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기 너무 싫어. 주문이라도 외워 볼까?
출근길.
비가 눈앞에 희뿌연 안개를 만들며 세차게 내린다.
겨우 도착한 일터.
지친 몸은 습기를 물에 젖은 솜처럼 빨아들인다. 파업이다.
하지만 오늘은 밀린 업무가 많아 농땡이 치고 싶다는 몸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
전투를 앞두고 경건한 마음으로 커피 한 잔 하고자 부서원들에게 주문을 받는데,
비니가 고맙게도 커피를 대신 사 왔다. 역시, 힘들 때 위로가 되는 내 최애 후배다.
장기간 휴직하던 때가 떠오른다.
집에만 있었으면 생생한 감정들을 느낄 수 없었을 텐데…
나와 세상과의 다름에 주눅 들었을 텐데…
내 주변을 바라보니,
마음을 잘 써주는 비니도,
엉뚱하지만 마음이 유독 가는(걱정되어서?) *미도,
내일부터 출산휴가로 부서를 탈출하는 부러운 *희도,
젊음 가득한 어린 인턴 *민도,
요즘 나를 자주 화나게 하지만 감성이 통하는 월매 부장도,
그리고 어제 함께 미술수업을 강제 등록 당하고 햄버거까지 사준 은* 과장님도…
나에게 일터가 없었다면 함께 부대낄 일 없는 머나먼 존재 들이었겠지.
회사는 나를 말도 안 되는 출장을 보내고,
고장 난 만신창이 몸뚱이를 억지로 컴퓨터 앞에 앉혀놓기도 하고,
인연을 만나게도 하고,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태우다,
오늘처럼, 산더미 같은 일을 하게 한다.
그래도 오늘 고기 사준다고 하니까…
그리고 비도 오고 마음이 차분해지니까…
그러니까, 오늘도 좋은 날이다. 일을 하자! (아브라 카다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