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울려서 2라운드

해결사는 학부

by 인해 한광일

#1

문제가 문제가 된 건 부모들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이미 사과하고 용서했으며, 쉬는 시간에도 함께 웃으며 노는, 문제 이전의 관계가 회복되어 있었다. 아니, 화가 난다고 애 얼굴에 주먹질이라니, 부모의 입장에선 죽어도 용서하지 못하겠다는 거다. 때린 아이 뒤쪽의 학부모 태도가 괘씸하다는 것이다. 그게 말로만 사과지 진정한 사과냐는 것이다. 그쪽 부모도 다르지 않았다. 그만큼 사과했으면 됐지, 애들끼리 그런 일로 뭘 더 사과하라는 거냐는 거다.


교실에서 함께 잘 지내던 아이를 갑자기 상담실로 격리시켜야 했다. 가해자니 피해자 아이와 같은 공간에 두지 말라는 요구였다. 결국 아이는 교실을 떠나야 했고, 두 아이의 회복된 관계는 부정되고 말았다. 아이는 또 친구에게 맞았을 때의 속상한 마음, 같이 때려주지 못한 억울함을 소환하며 식식거렸다. 가해자로 불리는 아이는 다시 큰 죄인이 되어 눈물을 흘리며 겁을 먹었다.


아이들의 부모는 각각 공개 사과를 요구했고, 요구받은 부모는 쓸한 표정으로 사과를 내려놓고 각각 자리를 떴다. 주먹질한 아이는 방과 후 1주일 동안 이런저런 봉사를 하고 나서야 온전히 교실로 복귀할 수 있었다. 서로 잘 놀던 아이들이 많이 서먹서먹해졌고, 서로 말이 없었다. 아이들보다 담임 선생님이 저간의 일로 기가 죽어 두 아이의 눈치를 살피다가 조심스럽게 공부를 이어간다.


교내 폭력을 예방하겠다며 수년 전 학교폭력 예방 자치위원회가 학교마다 꾸려졌다. 사정의 칼날처럼 수많은 거친 아이들이 학교폭력 자치위원회에 검거(?)되는 바람에 순하고 몸이나 마음이 약한 아이들도 폭력 앞에 노출되는 빈도가 대폭 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로써 학교는 교육을 잃고 원치 않아도 법집행자(?)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2

또 다른 아이가 복도를 뛰는 아이의 발에 밟혀 아픔을 못 참고 울음을 터뜨린다. 선생님이 깜짝 놀라 두 아이를 불러 세우고, 복도를 뛰다가 피해를 끼친 아이를 훈계한다. 선생님 앞에서 두 아이는 진심으로 사과하고, 너그럽게 용서한다. 두 아이는, 다쳤으면서도 너그럽게 용서하는 미덕과 뜻하지 않게 피해를 끼친 잘못에 정중히 사과하며 미안한 마음에 고개 숙인다. 그리고 점심시간에 운동장에서건 교실에서건 함께 놀거나 이야기를 나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교육은 용서와 사과, 화해와 관계 회복이라는 미덕을 아이들에게서 구현해 낸다. 모르긴 해도 아이들의 가슴엔 용서와 사과, 화해와 관계 회복이라는 사회적 가치의 씨앗이 파종되었을 것이다.


아니다. 부모는 이 문제를 학교폭력 자치위원회에서 해결하고자 했다. 결국 복도를 뛰다가 발을 밟은 아이는 지난날의 거친 행동, 어깨를 밀쳐서 또 다른 아이도 다치게 했던 행적들이 낱낱이 들춰져 나쁜 아이로서 당연히 벌 받아야 할 가해자가 된다. 발을 밟힌 아이의 부모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어른들에게서 전해 들어 어떤 벌을 받게 될까 무섭고도 무섭다. 화가 난 부모에 의해 아이는 자신이 이미 용서한 아이가 얼마나 나쁜 아이인지 새삼 깨닫는다. 잘못은 징벌로 응징해야 한다는 부모의 가르침을 뼈에 새긴다. 조치가 내려져 아이는 벌을 모두 수행한다. 이제야 마음이 홀가분하다. 복도를 뛰다가 자기에게 발을 밟힌 아이에게도 부채 의식을 깔끔하게 지워낸다. 잘못은 온전히 씻어졌다. 두 아이는 이제 서로 가까이 접근하지 않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한다. 각자의 등 뒤로 자신의 부모들의 오래도록 식지 않는 분노를 가방처럼 메고 다닌다.


#3

학교는 더 이상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가치를 가르치기 쉽지 않은 곳이 되어 버렸다. 학생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더 이상은 교육적으로 중재하고 조절하며, 너그럽고 이해심 많으며, 용서하고, 사과로서 이해를 구하는 가운데 화해하여 관계를 회복하는 인격의 사회인을 재생산하는 역할이 종료되어 가고 있다. 공은 학교가 아니라 개별 학부모에게 넘어가고 있다. 일찌감치 법치를 익혀 처벌과 응징을 경험하는 법치 사회인으로 거듭날 뿐이다.


그래도 기다려 볼까? 기다리면, 다시 생각해보자 할까? 학교가 할 수 있다는 걸, 믿어 줄 때가 다시 올까?







5일장




서울 사람들은

절대 모를 거야, 5일장


밭 갈던 종아리 씻고

쇠죽 쑤던 손 털고


찬물에 세수하고

거울 속 새치 뽑고


허영허영 걸어서

투더더더 오토바이 타고

더러더러 버스 타고


골짝골짝에서

읍내 장터로


모여든다,

모이러 간다


모여 웃는다,

모여 웃으러 간다


삶을 좀 내다 팔러 간다

삶을 좀 사러 간다

삶을 좀 삶으러 간다


5일 간이나

기다리고 기다린


5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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