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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사라졌다

5060, 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부원병(夫源病)을 아시나요?

by 오월 나무

한시라도 빨리 해결을 해야 한다는 마음에 자꾸 엑셀레이터 위에 놓인 그의 발에 힘이 들어간다. 눈앞의 신호등 불빛이 노란색인 것을 확인하고 좀 더 속도를 내서 건널목을 통과한다. 머릿속은 온갖 생각으로 뒤죽박죽이다. 잠시 생각에 잠긴 후 뭔가를 결심한 듯 그의 입술에 일자로 힘이 들어간다. 신호대기 시간에 전화기 버튼을 누른다.

“지금 본가로 가는 중인데 너도 퇴근하는 대로 곧바로 와라. 셋째와 막내에게는 네가 전화해서 오라고 하고. 아버지 상황이 안 좋으시니까 기다리게 하지 말고 가능한 한 빨리 오면 좋겠다.”

동생도 이미 상황을 알고 있는 듯 별다른 말 없이 그렇게 하겠다는 말만 하고 전화를 끊는다. 나와 통화가 안 되니까 아버지 성격에 분명 동생들에게도 전화를 하셨을 것이다.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의뢰인을 만나는 30분 남짓 동안 아버지에게서 부재중 전화가 13통이나 와 있었다. 분명 다급한 일이 벌어진 것 같아 급히 전화를 했다.

“아버지, 첫째예요. 무슨 급한 일 있으세요? 혹시 몸이 많이 안 좋으신 거예요?”

사실 입원하고 계신 아버지께 건강상 급작스럽게 안 좋은 일이 생겼다면 어머니나 간호사에게서 전화가 왔어야 맞다. 아버지께서 직접 전화를 하신 것을 보면 건강상 위급 상황은 아닐 것이므로 크게 걱정은 안 했지만, 그래도 불안한 마음에 다음 예약 의뢰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아버지께 전화를 드린 것이다.

“…첫째냐…”

13번의 부재중 전화와 달리 아버지께서는 말씀이 없으시다.

“아버지, 무슨 일이에요? 저 의뢰인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얼른 말씀하세요.”

그래도 묵묵부답이시다.

“특별히 하실 말씀 없으면 그럼, 나중에 통화해요. 의뢰인을 오래 기다리시게 할 수 없잖아요.”

그가 급하게 전화를 끊으려 하자 다급해진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린다.

“내가 죽으면 그만이지. 살아서 뭐 하겠냐! 내 몸뚱이에 달린 두 발도 내 맘대로 움직이지 못해서 화장실도 혼자 갈 수 없으니 살아서 뭐 하겠어! 그냥 죽고 싶은 심정이다. 내 한 몸 죽으면 그만이지……”

평소에도 낙천적인 분은 아니시지만 오늘은 상황이 좀 더 심각하다.

“아버지,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그런 말씀 그만하시고 얼른 엄마 바꿔 주세요.”

“니 엄마 지금 없다.”

“아니, 또 어디 가신다고 말씀도 안 하시고 나가신 거예요?”

“내가 아침에 눈 뜨니까 없더라. 지금까지 혼자서 겨우 버티고 있다. 간호사를 부르는 것도 한두 번이지……”

“오늘도요?”

“아픈 것도 그렇지만 이런 대접을 받고 내가 더 살아서 뭐하겠냐! 그냥 이제 그만 살란다!”

“아버지, 알겠어요. 퇴근하고 곧장 병원으로 갈 테니까 그때까지만 참고 계세요.”


작년에 아버지께서는 폐암 진단을 받으셨다. 다행인 것은 초기 발견이라 쉽게 치료가 가능했다. 그런데 며칠 전 다리에 마비 증상이 와서 병원에 갔더니 암이 뇌로 전이가 되어 두 다리를 움직일 수가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당장 입원을 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고 있으나 문제는 아버지께서 움직일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워낙 덩치가 크신 아버지를 여든두 살의 어머니께서 간호하시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엄마 연세도 있으신데 아버지 병간호를 엄마 혼자 하시는 것은 불가능해요. 그러니까 간병인을 고용하는 것으로 해요.”
“무슨 말이냐. 내가 감당할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라. 간병인은 무슨.”

“안 돼요. 아버지 몸집이 작으신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아버지께서 혼자 움직이시지를 못 하는데 엄마 혼자 간호하시다가 엄마까지 병나시면 그때는 더 힘들어져요. 간병인 고용하세요.”

간병인을 고용하자는 아들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끝내 혼자 아버지를 돌보시겠다던 어머니는 연거푸 3일째 아버지께서 일어나시기도 전에 병원에서 사라지시는 것이다. 그러고는 아버지 전화는 물론이고 아예 아들들 전화도 받지를 않으신다. 참다못한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전화를 해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며 압력을 주고 계신 것이다.


