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호흡기는 건드리지 마라!
마침내 봄이 따뜻한 날씨와 함께 오는구나 싶었는데, 미세먼지가 도시를 감싸며 희뿌연 실드를 치고 있다. 미세먼지로 인한 보온 효과인가? 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잠실로 향하는 출근길은 하얀 먼지 구름에 가려졌고, 회사 근처임을 알리는 이정표인 롯데월드타워는 흰 이불을 덮은 듯 꼭대기만 뺴꼼히 드러내고 있었다.
미세먼지는 연둣빛 새싹을 기다리는 나뭇가지 위에, 분주한 출근길 자동차의 앞 유리창 위에, 그리고 비염이 있는 내 콧속으로 무자비하게 스며들었다.
라디오에서 봄노래가 흘러나오자 이맘때면 설레던 기억이 떠올랐지만, 이내 숨쉬기조차 거북하다는 느낌과 함께 이 따뜻함마저 해로운 먼지처럼 느껴졌다. (마스크! 마스크가 필요해!) 목이 칼칼하고 눈이 간지럽다.
올해는 4월부터 바로 여름이 시작된다고들 한다. 봄과 가을은 점점 더 짧아지고, 이제 겨울과 여름만이 남았다. 마치 좋은 시절이 다 지나간 지금의 내 삶 같다. 희망과 설렘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고된 순간들만 남은 듯하다.
미세먼지는 밤이 되어서야 잠잠해진다. 어제 산책을 못해 화가 난 댕댕이를 달래며 어두운 길을 나선다. 녀석은 하루 종일 혹사당한 내 아픈 허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미친 듯이 질주한다. 나는 헉헉거리며 녀석이 킁킁 냄새 맡는 틈을 타 진정해보려 하지만, 야속하게도 숨 돌릴 틈을 주지 않고 다시, 또다시, 또또 다시 뛰어간다.
오른손 손가락이 부어올랐다. 요즘 술이 달아서 한 달 동안 저녁마다 반주를 했더니 몸무게가 2kg 늘어난 것은 물론, 서비스로 류머티즘 관절염까지 따라왔다. 중간 손가락 마디가 볼록한 게 꼭 우리 집에서 알을 품고 있는 국멸치 사이즈의 암컷 구피 같다.
그렇게 또 하루가 흘러간다.
그래도 고민했던 업무를 어느 정도 마무리했고, 정신없이 바빴지만 하루를 잘 보냈음에 감사한다. 특히 오늘은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가 학교 적응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찾지 않고 오전부터 의젓하게 핸드폰과 워치를 내려놓고 학교에 가줘서 너무나 고맙다. 밤에는 알아서 샤워도 군말 없이 바로 했다!
짧아지는 봄과 가을처럼, 힘든 하루 속에서 드물게 찾아오는 아이의 평온한 일상은 무거운 마음에 작은 쉼을 선물한다. 물론 댕댕이의 귀여운 애교와 주인을 배려하는 모습도 함께한다. 힘든 계절이 지나야 만 좋은 계절이 찾아오는 걸까?
그래도 봄과 가을이 아직은 있음을 감사하며,
착한 지구인이 되어 지구 온난화를 막을 수 있도록 텀블러와 장바구니를 주섬주섬 챙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