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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에서 먹으니 그리 좋더냐?

오늘의 빌런은 하나가 아니었다. ( 3 + 오바이트녀 )

by 참지않지


운전하며 퇴근하는 길... 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고깃집에서 고기 먹고 싶어, 배가 너무 고파'.


배고픔에 약한 나는 아이를 돌봐주시는 이모님의 가성비 고깃집에 대한 정보를 듣고는 댁 근처에서 조인하기로 약속을 잡고 어둠 속을 가르며 고깃집 정보를 추가로 서치 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갈등한다. '

돼지고기는 집에서도 질리게 먹고 소고기를 마음의 준비도 없이 먹으러 가기엔 부담이 크다. 그렇다고 돼지를 먹이자니 돼지불백이나 갈비 같은 베리에이션보다는 생고기를 좋아하는데... 괜히 돈만 버리는 게 아닌가 고민된다.


그러나 시간은 잔인하게도 나의 시련에 충분히 대비할 수 있는 여유를 주지 않고 양재대로의 끝이 보이지 않는 붉은 정차 등 행렬에 태워 약속의 장소로 날 옮겨 놓았다. 난 불필요해진 정신줄을 내려놓고 아무개 고깃집으로 들어갔다.


편식이 심한 아이가 뻑뻑한 삼겹살인데도 분위기를 타서인지 열심히 싸 먹는다. 엄마는 거드는 사람일 뿐 제 혼자 먹으로 온 아이처럼 아주 열정적으로 흡입한다.


안 그래도 점심 부서 회식 때 과식한 데다, 함께 식사한 건물주(자랑 맨날 자랑... 절대 초대 안 해줌... 뻥인가?) 여사님이 급체로 오바이트하는 등을 두드려준 탓에 속이 울렁거려 (옮는 병인가? 우욱!) 서운하진 않다.


들어올 때와 달리 금세 주변은 인근 직장인 들로 북적거린다. 한잔하러 들른 어르신들, 생기 넘치는 앳된(아직 피부가 탱탱한) 직장인들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지글대는 돼지님 앞에 초록병이 술 한잔을 떠다 놓고 하루의 피로를 풀어댄다(할 말들 참 많아....).


배가 차기 시작하자 문득 초록병에 술 대신 담긴 칠성사이다 옆에서 돼지고기쌈을 받아먹는 중딩 아들과 엄마의 조합은 유독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여 사장님이 조금 더 챙겨준다. 그럼 뭐 어떤가. 아이가 잘 먹으니 성공이다.


좁고 시끄러운 식당을 간신히 벗어났다(냄새 숨막...).

아이의 머릿결은 돼지기름의 축복을 받아 마호가니 브라운 빛깔의 바선생 등짝처럼 매끈하게 반짝인다. (왜 흐뭇?)


고추 먹고 맴맴... 오늘은 1절만 하지 그러냐...

식사를 마치기 직전 매운 고추를 성큼 베어 물은 아이가 맵다고 소동을 벌인다. 하는 수 없이, 주차하기 더럽게 힘든 인근 마트 주차장에 대충 차를 세우자마자, 아이가 냅다 뛰쳐나간다.


계산 전에 우유를 뜯어 마실세라, 우리 집 중딩이가 범법자가 되지 않도록 마트를 향해 체내에 잔류하는 아드레날린 모두 모두 끌어모아 무거운 몸을 발사한다. (3, 2, 1, fire!.. 늙고 지쳤다...)

그래서... 스위트홈이란....

현관에 들어선다. 털북숭이 몬스터 소환 주문을 외운다. 빤디 빤디 빠아아안디!!!!

강아지가 커다란 앞발을 들고 점프하며 반긴다. 이제부턴 엄마와 반디의 타임이다. 함께 뀨우뀨우 끼잉끼잉 거리며 여기저기를 십여 분 넘게 쓰다듬고 끌어안고 뽀뽀하고 호롤롤롤 와랄랄라 하며 반가움의 정수를 펼친다. (내가 이 맛에 살지!).


꼭 그렇게 니들 맘대로 해야 속이 시원했냐!

