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 아들이 울먹이며 말했다
전 왜 열정이 식었을 때가 돼서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건가요?
“이번 주말에는 가족 줌 할 수 있는지 동생하고 시간 정해 줄래.”
딸에게 부탁했더니 줌 미팅 가능 여부를 묻는 메시지를 지난밤 가족 톡에 올렸다. 내내 답이 없던 아들이 몇 시간 만에 답을 올렸다.
“며칠 내로 마감해야 하는 것이 있어서 조금 힘들 듯.”
얼나마 바쁜지 짐작이 가는 짧은 메시지다. 과학지에 제출할 논문 마무리로 여유가 없나 보다.
줌으로나마 일주일에 한 번씩 보던 아들의 얼굴을 못 본 지가 한 달이 넘었다. 큰 아이인 딸이 뉴욕에 있을 때는 매주 거르지 않고 줌에서 만날 수 있도록 챙겼었는데, 한국에 들어온 후 좀 시들해졌다. 눈만 돌리면 맛있는 한국 음식이 널린 서울에 살고 있으니 아쉬울 것이 없나 보다. 아마도 큰 아이에게 가족 줌은 향수를 달래는 시간이었을까?
미국 인디아나에서 박사 과정 중인 아들은 어릴 때 조용하고 얌전한 편이었다. 마른 몸에 귀염성 있는 얼굴, 말수까지 적어서 소극적인 아이가 되면 어쩌나 걱정도 했다. 그런 아들이 벌써 스물아홉 살 성인으로 멋지게 성장하여 자기 길을 찾아가고 있다. 참 대견하고 믿음직스럽다.
어릴 때 너무 얌전해서 걱정했던 아들은 초등학교 4학년 무렵부터 관심 분야에 열정을 보이기 시작했다. 일을 하는 엄마를 대신해서 큰 아이인 딸은 늘 동생의 일상을 현미경 속을 들여다보듯 낱낱이 살폈다. 동생이 함께 어울려 다니는 형이나 친구의 가방 속 책이나 노트의 상태만 보고도 동생의 현재 생활이 모범적인지, 일탈을 하고 있는지 판단했고 위험이 있을 때마다 엄마에게 알렸다. 생각하면 나를 대신해 준 딸이 고맙고 미안하다.
어느 날 딸이 말했다.
“엄마,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데~.”라고 말끝을 흐리며 나를 동생 방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는 여왕개미를 잡아다가 개미 알들을 부화시키고 있는, 제법 구색을 맞춘 작은 상자가 있었다. 빛을 가리기 위해 어두운 천을 씌웠고, 개미 먹이로 설탕을 준 흔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미 몇몇 새끼 개미들이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누나는 동생을 걱정하고 있었지만 난 개미를 몰래 키우고 있는 아들이 대견해서 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그때는 동생을 염려하며 나에게 정보를 준 딸에게도 보상이 있어야 하니까 드러내 놓고 좋아할 수는 없었다.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을 때 이번엔 불현듯 물고기를 키우고 싶다고 했다. 물론 나는 단연코 안 된다고 했다. 아들이 순간적인 호기심으로 산 물고기들 관리는 내 차지가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직장 일과 집안일, 그리고 두 아이들 교육까지 그것만으로도 이미 한계 초과였다.
매몰차게 안 된다고 말하며 더 이상 말도 못 붙이게 하는 매몰찬 엄마를 바라보던 아들 눈에 순식간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엄마, 왜 지금 안 되는 거예요? 왜 전 항상 하고 싶을 때 못하고, 하고 싶은 열정이 식었을 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거예요? 지금 하고 싶은데 왜 나중에 해야 되는 거예요?”
아들은 울고 있었고 그 순간 내 심장도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강력 펀치를 맞은 기분이었다. 아주 기분 좋은, 큰 한 방이었다.
‘아, 그랬구나. 이렇게 간절하구나. 그동안 이 간절함을 난 얼마나 많이 지나쳤고 또 모르는 척했을까?’ 자신의 열정을 보여준 아들이 너무 멋져 보였다.
즉시 아이가 원하는 물고기를 사러 갔다. 물고기 몇 마리와 장난감 같은 인공수초, 그리고 자잘한 돌들로 겨우 구색을 갖춘 작은 어항이 식탁의 가장자리를 차자했다. 그때 샀던 물고기의 이름은 물론이고 색깔도 기억에 없다. 밤중에도 켜 둬야 했던 어항 불빛과 산소공급을 위해 쉼 없이 돌아가던 장치 소리가 가끔 잠을 설치게 했다는 기억만 어렴풋하게 남아있다. 물론 어항 청소는 내 몫이었고 물고기들도 하나둘씩 죽어서 결국 어항을 치워야 했다.
작은 어항 하나로 아들의 열정은 얼마만큼 채워졌을까?
‘그래, 하고 싶은 것은 마음껏 해 봐.’라는 말보다
‘꼭 그걸 해야겠니?’, ‘다음에 하면 안 될까?’를 더 많이 듣게 해서 많이 미안하다.
일을 한다는 핑계로 반찬가게 음식을 많이 먹게 한 것도 정말 미안하다.
지금은 퇴직을 해서 내어 줄 시간이 많은데 아들은 비행기로 15시간 거리에 있다. 인생이 퍼즐처럼 항상 딱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내가 퍼즐 조각들을 잘못 맞춘 일도 많았을 것이다.
엄마의 심장마저 뛰게 만들었던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의 열정 발언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리고 때때로 그 말은 나에게 용기를 준다.
아들은 종종 나에게 말한다.
“엄마, 글을 쓰세요.”
“아니야, 나는 능력도 부족할뿐더러 게을러서 안 돼.”
아들은 다시 말한다.
“엄마는 꼭 글을 쓰시게 될 거예요.”
그리고 나는 미뤄왔던 글쓰기를 시작했다. 아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참 고마운 아들이다.
모든 부모가 그렇겠지만 나도 두 아이를 키우면서 같이 성장하고 있다. 두 아이는 각각 다른 면에서 나에게 자극을 주고 나를 성장하게 한다. 아이가 둘이니까 두 배로 배울 수 있어서 그 점도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