뻗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칼자루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당황스러웠다. 급히 몸을 일으켜 이불 밑을 더듬는 순간 와작작 방문이 부서졌다. 문짝이 부서져 떨어져 나간 공간으로 하얀 달빛을 튕기며 날카로운 칼빛이 월광의 몸을 노리며 찔러 들어왔다. 월광은 소스라치게 놀라 비명을 지르며 잠을 깼다. 소매를 들어 이마의 식은땀을 훔쳐냈다. 온전한 창호지가 달빛에 화안하게 비쳐들고 있었다. 월광은 더는 잠을 못 이룰 수 없어 문밖으로 나섰다. 문밖을 지키고 있던 아라의 호위병들이 월광에게 고개를 숙였다. 살수라니…. 아령 공주의 말대로 신라로 직접 가지 않은 것은 다행인 듯싶었다. 신라의 국경에는 이미 월광의 도피 소식이 파다할 터였다. 신라로 향했더라면 신라는커녕 대가야 국경 어디쯤에선가 찬실의 명을 받고 기다리던 병사들에게 칼을 맞았을지도 모르리라. 자신이 사라진 일로 신라와 대가야의 국경을 지키는 병사들이 잠들지 못하고 있으리라. 하얀 달빛을 밟았다. 성산궁 연화지(蓮花池) 주위를 거닐며 하얀 달빛을 잘근잘근 밟았다. 이제 어찌할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월광은 길을 잃은 듯한 자신의 신세가 처량하여 달빛 아래서 남몰래 눈물을 지었다. 

     

  “월광 태자. 복장이 그게 무엇이오?”

  아령 공주가 처연하게 달빛에 젖어 있는 월광에게 다가왔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월광의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에 아령 공주가 중년의 사내처럼 호탕하게 웃었다.

  “가야궁에서 듣지 않았소? 태자를 실한 배꾼으로 만들겠다고 하였건만.”

  월광은 그예 아령 공주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여전히 의아해하는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령 공주는 시녀 손에서 옷을 건네받아 월광에게 건넸다. 어정쩡하니 옷을 받아 든 월광은 낯선 갈옷과 공주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내일 아침에 곧바로 왜로 떠날 것이오. 단단히 채비하시오. 해풍과 뱃길은 사람이 정하는 게 아니라 하늘이 

  정하는 것이라 하늘이 때를 주면 아무 때라도 떠나야 하는 것이 배꾼들의 운명이니까. 더욱이 태자는 당분

  간 좀 더 깊숙이 숨어 있어야 하니 차라리 빠른 것이 잘된 일이요.”

  아령 공주가 시녀와 함께 사라진 쪽을 바라보며 월광은 상념에 빠져들었다.

  ‘열여덟의 내 운명은 어디를 향하는 것인가?’ 

  월광은 눈을 감은 채로 한동안 더 달빛 아래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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