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목소리 톤은 늘 상대방을 기분 좋게 만들고 긍정 에너지를 전달한다는 ‘솔’에 맞춰져 있다. 상대방에게 좋은 일이 있어서 축하의 말을 건네거나 상대의 말에 긍정적인 맞장구를 칠 때, 그녀의 목소리 톤은 금세 ‘라’나 ‘시’로 올라간다.
'맞아요, 좋아요, 너무 괜찮은데요, 아하,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녀가 풍부한 리액션과 함께 자주 쓰는 말들이다. 주저하고 머뭇거리는 이에게 힘이 되는 말들이다. 그래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기분이 맑아지고 망설이던 일을 도모할 용기를 얻게 된다. 나보다 훨씬 어리지만 마음 씀이 넓고 깊다. 나이는 태어난 순서대로지만, 인격은 나이 순서가 아님을 그녀를 보면서 실감한다.
그런 그녀와 함께 유럽여행을 했다. 아들 셋을 키우느라 늘 바쁜 일상을 보내는 그녀가 여행을 하면서 휴식의 시간을 갖길 바라는 마음으로 여행을 권했다. 아들이 셋, 그것도 초등학생 하나, 유치원생 둘을 둔 엄마라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흔쾌히 함께 가겠다고 해서 반가웠다. 한편 아들 셋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그녀라 놀랍기도 했다. 처음으로 아이들과 떨어져 생활하게 될 그녀가 조금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여행이 그녀에게 재충전의 시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여행 내내 그녀는 긍정적 에너지로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 주었다. 단 한 가지, 첫날부터 두고 온 아이들이 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남겨두고 온 아이들도 엄마를 그리워하며 때로는 통화 중에 엄마와 아들들은 눈물을 터트리기도 했다. 웃음 어린 얼굴로 눈물을 닦으며 그녀가 말했다.
“글쎄 막내가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영상통화를 하면 울어버릴까 봐 자는 척하고 있다네요. 너무 사랑스럽지 않아요?”
그 말을 하며 그녀는 또 울었다. 다섯 살 된 막내아들이 엄마가 너무 보고 싶은데 영상통화를 하면 참았던 눈물이 쏟아질까 봐 억지로 눈물을 참으며 자는 척하고 있을 모습을 생각하며 그녀는 한동안 눈물을 닦았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잠자기 전, 아이들과 떨어져 여행하게 하여 미안하다고 내 마음을 전했다. 그녀는 밝게 웃으며 말했다.
“아니에요.저도 여행하면서 에너지를 충전할 이런 시간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여행을 결정했고요. 그런데 아이들과 떨어지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요. 오기 전에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드네요. 이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항상 웃는 얼굴로 상대방을 기분 좋게 만드는 비결이 궁금해서 그녀에게 물었다.
“늘 매사에 그렇게 긍정적이고, 모든 사람에게 항상 그렇게 친절한 거야?”
“아니에요. 저랑 서로 잘 안 맞는 사람도 있죠?”
“그럴 때는 어떻게 해?”
“음, 제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경우에는 그냥 잠시 그 사람을 향한 스위치를 꺼 둬요. 그러고 얼마간 시간이 지나고, 기다리다 보면 어느새 괜찮아지더라고요.”
“그런데 살다 보면 잠시라도 스위치를 끌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사람도 있잖아. 예를 들어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라든가, 그런 경우는 어떻게 해?”
시간을 조금 더 두고 그녀가 말했다.
“그런 경우에는 그냥 참아요. 사랑은 오래 참는 거라고 했으니까.”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대답했다. 그 순간 누구나 알고 있는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라는 이 말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평소에 그녀가 보여 준 삶의 태도가 어디서 온 것인지 고개가 끄덕여졌고, 정말 사랑하면 오래 참을 수 있는 것이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가끔씩 참을성 없이 말하고 행동하는 ‘나는 사랑이 부족한 사람인가’하고 스스로를 의심했다.
2. 레나
얼마 전 영화 ‘로스트 도터( THE LOST DAUGHTER)를 봤다.
주인공 레다는 젊은 시절 일곱 살과 다섯 살 딸을 두고 3년간 가출을 한다. 자아성취와 육아 모두를 잘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였지만 역부족이었다. 점점 지쳐가던 그녀는 결국 아이들을 두고 집을 나왔고, 가끔 아이들을 보러 잠시 집에 들른다. 떠나지 말라고 애원하는 남편과 매달리는 딸들을 두고 잠시 멈칫하지만 레다는 다시 집을 나온다.
