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만 혼내지 마세요

이 성장통, 빨리 끝내고 싶다

by 인해 한광일

'아이 교육문제로 3월부터 늘 소통해왔던 어머닙니다. 갑작스런 이런 태도가 정말 당황스럽기만합니다. '

제방의 가장 약한 부분이 노출된 것일까? 같은 유형의 민원이 세 번째 발생했다. 이러다 자칫 TV 방송 카메라가 들이닥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학폭이야기가 아니다.


아이의 배우는 속도가 느릴 수 있다. 이게 원초적인 문제일까? 그래서 아이는 선생님 말고도 가방을 멘 채 다시 학원엘 가야한다. 아이는 교실에서 마쳤어야 할 공부를 다 마치지 못한 채 가방을 싼다. 조금만 더 지도하면 오늘 공부를 마칠 수 있다. 하지만 아이의 괴로워하는 얼굴이 안타까워 선생님은 아이의, 공부를 못다 마친 쪽(page)에 포스트잇 스티커를 붙여주며 격려한다.


'집에서 찬찬히 마저 해오면 선생님이 내일 아침 검사해 줄게.'

'네.'

아이는 풀려났다는 후련함에 우선 가볍게 대답한다. 아이는 곧 교문 밖에서 엄마의 일그러진 얼굴을 만난다. 다른 엄마들은 이미 사라진 뒤다.

'왜 이렇게 늦게 나와, 학원 늦었잖아?'

'선생님이 안 보내 줬어.'

'왜, 또?'

'내가..., 글씨 쓰기 다 못 해서.'

'아니, 정말 번번이 뭐 하는 거냐고?'

아이의 엄마는 누구에겐지 모를 분통을 터뜨리며 아이의 등을 떠밀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어머니는 집에서 아이의 공부를 관리해야 한다. 학원 숙제를 마치고도 다시 학교 숙제를 확인해야 한다. 학원 공부는 아이에게 버겁다. 그래도 숙제는 해야한다. 성실하게 학원을 따라가지 못하면 성실하지 못한 이유로 정원 인원에서 밀려날 지도 모른다는 근거 박약한 불안감 때문이다. 학원 선생님의 가르침이 이해되지 않은 채였으므로 학원 숙제가 쉽지 않다. 아이는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그리고 집에서도 괴롭다. 벗어날 수 없는 공부와 숙제의 감옥이 괴로워 눈물이 난다. 아이가 우는 걸 보니 어머니는 속도 상하고 화도 치민다. 우는 이유를 묻는 어머니께, 아이는 공부가 힘들어서 운다는 대답은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안다. 눈물에 대한 다른 핑계가 있어야 한다.


어머니가 학교로 들이닥쳐 어떻게 이런 폭력 교사가 이 학교에 존재하느냐, 아이가 공부 좀 못한다고 쥐어박을 수 있느냐며 교장실을 열어 젖히고 들어가 펄펄 끓는다. 또는 자기 아이의 이야기는 들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우리애 잘못이라며, 아이를 죄인 취급하는 이유가 뭐냐며 분노를 폭발시킨다. 폭력은 없었다는 대답, 인격 모독의 발언은 없었다는 대답은 인정되지 않는다. 혹시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서운하고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죄송하다는 사과' 정도로는 사태가 종료되지 않는다. 어머니의 분기가 선생님을 향해 있는 동안, 아이는 잠시 어려운 공부와 하기 싫은 과제로부터 해방된다. 경우에 따라서 선생님은 경찰조사를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시간이 오래 걸려야 한다. 불면과 괴로움의 나날 속에서 선생님이 마침내 너무 열심히 가르치려 한 게 실수였다는 깨우침을 얻는다. 그러나 이십 년 교사로서의 자부심은 이미 무너져 내렸다. 무릎에 힘이 빠져 서 있기가 힘들다.


자신의 분노에 공감해 주며 함께 부르르 떨어주던 그녀들이 없다. 어머니는 뜻하지 않게 전선에 혼자만 서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누구의 박수도 받지 못하는 당황스런 전사라는 것을 깨다고는 깊은 비애감에 빠진다.


아이는 배움이 느릴 수 있다. 내 아이의 배우는 속도는 남보다 느릴 수 있다. 내 학생 중 어느 누군가는 배움이 특히 더 느릴 수 있다. 그걸 인정해야 엄마 노릇하기도, 선생님 노릇하기도 덜 힘겹지 않을까? 정해진 시간에 남들과 같은 만큼 똑같이 성취를 이루어내기 쉽지 않은 아이들도 있다는 것을 빨리 인정해야 한다. 단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는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몇명의 아이라도 뒤에서 느리게 오고 있는 것을 보며, 쟤들 다 뭐냐며 무능한 교사라고 몰아 붙여선 안 된다. 느리게 자기 속도로 오고 있는 아이의 팔을 일방적으로 잡아 끌며, 뒤쳐지면 안 된다며 재촉하는 것은 아이의 보폭을 버겁게 하는 것이다. 마침내 힘겨워 울음이 나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선생님보다 어머니(부모님이라 지칭해야 했으나 처음부터 어머니로 대표하여 표현했으므로)가 먼저 아이의 느린 걸음을 이해하고, 존중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선생님께도 아이의 느린 걸음걸이에 대해 함께 존중해 주기를 부탁해야 할 것이다. 학원과도 솔직하게 이야기 나누어야 한다.


행복추구권은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한다. 학교에서 배우는 학생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권리여야 한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는 아이이거나 중간쯤 하는 아이, 공부를 좀 못하는 아이들 중 그 어디 쯤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누구나 학교 생활이 행복해야 한다. 오직 공부 하나만 놓고 보아도 학력차 만으로도 삼분의 일쯤은 행복한 아이이겠지만, 삼분의 일쯤의 아이들은 학교 생활이 그저그럴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삼분의 일쯤의 아이들은 공부시간이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 어려운 과목에선 이런 정서는 더욱 도드라질 것이다. 교육 연구자들은 바로 이 문제를 제일 먼저 탐구해야 하는 것 아닐까. 누구나 행복한 학교, 누구나 자기 속도를 존중받으며 모두가 행복한 학교. 어머니와 선생님이 충분히 노력하면 해결될 수 있을까?





좀 늦을 수도 있지, 뭐


여름 내내

가지마다 와르르

꽃송이 피울 땐

딴청이다가


가을 단풍 붉을 때

뒤늦게 혼자

새빨간 장미 한 송이

불쑥 내미는 가지도 있다


뭐, 다 괜찮다

그럴 수도 있다, 뭐

늦게 핀 꽃도 예쁘다,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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