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올해 나이는 97세이다. 자식들은 그녀가 그 나이까지 건강해서 감사하다고 늘 말하지만 그녀 자신은 딱히 고마울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정신은 말짱해서 어릴 때 살던 동네 골목길도 눈에 훤 하고, 같이 빨래 다니던 친구들 이름도 생생하다. 한데 육신은 이곳저곳 안 아프고 안 쑤시는 곳이 없다. 어쩌겠는가! 이 나이에 여기저기 아픈 것이야 당연하지. 참을 수밖에 없고 그럭저럭 참을 만도 하다.
그녀에게 진짜 힘든 것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다. 손바닥만 한 섬에서 육칠십 년 남짓 좋은 일, 궂은 일 모두 같이 겪었던 동네 아지매들은 벌써 저 세상으로 간 지 오래됐다. 주위에 그녀보다 나이 많은 사람은 이제 더 이상 없다. 그녀는 자신이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는 것이 창피하다. 오래 살아있는 것이 부끄럽고 민망해서 가끔은 자신의 나이를 모른 체하고 싶을 때도 있다.
나이 들어서 아픈 곳은 많고 딱히 할 일도 없으니 병원에 가는 것이 그녀의 중요한 일과이다.
“할머니, 생일이 1929년 1월 2일이죠?
“내 생일? 나는 생일을 잘 몰라."
그녀는 어리숙한 듯한 말투로 간호사의 질문에 대답을 얼버무린다. 물론 그녀는 자신의 나이를 알고 있다. 실제로 그녀가 태어난 해는 1926년, 나이는 97인데 주민등록상으로는 1929년, 94세이다. 그녀 위로 언니 둘이 있었는데 2살을 넘기지 못하고 모두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런 연고로 그녀 아버지는 그녀가 3살을 넘기는 것을 보고 출생신고를 했다. 그래서 주민등록상 나이가 실제보다 3살 어리게 된 것이다.
흔히 그렇듯 젊었을 때 그녀는 자신의 실제 나이를 꼭 밝혔다. 그때는 나이가 많아야 대접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주민등록상 나이가 어떻든 상관 않고 실제 나이를 밝히는 것이 떳떳했고, 그러고 싶었다.
나이 많은 것이 남세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지금, 그녀는 자신의 실제 나이를 굳이 남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 어차피 주름져 쭈글쭈글한 얼굴, 세 살 정도는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한다.
“할머니, 올해 나이가 몇이셔?”
“몰라, 늙은이가 나이가 어디 있어. 그냥 사는 거지.”
그녀는 자신이 이렇게 오래 살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안 했다.
오래 사는 것이 남세스럽다고 느낄 만큼 길게 올 줄 몰랐다.
“할머니 94세시네. 여기 의료보험 기록에 그렇게 돼 있어요.”
“그래? 그렇게 돼 있는가?”
“할머니, 앞으로는 누가 할머니 나이 물어보면 94세라고 말하셔~.”
“아이고, 늙은이 나이를 누가 궁금해서 물어본다고 그래. 늙은이 나이가 뭐 중허다고 자꾸 나이나이 하는가 모르겠네.”
그녀는 말끝을 흐린다. 꽃 같이 젊은 저 간호사는 백 번 말해도 그녀의 마음을 알 리 없다.
‘아직 이 나이까지 와 보지 않았으니 저 간호사가 어찌 알겠는가.’ 그녀는 생각한다.
그녀는 나이를 잊고 산 지 오래다. 그래서 가끔은 자신의 나이를 정말 모르겠다 싶을 때가 있다.
“오늘 병원에 갔더니 간호사가 내 나이를 94세라고 하던데 97세 아니여? 저번에 네가 그렇게 말했던 것 같은디.”
전화기 너머에서 딸이 말한다.
“엄마, 헷갈리시는구나. 엄마 실제 나이는 97, 주민등록상 나이는 94. 이제 알겠죠?”
“아이고, 뭐가 그리 복잡허냐?”
“엄마, 그냥 아흔네 살이라고 하셔. 3살이나 젊고 좋구만.”
딸이 말하며 웃는다.
“그래, 그럴까?”
딸에게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는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차피 남세스러운 나이구만.”
years, lovers and glasses of wine
these are things that must not be counted
남세스럽다 : 남에게 놀림과 비웃음을 받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