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한계선

시련이 아니라 기다려 줄 때 더 잘 큰다

by 인해 한광일

화훼 전시장에서 수천만 원에서 일억 원 이상을 호가한다는 분재를 보았다. 키는 작아도 연륜이 깊은 듯했다. 키는 작으나 굵은 줄기가 용틀임을 하며 굽이치는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분재는 그만한 자태를 갖추기 위해 얼마나 가혹한 시련을 겪어내야 했을까? 분재를 가꾸기 위해 인위적으로 모양을 험(?)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생각을 가진 내게는 분재의 아름다움이란 인간이 부여하는 모진 시련을 다 이겨내고 기어이 생명줄을 이어 낸 애처로움일 뿐이다. 사람들이 중앙에 놓인 수억 원 가격의 분재를 둘러싸고 섰다. 그러나 그들의 감탄이 고통을 이겨낸 분재의 기괴한 용틀임에 대한 것인지, 분재에 붙은 가격에 대한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TV에서 세찬 바람에 시달리고 있는 산꼭대기의 키 작은 나무들을 보았다. 어느 고산지대의 수목한계선에서 살아가는 나무들이었다. 수목한계선은 말 그대로 수목이 생장할 수 있는 한계선이란 뜻이다. 수목이 자랄 수 없는 데는 극심한 건조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주로 지나치게 냉혹한 기온과 바람이 주요 요인이라고 한다. 그러니 수목한계선에서 자라는 나무들은 엄혹한 추위와 가혹한 바람에 꼿꼿이 자라지 못하고 거의 누워서 자라게 된다는 것이다. 그곳의 수목들은 모두 화훼 전시장의 분재들을 상당히 많이 닮아 있었다. 그야말로 자연이 빚은 분재들이다. 그러나 내 눈엔 그 역시 대견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안타깝기도 하였다. 도무지 동물들은 살 수 없는 척박하고 괴로운 환경. 그곳에서 식물들은 악착같이 뿌리를 내리고, 흙을 움켜쥐고 얼마나 호된 고난을 겪어 왔을 것인가.


사람, 동물은 물론 식물들도,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은 다 잘 자랐으면 좋겠다. 아픈데 없이, 벌레 먹은 데 없이, 구김살 없이, 푸르고 곧게 잘 자란 건강한 숲이야말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숲이다. 낙락장송이 경탄스럽긴 해도 역시 난 아름드리나무들이 죽죽 뻗어있는 깊은 산의 숲이나, 자연 휴양림, 수목원에서 훨씬 평화로움과 행복감을 느끼곤 한다. 그렇다고 시련에 맞선 낙락장송이 우습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시련이라면 기어코 극복해 내야 할 것이고, 자연의 이치에 따른 어느 정도의 시련 또한 겪어내며 살아가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시련은 자연의 일부여야 하고, 자연의 섭리에 의한 것이어야 할 것이다. 일부러 사람이 시련을 가하지 않아도 모든 자연은 겨울이란 시련을 겪는다. 울울창창한 숲이라도 엄혹한 시련을 가하면 황폐해지지 않는가.


광릉 수목원의 울울창창한 숲이 아름답다. 숲을 해치지 않고 보존하려 꾸준히 노력해 온 결과가 지금의 광릉 수목원이란다. 숲이 보존될 수 있도록 하는 최대한의 노력은 모르긴 해도 가만두고 지켜보는 것일 것이다. 광릉 수목원도 그렇게 가만두고 지켜보면서 이상 징후가 발견되었을 때, 적절히 보살펴줌으로써 지금의 모습으로 건강하게 성장했을 것이다. 광릉 수목원은 스스로 시냇물을 가지고 있다. 나무들은 뿌리로 알아서 습기를 흡습하고, 벌과 나비를 불러들여 꽃을 피우고 스스로 열매를 맺는다. 함께 모여 서서 수풀을 이루며, 수목원은 스스로 울울창창하게 성장해 왔을 것이다.


