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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나무 Jul 24. 2022

뉴욕 3. FINALLY 뮤지컬 해밀턴

 뉴욕과 브로드웨이 그리고 뮤지컬, 듣기만 해도 가슴 뛰는 조합이다. 흔히 뉴욕여행 하면 타임스퀘어나 자유의 여신상, 센트럴파크 등을 떠올린다. 물론 뉴욕을 여행한다면 이곳도 꼭 둘러보아야 할 명소 중 하나이다. 그런데 뉴욕 여행에서 뮤지컬 관람이 빠진다면? 뉴욕의 겉만 보고 속살은 놓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흔히 뉴욕 브로드웨이 뮤지컬 하면 ‘오페라의 유령, 라이온 킹, 알라딘, 위키드, 시카고, 브로드웨이 42번가’ 등을 떠올릴 것이다. 2000년 초반 뉴욕을 방문했을 때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과 브로드웨이 42번가를 봤다. 대사가 모두 영어니까 뮤지컬을 좀 더 이해하고 즐기려면 미리 주요 음악들을 여러 번 들어보고, 스토리도 파악하고 가야 한다. 그런데 그때는 아무 준비 없이 가서 오페라의 유령의 아름다운 멜로디와 배우들의 명연기, 화려한 무대장치 등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다. 당시 극장이 너무 추워서 보는 내내 오들오들 떨었던 기억만 강하게 남아 있다. 뉴욕을 다녀온 후에 ‘오페라의 유령’의 명곡들을 영화를 통해 다시 들으면서 뮤지컬에서 내가 놓친 것들을 많이 후회했다.

 “엄마, 뮤지컬 어때요? 좋아해요?”
 출근한 딸이 메시지를 보냈다.

 “뮤지컬? 당연히 좋아하지. 근데 왜?”

 “해밀턴 볼래요?”

 “해밀턴? 처음 듣는 뮤지컬인데!"

 “요즘 뉴욕에서 가장 핫한 뮤지컬이에요. 코로나 전에는 보고 싶어도 티켓이 없어서 못 봤어요. 티켓이 천 불 정도였는데 그것도 표가 없어서 못 봤다니까요. “

“그래? 대단한 뮤지컬인가 보네! 그렇다면 봐야지!”

“오케이, 그럼 제가 예매할게요.”

‘해밀턴’, 처음 들어보는 뮤지컬이다. 티켓 값이 다른 뮤지컬의 3~4배 이상이었지만 그렇게 대단한 작품이라고 하니 궁금했다. 그래서 보기로 했다.


 뮤지컬이 시작될 무렵의 저녁시간, 눈부신 브로드웨이의 네온사인 불빛과 한껏 멋을 낸 관람객들의 긴 줄, 관람할 뮤지컬의 포스터를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는 사람들의 얼굴 가득한 미소. 브로드웨이의 밤은 이렇게 화려하게 들떠 있다. 물론 관람객의 대부분은 관광객이다. 그래서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은 캐주얼한 차림의 여행객들도 더러 보인다. 옷차림이야 어떻든 표정에는 모두 자신들이 볼 뮤지컬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 있다.

 해밀턴은 미국 건국의 주역인 알렉산더 해밀턴의 일생을 다룬 뮤지컬이다. 린 마누엘 미란다 작사, 작곡, 극본으로 2015년 2월 오프 브로드웨이 퍼블릭 씨어터에서 초연되었고 이후 8월 브로드웨이에서 막을 올렸다. 현재 브로드웨이 최고의 인기 뮤지컬이며 21세기 브로드웨이 역사상 가장 흥행한 뮤지컬 중 하나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열 편의 뮤지컬 중 하나이기도 하다.

 알렉산더 해밀턴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 뉴욕으로 넘어와 혁명에 가담하면서 조지 워싱턴의 오른팔이 되어 미국 최초의 재무장관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정적들의 견제와 스캔들로 벼랑 끝에 몰리고 끝내는 49세의 나이로 에런 버와의 결투에서 목숨을 잃었다. 생전 수없이 많은 글을 남기고 오늘날 경제 체계의 근간을 만들었지만, 10달러 지폐에 새겨진 점과 결투에서 죽었다는 점 외에 잘 알려진 위인은 아니었다.


 해밀턴의 평전을 우연히 읽고 영감을 얻은 미란다는 '해밀턴 믹스테이프'라는 이름의 컨셉 앨범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중 백악관 연례행사인 '시, 음악과 말의 밤' (Evening of Poetry, Music & the Spoken Word)에서 짧은 공연을 해 달라는 제안을 받고, 이날 자신이 처음 완성한 랩을 대통령과 내빈들 앞에서 선보였다. 관중들은 곡이 끝나자 박수와 환호를 보냈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가장 먼저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냈다. 이를 계기로 미란다와 해밀턴 랩은 주목을 받게 되었다.


 2015년 미국 재무부는 10달러 지폐에 대한 인물 교체를 발표했는데, 이 뮤지컬의 역대급 흥행으로 치솟는 해밀턴의 인기 때문에 알렉산더 헤밀턴은 지폐 모델에서 교체되지 않았다. 해밀턴의 인기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티켓 가격이다.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티켓 가격은 작품별, 시즌별 수요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인데, 해밀턴의 경우 가장 좋은 좌석의 가격이 849달러(약 102만 원)이다. 암표가 아닌 공식 홈페이지에서 판매하는 정가로 말이다. 3층 꼭대기의 제일 구석 자리에서 보더라도 199달러(약 24만 원)는 줘야 한다..

 뮤지컬 해밀턴의 가장 큰 특징은 극도로 현대적인 음악과 대사와 배우들로 과거의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점이다. 특히 다른 장르도 아닌 힙합을 적극적으로 차용한 시도로 주목받았다. 노래를 듣다 보면 랩이 줄거리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극의 일부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의도적으로 실제 인물과 다른 모습의 유색인 배우들을 캐스팅했다. ‘고루하고 나이 많은 역사 속 백인들’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기존의 체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가는 젊고 혈기왕성한, 마치 오늘날 미국인과 같은 모습의 20대를 그려낸 것이다. 특히 작품 내내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해밀턴의 이민자 출신 배경과 같이 엮여 이민자 출신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이는 백인들이 주 세력을 이루는 공연계에 변화를 주고자 했던 린 마누엘 미란다의 노력이다. 그는 배우들을 캐스팅할 때 직접적으로 ‘백인이 아닌 배우’를 찾았다고 한다.
 

 계속 귓가에 맴돌며 강력한 비트로 심장을 요동치게 하는 뮤지컬 해밀턴의 음악들, 그 음악들이 남기는 여운은 길고 강력했다. 기존에 접했던 뮤지컬 음악과는 확연히 다른 빠른 탬포의 랩이 주를 이루고, 간간이 R&B 음악이 섞이면서 2시간 30분 공연 내내 한순간도 눈과 귀를 뗄 수가 없었다. 뮤지컬 해밀턴의 무대는 화려하지 않다. 오직 독창적인 음악과 배우들의 열연으로 배우와 관객이 혼연일체가 되어 같이 뮤지컬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느껴지게 만드는 작품이다. 라이온 킹이 화려하고 스펙터클한 무대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종합예술에 가까운 뮤지컬이라면, 해밀턴은 전형적인 뮤지컬의 틀을 깨고 파격적이고 새로운 시도로 신선한 감동을 선사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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