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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나무 Aug 19. 2022

뉴욕 4. 타임스퀘어에서 청량리를 생각하다

  타임스퀘어


 

 뉴욕 맨해튼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몰리는 곳은 단연코 타임스퀘어다. 격자형 도로 형태를 가지고 있는 맨

해튼에서는 동서남북 방향만 잘 잡으면 구글 지도에 의지하지 않고도 길을 잃을 일이 거의 없다. 제각기 독특한 모양으로 지어진 맨해튼의 고층빌딩 숲을 여유롭게 거닐다가 보행자 밀도가 높아지면서 사람들을 피해서 걸어야 하는 곳을 만난다면 타임스퀘어 근처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늘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뉴요커들은 웬만하면 브로드웨이와 7 Ave를 낀 42번가부터 49번가까지의 타임스퀘어 지역을 걷지 않는다고 한다. 관광객들이 타임스퀘어의 현란한 옥외 광고 스크린에 시선을 빼앗겨 사진을 찍거나, 자신이 세계에서 가장 핫한 자본주의의 심장에 와 있다는 감격으로 도무지 움직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걸음을 재촉해야 하는 뉴요커의 일상에서는 답답할 만도 하다. 하지만 관광객들에게 타임스퀘어는 이전에 경험해 본 적 없는 박진감으로 터질 듯한 에너지를 내뿜고 있는 새롭고도 현란한 곳임에 틀림이 없다. 흔히 영상으로는 대자연의 웅장함을 모두 담아낼 수 없다. 마찬가지로 타임스퀘어의 진면목을 전달하기에 영상은 한계가 있다. 직접 타임스퀘어 한가운데 서 봐야 그 짜릿한 긴장감과 에너지와 흥분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세계적인 관광명소인 타임스퀘어는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오랫동안 매춘과 마약, 포르노, 혼돈과 무질서가 지배하던 곳이었다. 브로드웨이와 스트리트가 만나는 곳에 빈 공간인 스퀘어가 만들어지고, 이 스퀘어는 주로 공원으로 조성되거나 큰 건물이 들어섰는데, 브로드웨이와 45번 스트리트가 만나고 7번 애비뉴와 겹치는 곳의 각도가 유난히 꺾여서 스퀘어가 될 만한 공간이 나오지 않아 빈민들의 값싼 유흥공간이 되었다. 어느 도시를 가나 마찬가지이듯 기차역과 터미널 주변은 인간의 숨겨온 욕구가 분출되는 곳으로 일탈과 은밀한 형태의 유흥이 이루어지는데 타임스퀘어가 그런 곳이었다. 이런 이유로 이곳은 상대적으로 땅값이 싸고 공간의 질이 열악한 곳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뉴욕시와 개발업자들은 타임스퀘어의 엄청난 잠재력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뉴욕은 관광객이 필요했다. 그래서 맨해튼 미드타운의 일부분이며, 뉴요커들이 가장 사랑하는 브라이언트 파크와 가까운데 지가는 싼 이곳, 타임스퀘어를 뉴욕의 관광 부흥을 위해 새로운 환경으로 조성해야 했다. 그 결과 포르노를 상영하던 극장은 값비싼 뮤지컬 무대로, 음란 비디오를 파는 상점은 장난감과 캐릭터 인형이 진열되어 어린이 고객을 끌어들이는 곳으로 변모했다. 1990년대를 거치며 타임스퀘어는 이렇게 세계 최대 관광명소로 변해갔다.


 청량리

 

 청량리는 일제강점기부터 지금까지 서울 동부의 교통 중심지로서 경원선(1911)과 중앙선(1939)이 서울로 진출입하는 관문이었고, 1971년부터 경춘선 역시 청량리역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1974년 서울 지하철 1호선 개통 당시 서울역에서 출발한 열차가 종착하는 종점도 청량리였다. 현재도 KTX 정차역이며 수도권 광역급행철도 개통 시 환승역이 될 예정이다.


 교통의 중심지로서 많은 유동인구가 있다 보니 청량리도 예외 없이 매춘이 성행하는 곳이었다. 지금은 사라진 유명 집창촌이 청량리역 5번 출구 남쪽에 있었다. 이 오래된 집창촌을 어떻게든 없애기 위해 1990년대부터 노력을 거듭해 2000년대 들어 뉴타운 사업대상지역으로 지정되어 재개발이 진행 중이다. 현재 재개발 보상이 마무리되어서 모든 건물은 철거되고 대규모 주상복합 아파트 등이 건설 중이다.

 

 재생


 서울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의 많은 도시들이 도시재생이라는 이름으로 변화하고 있다. 오래되고 낡은 건물들이 철거되고 그 자리에 초고층 상업 건물이나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으며,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좁고 지저분한 거리는 널찍하고 말끔하게 단장되어 세계 어느 도시 못지않은 면모를 갖추었다. 과거의 흔적이 하나도 남김없이 사라지고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재생된 도시, 얼핏 보기에 현대적이고 말끔하게 단장된 도시의 모습을 보며 그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는 자신의 삶도 승격된 듯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도시의 이러한 변화는 아쉬움을 남긴다. 과거와 단절된 도시의 모습에서 인간적인 면은 사라지고, 경제적인 효용성만을 극대화하려는 자본주의만 남아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서울에는 오래된 것이 별로 없다. 변화가 지나치게 빨라서 오랫동안 사랑받고 보호받아서 더 귀해지는 명품을 찾아보기 힘들다. 무엇이든 빨리 허물고 빨리 짓고, 빨리 지은 만큼 애착도 덜 해서 또 빨리 허문다.


 도시개발이 재생이라는 말의 의미에 걸맞게 이루어지려면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눈앞의 이익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몇 백 년이 흘러도 사랑받고 보호받을 만한 명품 도시로 만들려는 고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타임스퀘어 재개발의 성공을 보며, 우리나라에서도 진정한 도시재생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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