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내, 간호사 선생님은 이빨이 있으니깨 모르제. 저 쫑쫑 다지다시피 한 당근이 입 속에 들어가면 얼매나 머들거리는지. 어금니 뽑은 지 하루밖에 안 지나서 잇몸이 지금 퉁퉁 부어 있고 음식이 닿기만 해도 욱신거리고 아프당게.”
그녀의 치아와 잇몸상태를 아랑곳하지 않는 병원 측이 그녀는 야속했다. 나이가 들면서 치아를 하나씩 뽑기 시작했고, 아흔일곱 살이 된 지금 이제는 잇몸만 남았다. 혓바닥으로 입속을 더듬어 보아도 반질반질 단단했던 치아의 감촉을 더 이상 없다. 약간 물컹하고 밍글밍글한 잇몸만 남아 있다. 틀니를 하려고 했지만 이미 잇몸은 틀니마저 감당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한다. 치아가 없으니 기분이 언짢은 것은 두 말할 것도 없고, 무엇보다 먹을 수가 없어서 너무 고통스럽다. ‘저 나이에 뭘 저렇게 기를 쓰고 먹으려 드나.’하고 젊은이들이 흉을 볼 것 같아 염치도 없다. 나이 드니 이래저래 남세스러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치아가 없어도 배는 고프다
그녀는 요 며칠 통 먹지를 못했다. 치아를 뽑느라 잇몸이 부어서 아프고, 치아가 하나도 없으니 음식을 씹을 수도 없었다. 제대로 먹지 못한 그녀는 어지럽고 배가 고팠다. ‘이참에 아예 굶어서 자연스럽게 저 세상으로 가버리는 것도 괜찮겠구먼.’ 그런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뿐, 배가 고프니 온통 먹을 것 생각뿐이다. 이 나이까지 사는 것도 남부끄러운 판에 치아가 하나도 없는 노인네가 음식 타박까지 하나 하고 손가락질을 할 것 같아서 참아보려고 하다가도 여지없이 때가 되면 배가 고파서 참을 수가 없다.
보드라운 손발도 쓰다 보면 굳은살이 생기듯이 어금니를 뽑고 예닐곱 날이 지나자 그녀의 잇몸도 조금씩 단단해지기 시작했다.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고 이제는 물렁한 과일이나 밥알 정도는 잇몸으로 뭉개서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어제는 갓 만든 깻잎김치가 너무 먹고 싶어서 일부러 사 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간장 양념이 잘 버무려진 보드라운 깻잎에 밥을 크게 싸서 입 속에 넣고 오물거렸다. 싱싱한 마늘과 간장, 그리고 깻잎 향이 어우러져 어찌나 맛있던지 모처럼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나이가 들어도, 치아가 하나도 남지 않아도, 때가 되면 배는 고프고, 옛날에 먹었던 것들이 생각난다. 오늘은 뭘 먹어볼까? 그녀는 서서히 추억여행을 해 본다. 다섯째 딸과 사위랑 나들이 가서 먹었던 음식들, 돼지고기와 감자가 들깨 향과 하나가 돼 푹 고아진 감자탕, 부드러우면서도 씹는 맛이 있고, 달콤하면서도 새콤한 남해의 멸치회와 멸치쌈밥, 오늘은 그런 음식들을 상상으로 만나 본다. 역시 음식은 직접 먹어야 제맛이지, 상상만으로는 부족하다. 입에서는 속절없이 군침만 가득 고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