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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스피커와 아내의 옷장

5060, 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남편의 스피커는 왜 사라졌을까?

by 오월 나무

이사한 지 이틀밖에 안 됐지만 대충 정리가 끝나가는 집은 제법 모양을 갖추어 가고 있었다. 센스가 있는 아내는 적은 돈으로도 집안을 세련되게 만들 줄 알았다. 새로 산 가전제품과 소파는 오랫동안 써 온 가구들과 제법 조화를 이루었다. 얼핏 보기에 집안의 다른 물건들과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이국적인 색깔의 카펫과 콘솔도 낯선 분위기를 만들며 집안의 포인트가 되어 분위기를 더욱 새롭게 만들었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는데 아내는 아직도 남편의 많지 않은 옷들을 들고 이방 저 방을 오가고 있었다. 아이 둘이 모두 독립을 해서 남편과 아내의 짐만 남았는데도 남편의 옷과 짐들을 둘 마땅한 곳이 없었다. 아직 일에 대한 열정이 남아 있는 남편은 명예퇴직 후에도 해외에서 일을 하며 일 년에 한두 번 귀국하여 한두 달 정도 집에 머물다 다시 출국을 했다. 그런 탓에 남편이 그렇듯 남편 짐도 서울에 정착하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출근할 때 입었던 많은 양복과 그때 필요했던 물건들을 거의 정리했고, 이제는 꼭 필요한 양복 몇 벌과 운동복, 생활복 등만이 남아 있는 전부였다. 그런데도 아내는 얼마 남지 않은 남편의 짐들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결정을 못 하고 마음만 분주했다.

옷장은 이미 아내의 옷으로 꽉 찼다. 워낙 패션에 관심이 많은 데다 아직 현직에서 일하고 있는 아내는 옷이며 신발이며 액세서리 등을 사는 것을 즐겼고, 늘 멋진 스타일을 연출할 줄 알았다. 그래서 옷장은 이미 아내의 물건으로 가득했다. 이미 꽉 차 버린 옷장에 잠시 귀국해서 머물렀다 가는 남편의 옷이 자리할 곳이 없었던 것이다. 얼마 되지 않는 자신의 옷이며 소지품을 들고 여전히 이방 저 방 자투리 공간을 훑고 다니는 아내를 보며 남편의 얼굴이 굳는다 싶더니 다소 힘을 실어 아내의 손에서 물건들을 가져갔다. 미안한 듯, 안쓰러운 듯한 아내의 시선을 뒤로하고 남편은 이곳저곳의 옷장 문을 여닫으며 자신의 공간을 찾았다.

이사 날짜에 맞춰서 남편이 귀국했고 입주 날이 다가오면서 이것저것 준비할 것이 많았다. 새로 지은 아파트라 새집증후군도 씻어내야 하고, 입주청소도 해야 했다. 시스템에어컨을 설치하고 새 집에 이사 오는 기분으로 오랫동안 써 왔던 가전제품도 산뜻하게 새것으로 바꾸었다. 집 크기에 비해 과하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가능하다면 큰 가전제품과 가구들을 샀다. 50인치 텔레비전과 세탁기와 건조기, 6인용 식탁, 어른들만 사는 집에서나 꿈꿀 수 있는 크림색 패브릭 소파까지 샀다. 이 정도면 만족스러운 이사 쇼핑이었다.

그런데 서울의 신축 84제곱미터 아파트의 실내는 기대했던 것보다 더 좁았다. 제대로 된 팬트리 공간도 없어서 많은 것들을 버려야 했다. 언젠가는 쓰일지도 모른다는 미련을 갖고 하염없이 쌓아 두었던 물건들을 정리하는 것을 시작으로 나중에는 지금 당장 쓸 일이 없으면 필요 없는 물건으로 분류해서 과감하게 버렸다. 버릴 물건들을 몇 번씩이나 들었다 놨다 하며 아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남편 손에서 아내는 빼앗듯 물건들을 가져오며 쐐기를 박듯 말했다.

“나중에 필요하면 다시 사면되니까 미련 버려요. 난 이 물건들 몽땅 버릴 거예요.”

