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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나무 Jul 27. 2022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5060, 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젊다는 것, 젊게 살아간다는 것

 


 언제부터인가 나는 전혀 다른 종류의 인간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내가 변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나는 내가 어느새 내가 그토록 한심해 하던 중년의 사내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던 것이다. 정말 젊은 사람들은 젊은이의 옷을 입는 사람이 아니라 젊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다. 젊게 생각한다는 것은 늙은이들과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늙은이들은 걱정이 많고 신중하여 어디로든 잘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육신과 정신을 이제는 아주 잘 알고 있다고 믿는다. 반면 젊은이들은 자신의 취향도 내세우지 않으며 낯선 곳에서 받는 새로운 감흥을 거리낌 없이, 아무 거부감 없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사람들이다. 늙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세상과 인생에 대해 더 이상 호기심을 느끼지 않게 되는 과정이다. 호기심은 한편 피곤한 감정이다. 우리를 어딘가로 움직이게 하고 무엇이든 질문하게 하고 이미 알려진 것들을 의심하게 만드니까.
(김영하, ‘오래 준비해 온 대답’ 중)


 사람들은 누구나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인식은 하고 산다. 그런데 어쩌면 외모나 숫자상으로 나이가 들어가고 있을 뿐 자신의 의지나 정신은 아직 젊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위에 인용한 김영하의 글은 그런 사람들에게 자신의 정신적인 나이를 실감하게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나이 든 사람들은 흔히 자신에 대해서 혹은 세상에 대해서 이제는 아주 잘 알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말이 많아지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신의 생각이 진리인 것 마냥 긴 연설을 하기도 한다. 듣는 이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할지에 대해서는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상대방이 아무 말 없이 듣고 있는 것은 자신의 말속에 심오한 깨달음이나 지혜가 들어 있어서 경청하고 있는 것이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엄청난 자만이고 오만이다. 그들의 대화 방식은 공감적 대화가 아니라 일방적 훈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는 그것을 ‘꼰대’ 증상이라고 말하는데, ‘꼰대’는 곧 늙었음의 표상이다.


 얼마 전 생동감이 넘치는 두 분을 만났다. 두 개의 본업(직장 일과 가사)과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봉사, 게다가 9월부터는 대학원까지 시작한다고 했다. 대단한 분들이었다. 바쁜 일상과는 달리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그분들의 목소리와 얼굴 표정에서 힘이 느껴졌다. 더 놀라웠던 것은 그분들의 실제 나이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7~8살이나 많았다는 것이다. 40대 중반 정도일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실제 나이가 50대 중반이었다. 그 건강한 에너지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역시 나이를 결정하는 것은 생물학적인 출생연도가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인 것 같다. 젊다는 것은 젊은이의 옷을 입는 사람이 아니라 젊게 생각하고 젊게 살아가는 것이다. 호기심이 이끄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호기심은 우리를 어딘가로 움직이게 하여 결코 한 군데에 안주하며 고여 있게 하거나 부패하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지금 자신의 삶이 완벽하게 세팅된, 그러나 늘 그 모습 그대로 존재하는 그림 같은 풍경은 아닌지, 혹은 젊은 시절 많은 의문과 질문들을 불러냈던 호기심은 어디에 있는지, 잃어버린 우리들의 호기심을 다시 찾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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