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그녀도 한여름 뜨거운 태양 아래 잘 익어 단단하고 촘촘하게 박힌 옥수수 마냥 그렇게 가지런하고 건강한 치아를 가졌었다. 숱이 많고 까맣게 빛나던 그녀의 머릿결처럼 그녀의 치아도 부드럽게 아치를 이루며 반짝거렸다. 동네 어른들은 늘 그녀의 치아를 보고 감탄했다. 나이 든 이들에게 치아가 얼마나 큰 부러움의 대상인지를 그때는 몰랐다.
어느 가을날 그녀는 빨갛게 익은 감을 따려고 돌담 사이에 두 발을 올려 걸쳤다. 손이 닿을 듯 말 듯한 높이에 잘 익은 장두감이 그녀의 눈길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따서 이틀 정도만 익히면 맛있는 홍시가 될 정도로 적당히 익어서 오늘 따지 않으면 저절로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제법 크고 무거운 장두감이 땅에 패대기를 치며 떨어지면 박살이 나서 곤죽이 되니까 먹을 수가 없게 된다. 주위를 살펴보니 이미 바닥에는 아까운 장두감 대여섯 개가 철석 퍼질러져 있고, 그 주위에는 개미떼가 부지런을 떨고 있었다.
그녀는 조바심이 났다. 한 뼘 정도 위에 있는 돌담 사이로 불안불안하게 한 발을 다시 끼워 넣었다. 장두감 서너 개가 달린 가지에 그녀의 손이 닿는 순간 엉기성기 어설프게 쌓아 올려진 돌담이 흔들거렸다. 그녀가 감나무 가지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지만 그녀의 몸무게를 버티지 못한 가지가 뿌지직 소리를 내며 부러졌다. 그녀의 몸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아래로 떨어졌다. 다행히 돌담 아래는 잡풀들이 자라고 있어서 크게 다치지는 않은 듯했다. 그런데 잇몸이 새큰하고 왠지 입속에서 쇠 맛이 느껴졌다. 혓바닥으로 치아와 잇몸을 핥아보았다. 혀가 오른쪽 윗니에 머물렀을 때 매끈하던 치아의 감촉이 갑자기 거칠어졌다.그녀가 떨어질 때 오른쪽 윗니가 돌담에 닿아 끝 부분이 살짝 깨진 것 같았다.
그녀 윗집에는 그녀와 나이가 비슷한 동무가 살았다. 쑥이며 나물도 같이 캐러 가고, 빨래터도 같이 오가며 온갖 얘기를 나누는 친구로, 별스럽지 않은 얘기에도 서로 낄낄대며 웃는 그런 사이였다. 농사일이 한가할 때는 서로 집을 오가며 밤새 얘기도 나누었다. 그 친구에게는 오빠가 있었다. 일찍이 외지에 살다가 다시 동네로 들어온 그 오빠는 생긴 것도 말끔하고 말솜씨도 촌사람들과는 달랐다. 어느 때부터인지 몰라도 그 오빠가 동네 어른들의 치아를 치료해 주기 시작했다. 치료라로 해야 깨진 치아를 금으로 씌워 주는 정도였다. 어느 날 동무 집에 놀러 간 그녀를 유심히 보던 친구의 오빠가 말했다.
“어매, 윗니가 깨졌는갑네. 어쩌다가 그랬을까?
“돌담에 올라가 장두감 따다가 떨어지는 바람에 돌담에 부딪혀서 그런 것 같은디…”
“어디 좀 보더라고. 쬐까 깨졌꾸마. 위쪽에 가늘게 실금도 생긴 것 같고. 금으로 씌우는 것이 좋겄어.”
“암시랑토 안 허요. 글고 돈도 없당게요.”
“동생 친군디 내가 그냥 해 줄랑게 돈을 걱정하지 말더라고.”
왠지 알 수는 없었지만 한사코 마다하는데도 친구 오빠는 그녀의 깨진 이에 금니를 씌워 주었다.