남자들은 왜 그토록 물건에 집착하며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집안의 물건들을 주로 사용하는 사람은 아내인데 정작 그 물건에 애착을 보이고 버리지 못하는 쪽은 남편들이다.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남자들의 습성은-물론 모든 남자들이 그렇다고 일반화하지는 않겠다.-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인류의 오랜 역사 속에서 고착화된 남녀의 역할 차이에서 비롯된 남자들의 무의식적인 본능일까?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그들의 생명을 유지시키기 위해서 무엇이든 모으고 저장해 둬야 했던 삶이 습성이 되고 무의식적인 본능이 된 것일까? 두루두루 살펴 생각해 보면 인류의 역사 속에서 여성만이 가혹한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지 싶다. 남자들의 삶도 못지않게 고단했고, 지금도 그 흔적이 그들의 삶에 남아 있는 것 같다.

신혼 시절, 집안의 메인 자리는 남편의 것이었다. 옷장에서 꺼내 입기 가장 편한 자리에 남편의 출근복이 걸렸고, 신발장에는 눈높이에 맞추어 남편의 신발이 놓였다. 남편이 아끼는 오디오 세트와 CD들은 거실 한가운데, 가장 눈길이 많이 가는 곳에 장식품처럼 놓였다. 좁은 신혼집의 중심 자리는 남편 차지였고, 집안 곳곳에는 아이들 짐이 쌓여갔다. 아내의 물건들은 제철에 쓸 것들만 겨우 한 계절 나왔다가 다시 철이 지나면 박스 속으로 들어갔다.

결혼 생활이 지속되면서 아이들은 성장했고, 직장에서 남편과 아내의 역할도 커졌다. 그 사이 몇 번의 이사로 집도 넓혔고, 집안의 살림살이 배치도 바뀌었다. 거실 중심에 자리 잡았던 남편의 오디오와 스피커는 거실 한편에 있었고, 그 자리에 아내 취향의 장식장이 놓였다. 집안 분위기는 한결 아늑해졌고, 남편의 스피커에서 음악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집안에는 부드러운 공기가 흘렀다. 아내는 더 이상 질 낮은 CD를 오디오에 넣었다고 남편에게 핀잔을 듣지도 않았다. 그렇게 남편의 오디오와 스피커는 밀려나고 잊혀져 갔다.

몇 년이 흐르고 다시 이사를 하는 사이 남편이 아끼던 오디오는 버려졌고 스피커만 책장 한 귀퉁이에 자리했다. 물론 하루가 다르게 성능 좋은 음향기기들이 판매되는 시대여서 그랬을 수도 있었지만, 남편에게 오디오는 그렇게 버려지기에는 의미가 컸다.

그리고 이번 이사 때 아내는 남편의 스피커마저 버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 스피커를 사용하지 않은 지 너무 오래됐기 때문이었다. 집안의 공간은 부족하고 물건은 많으니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버리는 것은 당연했다. 스피커의 존재 여부를 아는지 모르는지 남편은 스피커에 대해 묻지 않았고, 아내도 굳이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당당했던 오디오와 스피커는 집안의 중심을 차지하다 점점 가장자리로 밀려나 존재감을 잃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지금은 사라져 잊혀졌다.

50~60대가 되면서 옷장의 중심 자리에는 아내의 옷이 걸렸다. 남편은 퇴직 후 많은 옷들을 정리했고 그만큼 옷장에서 남편의 자리도 좁아지고 밀려났다. 신발장에는 철마다 패션에 맞게 신어야 할 아내의 신발이 눈높이에 맞춰서 놓였고, 남편의 신발 몇 켤레는 신발장 한편에 놓였다.

권력이란 말이 거창한 정치적 상황에서만 쓰일 수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개인 간에서도 권력(힘)을 갖기 위한 팽팽한 대립이 일어난다. 가정에서도 누가 먼저 파워(힘)를 갖느냐를 두고 결혼초부터 갈등과 다툼을 벌인다. 한때는 팽팽하게 균형을 유지하기도 하고, 때로는 시소를 타듯 한쪽으로 기울기도 하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어느 한 사람에게로 이동해 가기도 한다. 우리는 그것을 권력이라는 거북한 말로 인지하고 싶지 않지만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작든 크든 집단이 있는 곳에는 늘 권력이 존재해 왔다. 주변을 한 번 찬찬히 살펴보자.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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