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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일하기 싫은 날은? ‘맨날’?

어느 마흔한 살, 워킹맘의 아침

by 오월 나무

“띠리릿, 띠리릿, 띠리릿~, 띠리릿, 띠리릿, 띠리릿~.”

그녀의 손이 재빨리 알람의 스톱 버튼을 누른다. 게슴츠레 눈을 떠서 시간을 확인한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아침 6시 30분. 아침은 오늘도 이렇게 찾아온다. 중간에 단 한 번도 깨지 않고 잤다. 그런데 몸은 전혀 잘 잤다고 말하지 않는다. 침대라도 뚫고 꺼져버릴 듯 무거운 몸, 일으키면 마치 건져 올린 빨래 마냥 하염없이 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릴 것만 같다. 아침에 할 일을 생각해 본다. ‘샤워, 아침 준비, 아이들 준비물 점검…’ 침대 위에서 이렇게 뭉그적거릴 시간이 없다.


그녀는 샤워를 하는 동안에도 머릿속이 복잡하다. 몸은 샤워부스 안에 있지만 마음은 주방에 가 있다. 음악을 들으며 여유 있게 하는 샤워, 그녀가 즐기는 것 중 하나였다. 그런데 지금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대충 씻고 축축한 몸으로 주방에 들어선다. 사과와 바나나를 먹기 좋게 자르고 블루베리도 한 줌 씻어서 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삶은 계란 네 개와 우유, 시리얼, 포크와 숟가락, 국그릇도 네 개, 그리고 어제 먹다 남은 롤 케이크까지 꺼내 놓는다. 아침식사 준비는 이 정도면 된다.

그녀는 아이들 방으로 향한다. 아홉 살과 일곱 살, 잠을 많이 자야 할 나이다. 그런데 엄마, 아빠의 이른 출근 시간에 맞춰서 일찍 일어나야 하는 아이들에게 많이 미안하다. 온몸의 긴장을 다 풀고 편안하게 자고 있는 아이들, 차마 깨우기가 미안하다. 얼굴의 모든 근육들이 웃고 있는 듯하다. 잠시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얼굴을 쓰다듬어 주고 몸을 마사지해 준다. 아이들이 꼼지락거리며 배시시 눈을 뜬다. 고맙게도 누굴 닮았는지 아침잠이 많지 않은 큰 아이는 금방 일어난다. 문제는 둘째다. 둘째는 저녁잠이 유독 없어서 쉽게 잠들지 못하고 그만큼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힘들어한다. 그래도 이 시간이 되면 비몽사몽 습관처럼 일어난다. 미안하고 고맙다.

그녀는 식구들과 식탁에 앉는다.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면서 다시 한번 아이들 준비물과 과제, 그리고 오늘 해야 할 일을 확인해 준다. 그리고 남편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오늘 회식이 있어서 남편의 스케줄을 확인해야 한다. 어젯밤에 말했어야 하는데 남편이 늦게 오는 바람에 할 수가 없었다. ‘퇴근 후에 누가 아이들을 챙겨야 하나?’ 아침 식탁에서 꺼내기 민감한 화제다. 출근 전 아침에는 누구나 여유가 없고 예민하니까.


“자기, 나 오늘 회식이 있는데 당신은 퇴근 후 스케줄이 어떻게 돼?”

“나? 오늘 스케줄?”

남편의 동공이 흔들린다. 시선도 피한다.

‘안 돼! 제발 아무 일도 없다고 말해 줘!’

마음속으로 외쳐본다. 다행히 남편은 순순히 마음을 접었나 보다. 어젯밤에 늦게 왔으니 당연한 것 아니냐고 그녀는 속으로만 생각한다.

“그래, 오늘은 내가 둘째 유치원에서 데리고 오고 아이들 저녁도 챙겨 먹일게.”

선심 쓰듯 남편이 말한다. 얼굴이 썩 편해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무난하게 잘 넘어가서 다행이다. 아침부터 일이 꼬이면 하루 종일 찜찜하다.