그 후 그녀는 다른 마을로 시집을 왔고 사시사철 바쁘게 사느라 금니를 들여다볼 시간도 없었다. 어느 겨울, 그날도 그녀는 허벅지를 다 덮는 긴 장화를 신고 김을 채취하러 바다에 나갔다. 식구들 점심도 챙겨야 하고, 하다 만 일들도 마무리해야 해서 그녀는 점심을 먹을 시간이 없었다. 고구마로 대충 요기를 할 생각으로 몇 개를 챙겨 광주리에 담았다. 바다에 도착해서 한참 김을 채취하다가 시장기를 느낀 그녀가 고구마를 한 입 베어 무는데 ‘따딱’하고 씹히는 것이 있었다. 아무렇게나 밖에 두었던 광주리에 돌이 들어가서 고구마에 붙었나 보다고 생각한 그녀는 먹고 있던 입속의 고구마를 뱉어서 바다 멀리 던졌다.
반농반어의 작은 섬으로 시집을 온 그녀는 일 년 열두 달 내내 바빴지만 특히 12월부터 2월은 김양식으로 눈코 뜰 새가 없었다. 조수 간만의 차를 이용해서 썰물일 때 바다에 나가 김을 채취하고 집에서 세척과 가공을 거쳐 완성품을 만들었다. 썰물 시간이 오전 11시 즈음부터 오후 2시 사이일 때 바다에 나가 김을 채취하여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리고 밤에는 낮에 말린 김을 포장하고, 다음 날은 이른 아침부터 바다에 김을 채취하러 나가기 전까지 김을 세척하고 가공해야 했다.
물때(조석 변화)를 맞춰 김을 채취해야 하므로 썰물이 낮시간에 일어나는 칠팔일 동안은 다섯 살 막내의 조막손도 일을 거들어야 할 지경이었다. 그래도 밀물이 낮시간일 때는 그나마 한숨을 돌릴 여유가 있었다. 하루 세끼 밥이며 대식구 빨래 등 늘 하는 일이 많았지만, 그래도 마실 가서 동네 아주머니들과 자잘한 얘기를 나눌 시간은 있었다. 그날도 고구마 광주리를 사이에 두고 남정네들 흉도 보고 동네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뒷얘기들이 입에 오르내렸다. 그녀는 말랑하게 잘 삶아진 물고구마를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모처럼 여유 있는 시간이라 입속에서 푸짐하게 퍼지는 물고구마의 달콤함이 느껴졌다. 그녀는 혀를 굴러 고구마의 단맛을 음미하고 있었다. 그녀의 혀가 오른쪽 윗니에 닿는 순간 뭔가 이상했다. 평소의 단단하고 맨질한 감촉이 아니라 까끌하고 오돌토돌한 느낌이었다. 옆에 놓인 사발의 물을 들이켜 입속의 고구마을 얼른 삼키고 거울로 다가가 입을 크게 벌렸다.
“오매, 내 금니가 어디로 갔을까잉? 덧씌운 금니가 없어졌네!”
그녀는 계속 거울을 들여다보며 되뇌었다.
“어매, 아까운 거. 어찌까나!”
그녀도 모르는 사이에 30년 남짓 입 속에 있었던 것이 없어졌다고 생각하니 아깝고 허전했다. 거울을 뒤로하고 아지매들을 향해 돌아서며 그녀가 말했다.
“친구 오빠가 씌워 준 금니가 있었는데 그것이 감쪽같이 없어졌당게. 어매, 아까운 거…”
그때 바다 멀리 던져버린 금니를 생각하며 그녀는 허탈하게 웃는다. 가지런했던 치아가 나이 들어 조금씩 삐뚤어지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그때는 치아가 있어야 할 자리에 온전히 있었다. 그녀는 다시 혀로 입 속을 더듬어 본다. 혀끝으로 제법 딱딱해진 잇몸이 느껴진다. 그래도 잇몸이 치아를 대신할 수는 없다. 던져버린 금니도, 하나씩 뽑아야 했던 치아들도 거기까지가 제 몫이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