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와 할머니(시수필)
할머니는 아직도 할아버지가 그리우신가 보다
비 내리는 처마 밑에서 자전거는 할머니처럼 몹시도 늙었다. 할머니는 오랜만의 기름 냄새로 코끝이 간지럽다.
시아버지 제사에 쓸 호박전을 부치느라 바쁜 며느리는
더는 참지 못하고 결국 발딱 일어나
툇마루에 앉아 종일 게임을 일삼는 손주 등짝에
그놈의 스마트 폰 뽀개버려야 정신 차리겠니, 어쩌겠니 하며 부아를 쏟아붓고 만다
그럼, 뭘 하고 놀라고?
엄마의 잔소리를 뿌리치면서 꽁무니를 빼던 손주 아이의 눈에 어째서 저 늙은 자전거가 눈에 띄었을까? 달아나다 말고 손주 녀석은 비좁은 처마 끝에서 교묘히 낙수를 피하며 쪼그리고 앉아 자전거 페달에 손을 댄다
손주 녀석이 다치지나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설마설마하던 바퀴가, 아이가 장난 삼아 깨운다고 벌겋게 녹슨 세월을 투둑 투둑 털어내며 뼈맞춤하는, 자전거 꼴이 할머니는 우습다
손주의 놀잇감이 된 자전거는 생전에 축적된 노동으로 관절염이 심하던 영감처럼, 앓는 소리를 하며 헛바퀴를 돌고 있다. 정말 우습다. 붉은 녹 먼지가 영감의 값싼 담배 연기처럼 피어난다
주인도 없이 늙어 가는 꼴이 밉살스러워 '고물장수를 부르던지, 원' 하는 할머니의 속 빈 협박을 들으면서, 그러나 자전거는 별 탈 없이 한 삼 년 세월을 벽에 기대어 무사히 늙어온 것이다
영감의 자전거가 담벼락에 기대어 대문 밖으로 마실 다녀오는 할머니의 발소리를 들으려는 듯 , 고개를 돌리고 섰던 모습이나, 얄팍한 겨울 햇살에 흐릿하나마 은빛 눈살을 찌푸리며 해바라기 하던 모습이 할머니는 영감만 같다고 문득문득 착각하곤 했었다
손주 녀석의 장난감이 된 자전거. 오랜 중풍 환자처럼 거동도 못할 줄 알았던 게, 끙끙거리면서 움찔거리는 게, 할머니는 우스운 건지 대견한 건지 모르겠다. 고물 자전거란 물건이 영감 흉내를 내도 못 된 것이나 흉내 내고 있다
낼모레가 시험이라면서 글자 한 자 안 보는 손주 녀석에게 며느리가 기어이 또, 옷에 때 묻히면 빨래는 누가 할 거냐며 냅다 소리를 지른다. 아이가 에이 놀지도 못하게 한다며 빗속으로 살 부러진 우산을 들고 툴툴 나가 버린다 설핏 놀기 좋아하던 영감의 그림자를 본 게 아니었나 혼자 놀란 할머니가 누구에겐지 모를 혀를 쯧쯧 차고는 탁 문을 닫아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