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월 나무 Aug 28. 2022

돌봄 욕구, 나를 위한 봉사

 지방 소도시에 사는 친구와 모처럼 통화를 했다.

 “나 정말 속상해.”

 “왜? 무슨 일 있어?”

 “오랜만에 친구들 모임 때문에 서울에 가는 길에 딸 집에서 하룻밤 자면서 같이 시간 보내고 싶어서 전화했더니, 글쎄, 딸이 같이 밖에서 밥만 먹고 나는 그냥 집에 내려가라지 뭐야! 자기 집에서 자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거지…”

 “딸한테 그날 무슨 일이 있었나 보네. 그래도 속상하고 섭섭했겠다…”

 “무지 속상하고 기분이 언짢았지. 원하는 것 다 해 주며 키웠는데 이런 대접받나 생각되고… 차라리 남을 도왔으면 이런 상처는 안 받지 않을까 생각했어.”

 “그래, 우리가 자식들에게 상처받을 때 많지.”

 “얼마 전 기사 보니까 보호종료아동(아동복지법상 ‘보호대상아동’은 만 18세가 되면 ‘보호종료아동’이 된다.) 의 학업과 생활을 지원하면서 그들의 자립을 돕는 단체가 있던데, 차라리 그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더 의미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 보람과 의미는 느끼면서 서로 모르는 사이니까 기대도 하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상처도 없겠지. 자식 돌보는 것보다 차라리 그렇게 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친구는 딸에게 최선을 다해 경제적, 정신적 지원을 했는데, 기대만큼 서로 교감할 수 있는 시간이 적어서 상처를 받았다. 그리고 물질적인 돌봄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다른 대상을 찾고 있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에 애완동물을 키우는 가정이 부쩍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이 실시한 2020년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네 가구 가운데 한 가구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는데 현재 이 수치는 점점 증가하고 있다. 이에 어느 교회에서는 예배를 진행하는 동안 집에 혼자 있을 애완동물을 교회에 데리고 오면 돌봐 주는 ‘드림펫 서비스’를 실시했는데 교인들의 반응이 매우 좋았다고 한다. 자녀들이 원해서, 또는 혼자 사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혹은 자녀가 독립한 후 허전함을 채우려고, 그리고 결혼은 했지만 아이를 낳는 대신 애완동물을 키우는 등 다양한 이유로 애완동물과 가족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과거에 비해 점점 애완동물과 함께 살고 있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대사회가 복잡해지고 개인주의가 팽배해지면서 인간관계에 의해 받는 상처가 많아지고 있다. 이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데 이를 기피하는 사람들이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보다, 애완동물과의 교감을 선택하는 측면도 있다. 경제적, 정신적으로 출산과 육아에 대한 부담을 느낀 부부들은 애완동물을 아이 대신 기르는 경우도 종종 있다. 애완동물과 함께 하는 삶을 선택하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대체로 애완동물에게 인간의 감정을 투영하고, 나아가 공감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애완동물을 기르는 것이 인간의 돌봄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측면도 작용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른 퇴직을 한 이유 중 하나는 가족에게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직접 만들어 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마음먹고 요리책도 두세 권 사고, 지역 커뮤니티에서 운영하는 요리 클래스에도 등록했다. 한식 요리 클래스 선생님은 70세 전후였는데, 어느 날 당신은 임영웅 팬클럽 회원이며 그의 사무실에 갖가지 김치를 직접 만들어 제공해 준다는 얘기를 했다. 임영웅 콘서트에도 빠지지 않고 가는데 ‘자신에게 임영웅은 아들이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사람들이 연예인 팬클럽에 가입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나의 한식 요리 선생님의 경우는 임영웅의 노래를 좋아해서이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임영웅이라는 가수를 돌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했다.


 경제적인 대가가 없는, 돈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일, 봉사를 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퇴직 후를 대비해 코이카 해외봉사단에 대해 알아보고, 나름대로 준비도 했는데 개인적인 문제와 코로나 상황으로 국내 봉사에 대해 알아봤다. 그래서 올초부터 내가 잘할 수 있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봉사를 시작했다. 예상했던 것처럼 봉사는 의미도 있고 보람도 있다. 특히 상대방이 만족하고 감사함을 표현하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행복감이 느껴졌다. 그런데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나의 봉사를 당연하게 여기거나(몰론 이것은 순전히 나의 느낌이지 상대방이 그랬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경우 당황스럽고 약간 억울함마저 느껴질 때가 있다. 아직 성숙되지 않은 나의 모습을 보는 순간이다. 물질적이건 정신적이건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순수한 마음에서 시작했을지라도 상대의 긍정적인 피드백이 없으면 섭섭해지는 것은 인지상정일까?


 인간은 다른 생명을 돌볼 때 자기 존재감을 느끼고, 자신감을 회복하며 유대감을 경험한다고 한다. 이것만으로도 돌봄과 봉사의 보상과 의미는 충분한데 이보다 더한 것을 바란다는 것은 분명 자신의 한계이며 미숙함이다. 나를 움직이게 했던 처음 마음. 그 순수함을 다시 생각했다. ‘봉사란 남을 위하여 시간적, 물질적, 정신적인 것을 나누고 이를 위해 애쓰는 것을 말한다.’라는 ‘봉사’의 일반적인 의미는 수정돼야 할 것 같다. ‘봉사는 인간의 돌봄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것으로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만족과 성장을 위해 애쓰는 과정이다.’라고.


매거진의 이전글 호흡명상, 마음 챙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