딸들과 즐겁게 놀아주는 레다, 딸들을 몹시 번거롭고 귀찮은 존재라고 여기는 레다, 영화는 레다의 양면을 모두 보여 준다. 엇갈린 레다의 태도는 영화를 보는 관객의 마음을 혼란스럽고 불편하게 한다. 육아에 대한 레다의 생각은 과거나 현재나 변함이 없다. 레다에게 딸들은 끔찍한 짐이고 벗어나고 싶은 굴레였다.
“아이들과 통화하는 것은 너무 싫어요.”
“애들이 없으니까 너무 좋았어요. 그런데 엄마니까 다시 돌아왔어요”
모성을 버리고 한 인간으로서 자아성취와 여성으로서 사랑을 선택하느라 두 딸들을 버리고 집을 나갔지만 엄마니까 다시 돌아왔다고 레다는 말한다. 영화 중간중간 레다가 어른이 된 딸들과 가벼운 안부를 묻는 전화 통화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마다 레다의 표정은 행복하거나 편안해 보이지 않는다. 두 딸을 버렸던 과거 자신의 선택은 레다에게 벗어날 수 없는 상처로 남아있는 것이다. 육아를 헤어날 수 없는 끔찍한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딸들을 버린 과거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것은 왜일까?
3. 세상의 모든 여성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그녀도 있고 레나도 있다. 그리고 다양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여성들이 있다. 모성이라는 절대적인 기준을 정해 놓고 그 잣대만으로 그녀와 레나,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여성과 어머니를 평가하거나 판단하고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열흘 남짓 세 아들들과 떨어져 여행하는 동안 매일 아이들과 영상통화를 하며 가끔은 그리움의 눈물을 보인 그녀와, 3년간 두 딸을 두고 집을 나온 레나를 우리는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야할까? 두 모성에는 분명 차이가 있지만 이 둘을 비교하며 섣부른 가치판단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레나의 모성을 의심하거나 부족하다고 비난하기보다 우선 그녀가 처한 상황과 맥락을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모든 사람들의 가치관이 같을 수 없듯이 모성에 대한 여성들의 인식과 실천 방법도 개개인마다 다를 수 있음도 인정해야 한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라는 말에 전혀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영화 ‘로스트 도터(lost daughter)’를 보며 ‘오래 참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오래 참지 않았으니까 두 딸을 사랑하지 않은 것이라고 판단하는 사회적 통념과 인식 때문에 레나는 지금도 과거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용서하지 못하고 상처로 남아있으며, 지금도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과연 레나는 두 딸을 사랑하지 않은 것일까?
흔히 어머니가 모성을 저버릴 때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다. 우리 사회가 모성을 본능이라고 단정 짓고 어머니들에게 모성을 강요하는 것은 아닐까? 강요된 모성본능으로 인해 자녀들을 대하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어머니들이 많다. 모성은 여성의 어떤 욕구보다 우선시 되어야 하고, 모든 여성이 어머니가 되면 무조건 모성을 실천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 때문에 오늘날 많은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 앞에서 망설이고 주저하는 것이 아닐까?
‘어머니’와 관련된 말들을 찾아보았다. 이 글을 쓰기 전에는 모두 어머니에 대한 찬사처럼 들렸을 이 표현들이 왠지 부담과 무게로 다가온다.
* 어머니는 우리의 첫 친구이자 최고의 친구이며 영원한 친구이다
* 어머니란 단어는 동사이다. 이 단어는 당신이 누구인지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를 나타내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 어머니란 그 어떤 역할도 대신해 줄 수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어떤 사람도 어머니의 역할을 대신해 줄 수는 없다.
* 당신의 나이가 몇 살이든 당신은 항상 어머니가 필요할 것이다.
* 당신이 엄마가 되면 당신의 생각이 절대 하나일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머니들은 항상 두 가지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 가지는 자신을 위한 생각, 다른 한 가지는 아이들을 위한 생각
* 나는 내 인생에서 자랑스러운 많은 것들이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것은 바로 내가 엄마라는 것이다.
* 내가 아이에게 삶을 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은 태어난 아이가 나에게 삶을 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