학교에도 가끔 차고 시린 바람이 거세게 불곤 한다. 그런 외풍을 맞을 때마다 학교는 크게 술렁이곤 한다. 학교가 수목원을 닮았으면 좋겠다. 학교는 이미 스스로 성장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대부분 잘 알고 있다. 바람의 방향은 다양하다. 매콤한 사회문제 바람이 느닷없이 학교로 불어오기도 하고, 의욕 과다의 학부모님으로부터도 바람은 불어온다. 교육계 상단에서도 예기치 못한 바람이 불어오기도 한다. 학교가 똑바로 가르치고 있는 게 맞느냐, 왜 학부모의 의견은 무시되냐, 새롭게 가르쳐라, 승진 규정을 바꾸겠다, 미래 교육을 왜 안 하느냐는 식의 연속적으로 몰아붙이는 바람에 교육은 뿌리까지 흔들리곤 한다. 사방에서 학교를 향해 한꺼번에 바람이 불어올 땐 정말 정신 차리기도 힘겹다. 학교에 너무 많은 지시와 지침, 명령과 약속을 주지 않으면 좋겠다. 학교는 학교가 무엇을 해야 할지 스스로 잘 알고 있다. 수목원을 가꾸듯 학교가 제대로 성장하고 있는지 지켜 봐주면 좋겠다. 숲을 돌아보다가 잎이 마르고 병색이 보이는 나무를 돌보는 나무 의사들처럼, 기운을 잃거나 마음을 다친 선생님을 보고 보살펴주면 감사하겠다. 그러면 학교 숲은 금세 다시 건강해질 것이다. 지침과 호통과 질책이 거셀수록, 차고 거센 바람에 시달리는 수목한계선의 나무들처럼 선생님들도 겨우 생명만을 부지한 채 벼랑에 매달려 있는 왜소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분재처럼 왜소해진 선생님은 분재와 달리 존경은 커녕 비난과 뒷말과 혐오로 더욱 무시될 뿐이다. 꾸지람과 지시와 지침과 명령 대신 선생님들이 함께 모여 앉아 더불어 울창할 기회를 주면, 학교의 교육은 저절로 울창해질 것이다. 스스로 연찬하고 연수하며 스스로 성장할 것이다. 스스로, 그리고 함께 성장하는 존재로서 선생님을 믿어주면 좋겠다.


학교가 웃으면 좋겠다. 학교가 행복하면 좋겠다. 행복한 가정의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을 까닭이 없듯이, 행복한 학교의 학생들이 행복하지 않을 리 없다. 행복한 학생들이야말로 장차 행복한 국민이 되지 않겠는가? 학교의 준비란 학생들과 잘 지낼 준비다. 학교에 교육을 온전히 맡겨 보면 안 될까?


아이들이 둘씩 셋씩 짝지어 등교하며 까르르 웃어댄다. 오랜만에 뵙는 선생님께 꾸벅 인사하며 즐거운 기분을 나누어준다. 아침 햇살이 운동장에 노랗게 쏟아진다. 초록이 무성한 2학기 개학 날의 아침이다.






플라타너스 겨울나기


가난한 가쟁이 사이로 바람이 차다

팔뚝이며 몸통에 감출 수 없는 버짐이 번지고

묵은 흉터는 더욱 도드라진다.

온 겨울을 침묵과 인고로만 일관하며

마지막엔 새 한 마리 안아 줄 온기마저 버린다


바람결에 새살거리며 깔깔대던 웃음은 잊은 지 오래

겨우내 물 한 모금 빨아올리지 않은 입술로

결빙과 건조의 내핍 속에 우뚝 서서

어떤 살아 있음의 증거도 내비치지 않은 채 살아가는 것


고난의 들녘을

기다림이란 굵은 생뼈 하나 통째로 세우고

푸른 꿈 한 조각도 품지 않은 듯

죽은 듯 생존하는 것, 시간을 건너는 것


플라타너스가 겨울을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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