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연애를 시작해 보실래요!
5060, 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나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연애를 시작해 보실래요?
어느 날, 내가 내 삶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물론 결혼을 하기 전에도, 그리고 지난 삶의 어느 순간순간에도 그랬던 때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때는 실체를 알 수 없는 불안과 조급함이 있었다. 때로는 딛고 서 있는 발 아래가 굴절돼 보이고 골도 깊었다. 그래서인지 하는 일들에 대한 확신이 약해서 매사를 결정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고 결정한 후에도 자꾸 뒤돌아보며 스스로를 자주 의심하고 자책했다. 아마 나의 그런 점 때문에 가족이나 직장 동료들도 힘들었으리라.
내가 내 삶의 중심이라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마치 내가 나와 연애하는 느낌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격한 설렘이나 감정의 기복이 있는 이성과의 연애와는 다르다. 그리고 ‘오늘부터 1일’과 같이 시작점이 분명하지도 않다. 혼자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음악회나 전시회에 가도 낯설지 않고, 그 시간이 편안하고 행복하게 느껴지는 그때가 나와의 연애가 시작되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물론 사람마다 타고나는 기질이 달라서 모두 같지는 않겠지만 나의 경우는 그랬다.
나는 천성적으로 ‘혼자’를 즐기는 사람은 아니다. 남편이 들으면 섭섭해하겠지만 결혼을 한 이유 중의 하나도 혼자 밥 먹기 싫어서였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먹거리를 그다지 중요시 하지 않는 나는 요리에 대한 책임과 의무는 크면서도 음식하는 것을 즐기지 않아 요리가 내 인생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이다. 그래서인지 무엇을 먹느냐보다 누구와 무슨 이야기를 하며 먹느냐가 더 중요했다. 결혼하고 오랫동안 남편이 회식을 하고 늦게 들어오는 것을 불편해 했는데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혼자 밥을 먹는 것에 대한 심리적 부담이 제일 컸던 것 같다.
극장을 혼자 간 것도 추운 겨울날 남편과 다툰 후 집은 나왔는데 정말 갈 곳이 없어서였다. 극장에서 혼자 영화를 보며 영화가 슬퍼서인지 지금의 상황이 서글퍼서인지 훌쩍거리며 ‘나도 혼자서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는 독립적인 사람이다.’라고 스스로에게 힘을 실어주려 노력했지만 여전히 혼자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낯설고 불편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즐겁고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내 청춘이 다 가고 있다는 조급함이나, 건강한 날들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 불안함 때문에 무엇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절박함으로 시작한 일들이 순수한 기쁨을 주기 시작했다. 처음엔 새롭게 시작한 일들이니까, 혹은 그동안 해 보고 싶었던 것들이니까 그렇게 느껴지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찬찬히 들여다보니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하는 이 순간’이 무척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나 자신과 잔잔한 연애를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문득 ‘나 자신을 내 삶의 중심에 두고 사는 지금의 나는 이기적인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 보니, 훨씬 여유롭고 주변도 두루 살피는 나를 발견하게 됐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나를 내 삶의 중심에 둔다는 것이고, 내 삶의 자존감을 높이는 것이므로 나와 관계된 모든 것들의 자존감을 높이고 사랑한다는 것과도 같다.
생각해 보니 내 삶의 중심은 때에 따라, 그리고 상황에 따라 바뀌어 왔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공부가 내 삶의 중심이었고, 20대 때는, 그때는 몰랐지만 삶의 중심을 찾는 것이 삶의 중심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교사로 근무를 시작하면서부터 내가 가르치던 학생들이 내 삶의 중심이었다.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면서부터는 가족, 특히 자녀가 내 삶의 전부여서 그 시절 내 삶 속에는 ‘내’가 없었던 것 같다. 딸과 아들이 스스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그들이 스스로에게도 그리고 사회에서도 인정받고 기여하며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던 시기였다. 그때 내 삶의 중심은 가족과 그리고 자녀였다. 물론 가족은 지금도 내 삶의 중요한 부분이기는 하다.
이른 퇴직을 하고, 자녀들이 모두 일을 하며 경제적 독립을 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한 지금 이때야말로 나 자신을 내 삶의 중심에 두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다’라는 말이 진리다 싶다. 옛말 하나 틀린 것 없다는 말에도 공감하면서 제 때에 제 자리를 찾은 나 자신이 대견하다.
자신과 연애를 시작한 사랑스러운 나, 내 삶은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