운전대를 잡은 그의 손에 땀이 찬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 도대체 어머니께서는 왜 아버지께 말씀도 안 하시고 계속 이른 아침부터 사라지시는 것일까? 어머니께서 안 계시면 아버지 혼자서는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왜? 간병인을 고용하자고 간곡하게 말씀드렸는데도 극구 당신이 병간호를 하시겠다고 적극 나섰으면서 아버지께서 입원하시자마자 보란 듯이 아침 일찍 소리 없이 병원을 나가셔서 아버지를 곤란에 빠뜨리고 계신 것이다. 일부러 그러시는 것이 아니라면 납득이 안 가는 상황이다.


그의 아버지는 36년 전에 대령으로 퇴역을 하셨다. 원래 타고난 성격이 괄괄하신데 때로는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하시기도 한다. 그래서 그의 네 형제는 늘 아버지의 뜻에 맞게 살아야 했으며 아버지 말을 거의 거스른 적이 없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의 삶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굉장히 적극적이어서 바깥 활동을 즐기시는 편이다. 80세가 넘었는데도 젊은 사람들도 힘들어서 엄두를 못 낸다는 아프리카 여행을 가자고 아들들과 손자들을 종용할 정도다. 그런 어머니께서 만만치 않은 성격의 아버지와 36년 넘게 한 집에서 온종일 지내신다는 것은 몹시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어머니 성격에 완고한 아버지의 비위를 맞추고 사셨을 것에 생각이 미치니 ‘보란 듯이 일부러 아버지를 혼자 두고 병원을 나가신 것이 아닌가?’ 짐작이 되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문득 얼마 전 친구에게서 들은 ‘부원병’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부원병은 은퇴한 남편을 아내가 앓는 온갖 병의 근원으로 지목한 뜻의 신조어라고 하는데 검색해 보니 국어사전에도 엄연히 아래와 같이 등재돼 있었다.


부원병은(夫源病) 퇴직한 남편이 근원이 되어 아내에게 생기는 병


그가 본가에 들어서자 세 동생들은 이미 와 있다. 다행인지 어머니께서도 집에 돌아와 계신다. 다섯 명이 식탁에 둘러앉았지만 아무도 선뜻 말을 꺼내진 않는다.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버지 전화받고 많이 생각해 봤는데 제가 로펌을 그만두고 아버지를 저희 집으로 모시고 가서 제가 병간호를 할게요.”

“그래라. 당장 오늘이라도 얼른 모시고 가라.”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머니께서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마치 오랫동안 곱씹고 있다가 일격을 가하 듯 확고하고 단호한 목소리다. 동생들도 아무 말이 없다. 말을 꺼낸 그의 얼굴이 확 달아오른다. 물론 개인적인 사정도 있지만 그래도 내심 고민해서 힘들게 내린 결론인데 가족들의 반응이 너무 당황스럽다. 누구 하나 아버지 병간호를 위해 직장을 그만둔다는 그를 말리지 않는 것이 섭섭하다. 아니, 이 기분은 섭섭함이라기보다 분함이라고 하는 편이 더 맞을 것 같다. 어색한 긴 침묵 사이사이 잠깐씩 의견이 오고 갔지만 결국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로 본가를 나와 그는 다시 운전석에 앉아 있다..

요즘 퇴직하는 남자들은 ‘아내가 틀려도 무조건 아내는 옳다.’라고 하고, 그것이 퇴직 후 생존법이라고 한다는데 그의 아버지는 그런 트렌드를 알 만큼 젊지도 않고 변할 리도 없다. 문제는 앞으로 종종 벌어질 이런 상황은 오롯이 그의 몫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때마다 감당해야 할 일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하다

부원병은(夫源病) 흔히 말하는 화병(火病)의 일종으로 특별한 치료약이 없다. 남편이 부인의 병의 심각성을 알고 개과천선(改過遷善)하던지, 아니면 차선책으로 두 사람이 서로 떨어져 사는 것인데 이러한 방법으로도 완벽한 치료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본가로 갈 때와는 달리 집으로 가는 지금, 엑셀레이터를 밟고 있는 발에 힘이 빠진다. 아내에게 이 모든 상황을 말해야 하나? 말하지 않는 편이 더 좋지 않을까? 그의 아내도 부원병을 운운할 날이 멀지 않았으니, 그가 미리 알아서 수위를 조절해야 한다. 첩첩산중이다. 또다시 운전대를 잡은 손에 땀이 흥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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