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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나무 Sep 03. 2022

'커서 뭐가 되고 싶어?'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

 ‘너는 커서 뭐가 되고 싶어?’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때 어떤 직업을 갖기 원하는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흔히 하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아이가 태어나 첫돌이 되었을 때부터 시작된다. 아이의 첫 생일에 하는 돌잡이는 돌상에 올려진 물건 중 아이가 어떤 것을 집는가를 보고 그 아이의 미래나 직업을 짐작해 보는 것이다. 과거 조선시대에는 돌잡이로 쌀, 붓, 활, 돈, 실 등을 돌상에 올렸는데, 오늘날에는 실, 돈, 책, 연필뿐만 아니라 시대상이 반영되어 요즘 인기 직종을 상징하는 청진기, 마이크, 법봉, 각종 스포츠 용품, 마우스, 카메라, 지휘봉 등이 돌잡이로 애용된다고 한다. `


 ‘너는 뭐가 되고 싶니?’라는 질문은 대체로 생애 첫 직장을 갖기 전까지 계속된다. 부모님이나 친척, 선생님, 혹은 대부분의 어른들은 이제 겨우 말을 하기 시작한 아이들부터 중고등학생, 심지어는 대학생에게까지 이 질문을 한다. 그만큼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이기 때문일 것이다.

 흔히 퇴직을 한 사람들에게 ‘인생 제2막을 축하합니다.’라는 표현을 쓴다. 퇴직 전의 삶이 인생 제1막이라면, 이제 새로운 인생의 무대가 시작될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하는 축하의 말이다. 그런데 과연 사람들은 퇴직자들에게 정말 새로운 인생 2막이 시작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을까?


 얼마 전 퇴직한 친구들을 만났다. 자녀가 새로 시작하게 될 비즈니스에 대한 고민이 있어서 명리학에 조예가 깊다는 사람을 찾아가 자녀의 미래에 대해 상담을 하고 왔다고 했다. 그러한 경험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나는 호기심이 생겼다.

 “다음에 갈 때는 나도 데려가 줄 수 있어?”

 “넌 애들이나 남편, 걱정할 것이 없는 것 같은데 뭐가 궁금해서 가려고?”

 “아니, 뭐 애들도 그렇지만, 나도 어떻게 될지 궁금하고, 또 호기심으로 가 보려고.”

 “아니, 너에 대해서 물어보러 간다고? 우리 나이에 더 이상 무엇이 궁금해?

 “뭐… 궁금할 수도 있지...”

 “우리 나이에는 더 이상 변할 것이 없어. 굳이 변한다면 늙고, 병들고, 그리고…” 


 생로병사(生老病死)는 삶의 당연한 과정이고, 가끔 몸이 아프면 자연스럽게 ‘로병사(老病死)’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남은 시간 동안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한 적이 거의 없는 나로서는 친구의 말이 당황스럽고 의아해서 순간 할 말을 잃었다. 한참을 있다가 ‘그래도 그건 아닌 것 같다.’고 말하면서도 ‘정말 우리 나이에는 더 이상 달라질 것이 없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나의 관점이 보편적인 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여겨졌다.


 궁금했다. ‘정말 은퇴 연령은 더 이상 변할 것이 없는 나이일까?’ 그 이후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서너 차례 있어서 그 친구들에게도 물었다.

 “퇴직 이후는 더 이상 변할 것이 없는 때라고 생각해?”

 열 명 중 일곱 명 이상은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 이유는 ‘직업, 결혼, 돈, 명예 등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이 더 이상 변할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들의 말도 일리는 있어 보였지만, 왠지 석연치 않았고 동감하기 어려웠다. 왜일까? 그들은 왜 그렇게 생각하고, 나는 왜 그 생각에 쉽게 동감하기 어려웠을까?


 작은 아이가 중학교 2학년 때 저녁 식탁에서 그런 말을 했다.

 “엄마, 사는 것이 왜 이래요?”

 중2 남자아이의 뜻밖의 질문에 눈을 크게 뜨고 바라봤다.

 “응? 사는 것이 왜 이러냐니?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

 “아니, 생각해 보니까 태어나서 좋은 학교 가려고 열심히 공부하고, 그 후에는 좋은 직업을 가지려고 또 열심히 준비하고, 그리고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면 그때부터는 그 아이를 좋은 학교에 보내고 좋은 직업을 갖게 하려고 또 열심히 뒷바라지를 하잖아요. 결국은 일생 동안 좋은 학교, 좋은 직업을 위해서 끊임없이 열심히 살아야 하는 거잖아요. 같은 것이 계속 되풀이되고 반복되는 것 같아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 과학고등학교를 준비하고 있던 둘째는 공부 양이 많았다. 본인이 좋아해서 선택한 화학 공부는 좋아했지만, 그것 만큼은 아닌 수학 공부는 힘들었을 것이다. 15살, 책 읽기를 좋아하는 아들은 자신과 부모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자신이 부모가 되어도 비슷한 목표를 위해 살아가고 있겠구나!’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때 내가 어떤 대답을 하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그런 생각을 하게 한 아들에게 미안하다. 좀 더 여유를 가지고 공부를 즐길 수 있게, 공부뿐만이 아니라 다른 것도 두루두루 함께 했어야 했다.

  변화(變化)란 사물의 성질, 모양, 상태 따위가 바뀌어 달라지는 것을 뜻한다. 취직과 결혼, 출산, 내 집 마련 등이 인생에서 큰 변곡점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어떻게 보면 태어나서 서른 살 전후까지는 취직과 결혼을 바라보며 살고, 그 이후에는 자녀의 교육 취직, 결혼을 염두에 두고 살아가는 것 같다. 그래서 은퇴 세대들은 자신들에게 변화란 자녀의 결혼과 손자, 손녀를 보는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일정 부분 맞는 말이기도 하다.


 눈에 보이는 변화만을 목표로 살아가다 보면, 보이지 않는 변화를 놓칠 수 있다. 직업이라는 목표에 치중하며 살아온 삶이다 보니, 직업을 떠난 퇴직 후의 삶은 더 이상 기대할 것도 변할 것도 없는 것으로 여겨지고, 그래서 자신의 인생보다 자녀의 취직과 결혼에 더 매달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오랫동안 교사로 근무하면서 수업방식이나 학생지도, 상담, 그리고 업무 등에서 나름대로 변화를 추구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학교에서 더 이상 변화를 시도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자신을 발견했다. 학생들을 위해서도 자신을 위해서도 학교를 떠나야 한다고 생각돼서 퇴직을 결심하고, 조금 이른 나이에 희망퇴직을 했다. 어찌 보면 나에게 퇴직은 변화를 위한 시도였는데 ‘우리 나이는 더 이상 변할 것이 없다’라는 친구의 말을 들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

 태어나서 30년 남짓 직업을 갖기 위해 에너지를 쌓고, 그 후 30년 남짓 직장에서 그 에너지를 사회에 환원하며 산다. 그리고 은퇴 후, 내 안에 존재했지만 돌아보지 않았던, 어쩌면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내적인 에너지를 깨우고, 채우며, 기회가 된다면 그 에너지를 타인과 사회에 나누며 살아가는 새로운 변화가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자신에게 물어본다.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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