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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나무 Aug 30. 2022

영화 '풀타임' 그녀의 삶에 파리의 낭만은 없다

본 글에 스포일러가 포함 돼 있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 친구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우리에게도 풀타임 시절이 있었지? 가끔은 그때가 그리울 때도 있으니까 오늘 영화는 ‘풀타임’으로 하자.”

 영화가 끝난 후, 관객마저 숨 쉴 여유를 가질 수 없게 만드는 ‘풀타임’의 갑갑하고 어두운 터널에서 아직 빠져나오지도 못하고 있는데 친구가 말했다,

 “그래, 역시 풀타임은 무리야. 다시는 돌아가지 않는 것으로 하자.”

 영화 ‘풀타임’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영화 내내 뛰고 있는 여주인공 쥘리와 그녀의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긴박한 음악이다. 영화에서 음악은 인물의 대사만큼이나 스토리 전개나 분위기, 인물의 심리를 전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풀타임’에서 그것을 제대로 보여준다. 단조로우면서도 심장을 죄어오는 듯한 빠른 비트의 음악은 관객에게 긴 호흡을 허락하지 않는다.


 쥘리의 하루는 알람으로 시작된다. 두 아이에게 시리얼로 아침을 먹이고, 그녀가 일하는 동안 아이들을 돌봐 주는 집으로 급하게 향한다. 그녀는 두 아이를 위해 파리 교외에서 살고 있으나, 전국적인 교통파업으로 출퇴근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긴박한 음악과 함께 전력질주한 그녀는 가까스로 기차에 타나 교통지옥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대체버스로 환승해야 하고, 카풀을 해야 하며, 때로는 트럭을 빌려 집에 가거나 시내의 허름한 호텔에서 잠을 자야 하는 등 출퇴근 전쟁을 치러야 한다.


또한 주택대출금 연체 상황으로 곤란을 겪고 있는데 양육비를 보내야 하는 남편은 일주일째 연락이 되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아이들을 돌봐주는 사람은 교통파업으로 인한 그녀의 힘든 상황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구하라고 통보한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한가닥 희망이 있다. 혼자 두 아이를 키우기 위해 할 수 없이 선택한 5성급 호텔의 메이드에서 탈출해 자신이 원하는 회사에서 다시 리서처로 일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그녀는 최악의 상황에서 면접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근무시간 동안 최대한 자신의 업무를 처리하고 나머지는 동료에게 부탁을 한다. 최종 면접이 있는 날, 동료들에게 근무 교체를 부탁하지만 거절을 당한 그녀는 하는 수 없이 두 아이를 둔 인턴 메이드에게 편법으로 자신의 출퇴근 카드를 이용해 자신의 무단이탈을 무마하려 한다. 그러나 결국 상사가 이 모든 것을 알게 되고 그녀도 인턴도 해고를 당하게 된다.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직장 상사 몰래 면접을 봤던 곳에서도 아무런 연락이 없자, 그녀는 직접 전화를 해 보지만 부정적인 답변을 듣게 된다. 새로운 삶이 열릴 것이라는 기대는 모두 무너지고,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딸이 가고 싶어 하는 놀이공원을 찾게 된 그녀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온다. 이때부터 영화 음악의 색깔이 달라진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 3분 남짓, 영화는 관객에게 긴장의 끈을 늦추어 준다. 다소 잔잔하고 부드러운 음악과 함께 그녀는 함께 일하자는 제의를 받게 되고 이를 수락한다.

 쥘리, 그녀가 원하는 직장에 다니게 되었다고 해서 이 영화가 해피앤딩은 아니다. 교통파업이야 언젠가는 끝나겠지만, 풀타임 일을 해야 하는 그녀의 두 아이는 누가 돌볼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그녀의 일상은 또다시 알람 소리와 함께 시작될 것이고, 탈출구는 없다. 그래서 이 영화가 보여주는 파리는 전혀 낭만적이지 않다. 영화 내내 심한 교통체증과 밋밋한 아파트가 있는, 흔한 대도시의 복잡한 일상이 있는 파리를 보여준다. 비 오는 날, 회색 빛 도심 속에서 멀리 보이는 에펠탑, 잠깐 등장하는 이 장면마저 없었다면, 이 영화의 배경이 파리라고 상상하기 힘들다. 이 영화는 풀타임으로 일하는 싱글맘의 인정사정없는 일상을 압도적인 긴장감으로 표현하여 관객의 몰입도를 끌어올린다.

 삶의 총체적인 난관 앞에서도 아들의 생일파티까지 잘 치러 주고 싶어 하는 강한 여성 쥘리, 그녀가 그토록 원했던 직장을 다니게 되었지만, 그녀의 앞날은 고난일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의 마지막 부분, 잠깐 동안의 잔잔한 음악은 관객에게 위안을 주지 못한다. 또다시 절박한 표정으로 파리 시내를 전력 질주하게 될 쥘리. 두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의 전쟁 같은 삶에 과연 평화와 여유가 찾아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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