아... 그런데 아이의 개를 빼앗으려는 극악무도한 겐세이가 시작된다. 내 하루의 하이라트 마저 방해하냐!!! (반디는 아이를 매우 귀찮아한다)


나는 상냥하고 교육적인 언어로

'고기 잘 처먹었으면 이제 그만 꺼져!'

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전한다.


오... 드디어 쉬는구나

오늘의 귀가 리추얼마저 끝났다. 8 to 8... 12시간 만에 집이다! 몸을 뉘며 그리운 핸드폰을 집어 드니 반디가 앞발로 누워있는 나를 쓰윽 쓰윽 쓰다듬는다.


'뭘 벌써 누워. 얼른 놀자! 하루 종일 기다렸자네...'


하... 매우 귀찮지만 귀여우니 어쩔 수 없이(책임감 아님) 인형 뺏기도 하고 던지기도 하고 한참을 놀아준다.


난 누구? 여긴 어디?

몰아치는 일상에 집 나간 정신을 붙잡아 와서 잠시 오늘의 일과를 되돌아본다 (아련). 낮에는 회사원으로, 퇴근 후엔 아이와 강아지에 대한 보호자이자 양육자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것에 정신이 없었다. (조작되고 미화된 기억)


아 그리고 또 중요한 일을 했었지...

분무기로 물을 뿌려 주었다

회사 서양란에 ( 내가 물을 주고 정성 들여 일 년 반 만에 꽃 피운)


분무기로 물을 뿌려 주었다.

오바이트녀에게 (급체로 시들어 버린) 실은 누워서 쉬고 온 그녀의 뒷머리가 눌려서...

직원들이 그 모습을 보며 소리 내어 웃는다. (착한 짓+개그 더블 콤보!)


어쨌든 분주했지만 그런 오늘이 싫지만은 않다. (라고 셀프 체면을 건다)


하... 그런데 아직 댕댕이 산책이 남았네? 극한견주ㅠㅠ

오늘은 날도 풀려서 반디에게 핑계도 못 댄다 (빤디 추워어 에취 에취 알았지?). 어제도 피곤하다고 건너뛴 댕댕이 산책을 해야 할 텐데 그럼 난 언제 쉬나?


나도 혼자 있고 싶다 아아아!!! (이것이 내 진심)

새벽 한 시 반... 아직 하나 더 남았다.

집 나간 남편이 날짜가 바뀌어 집에 돌아왔다(석식 약속 있다며 나간...)

피곤해 죽겠는데 술냄새 + 담배냄새를 뿜으며 혼자 그날 있었던 일을 이미 영업이 끝나 셔터 닫은 내 고막에 도란도란 샤우팅 한다.


이것 봐라! 내가 그래도 회사생활을 잘했긴 했나 봐... 이런 것도 챙겨주고! (딸꾹) 어쩌고 저쩌고!


난 딱 한마디로 대답한다. '이빨 닦고 다른 방 가서 자'


잠을 깬 짜증이 내려가고 혼자 방에 남아 멍때리는데 남편이 남기고 간 서글픔이 방안에 아직 있었다(데리고 가란 말이다!).


남편은 얼마 전에 신입 때 부터 일했던 일터를 떠나게 되었는데, 오늘 만난 예전 동료와 지인들이 힘내라고 책도 세권이나 선물하고 거기다 남편이 그만둘 때 울었다는(술김에?) 후배가 손에 돈을 쥐어주었다. (내가 구겨진 마스크 또 착용하지 말랬지! 불쌍 콘셉트 성공사례인가?)


결국 남편은 용돈을 받아(자그마치 20만 원!) 집으로 돌아왔다.

안 받겠다고 실랑이를 벌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너덜더덜 하다.

나이도 어린 친구가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그렇게 했을까 싶다가도, 마음이 이상하다.

다음에 만나서 돌려줘야겠다는 남편의 말과 함께 그 따듯한 배려 덩어리는 돌돌 말리고 구겨진 슬픔이 되어 잠못드는 밤과 함께 집 한구석에 남겨졌다(데려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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