그녀는 먼저 식탁에서 일어나 양치질을 하고 출근복으로 갈아입는다. 아이들 방으로 가서 아이들이 입고 갈 옷도 챙긴다. 그녀의 손이 점점 바빠지기 시작한다. 서둘러야 한다. 전날 저녁에 미리 다음 날 입을 옷을 정해 두면 좋다고들 하는데 게을러서인지 그녀에게는 간단한 그 일이 쉽지 않다. 그녀는 최대한 낮고 침착한 목소리로 아이들을 재촉하기 시작한다.

“애들아, 아침 다 먹었니? 어서 양치질하고 옷 갈아입고 가야지!”

아이들도 이제는 안다. 그녀의 목소리 톤이 이 정도일 때 서둘러야 한다는 것을. 소리 없이 발걸음이 빨라진다. 다만 둘째는 아직도 잠이 덜 깼는지 눈꺼풀이 내려와 있다.


큰 아이 학교는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데 엎드리면 코 닿을 곳이라 혼자 가도 된다. 작은 아이는 남편이 유치원에 데려다준다. 그녀는 대충 식탁을 정리하고 나갈 채비를 끝낸다. 엘리베이터에서 큰 아이와 인사를 한다.

“학교 잘 다녀와, 점심도 맛있게 먹고. 참, 숙제 마치고 노는 것 잊지 마! 피아노 학원도. 안녕.”

그녀는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 사이로 큰 아이 얼굴을 보며 목소리를 높인다.


오늘의 1라운드가 끝났다. 지금부터 2라운드가 시작된다. 자동차 문을 열고 자리에 앉은 그녀는 시동을 걸면서 옆자리에 화장품 파우치를 놓는다. 2라운드를 위한 준비, 화장을 해야 한다. 직장 일과 가사로 피곤한 얼굴은 그녀의 나이를 적나라하게 말해 주고 있다. 한때 ‘남자로 태어났으면’하고 강렬하게 원했던 적이 있다. 이유는 간단했다. 화장을 안 한다면 출근 부담이 훨씬 줄어들 것 같았기 때문인데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출근하는 차 안에서 신호대기 시간을 이용해 짬짬이 숙달된 솜씨로 화장을 하고 있는데 전화가 온다. 싱글인 친구다. 친구의 목소리에서 윤기가 흐른다. 건강을 위해 꾸준히 한다는 아침 조깅과 여유 있는 샤워, 커피 한 잔에 과일과 통밀 빵으로 했을 아침식사, 풀 메이크업과 완벽한 출근룩의 친구 모습을 상상하며 아직 덜 마른 자신의 머리카락을 흘긋 본다.

“얘, 운전 중이니? 화장하면서?”

“알면서 묻기는. 아침부터 무슨 일?”

“얘, 그거 위험하다고 내가 하지 말라고 했지! 제발 그러지 마. 화장은 집에서 하라고. 제발 좀.”

“네 몸만 챙기면 되는 너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어. 나랑 한 번 바꿔서 살아 볼래?”

시답지 않은 대화가 오가는데 친구가 갑자기 화제를 바꾼다.

“와, 오늘 날씨 너무 좋다.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은 날인데 어때? 나랑 가버리지 않을래?”

“떠날 용기는 있고? 제발 너라도 떠나 주라. 대리만족이라도 하게.”

“오늘은 진짜 일하기 싫은 날이네. 얘, 근데 넌 언제 제일 일하기 싫어?”

친구의 뜬금없는 질문에 그녀는 본능적으로 답한다.

“언제랄 것도 없어. 맨날이니까. 맨~~~ 날~~~ 이라고!”

“맞네, 맨날이네. 맨날 일하기 싫네. 하하하”

친구가 기분 좋게 웃는다. 그녀도 따라 웃는다. 웃자고 한 얘기니까.


전화를 끊고 그녀는 한 번 더 생각해 본다.

‘세상에서 가장 일하기 싫은 날은? 맨날’이라고?’

사실 늘 일이 싫은 것은 아니다. 어떤 일을 하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그때는 오히려 일이 에너지를 채워 주기도 한다. 마흔한 살, 그녀는 새삼 생각해 본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일을 할수록 나에게 에너지를 채워주는 그런 일, 지금 찾아봐도 아직 늦지는 않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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