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앙증맞은 의자에 앉아 있는 유치원생들이 선생님의 질문에 서로 대답을 하겠다며 고사리 같은 손을 번쩍 들고 있다. 어떤 아이들은 든 손을 반짝반짝 흔들기도 하고, 어떤 아이들은 몸을 반쯤 일으키거나 앞으로 내밀고 있다. 호기심 가득한 눈동자들이 제발 자신을 봐 달라는 간절한 눈빛을 선생님께 보내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런 적극적인 모습은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이어지다가 고학년이 되면서 대답이나 발표, 혹은 질문을 하는 학생들이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한다. 중학교 1학년 때까지만 해도 그나마 나은 편이어서 반에서 20% 정도의 학생들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데 적극성을 보인다. 그러나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자신을 표현하는데 수동적이 되고, 수업은 활력을 잃어가며 교사의 일방적인 수업이 진행된다.
인간의 표현 욕구는 나이가 들수록 서서히 줄어드는 것일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연령이 높아질수록 자신에 대한 평가에 더 민감해지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점점 의식하게 되면서 위축하게 되고, 의도적으로 자기표현에 소극적인 경향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표현 욕구는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국어 교사로 근무하면서 독서 후 토론(토의)을 거쳐 논술(글쓰기)을 하는 방과후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었다. 중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독서와 토론, 글쓰기에 관심이 있으면서 읽기 능력을 갖춘 학생들 중 희망자를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그 수업을 진행하면서 놀랐던 것은 그 활동이 읽기와 듣기, 말하기, 쓰기라는 언어의 기본적인 능력을 키우는 활동임에는 분명하나, 교과 수업이나 내신 성적에는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데도 학생들이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그 수업에 참여하였던 학생들도 대체로 본 수업 시간에는 조용하게 수동적인 자세로 수업을 듣는 편이었는데 방과 후 수업인 독서토론논술 수업에서는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본 수업과 방과후수업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본 수업에 비해 학생 수가 적어서 참여의 기회가 많았다는 점, 독서와 토론, 논술이라는 공통의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있다는 점, 그리고 자유로운 책상 배열을 통한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위한 분위기 조성 등이었다. 구성원의 일부가 바뀌기도 했지만, 거의 같은 학생들이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2년 반 동안 수업을 진행하였는데, 학생들에게도 나에게도 굉장히 흥미롭고 의미 있는 수업이었다. 본 수업에서 볼 수 없었던 학생들의 활발한 참여와 소통을 보면서 보람을 느꼈다.
소통 욕구
카톡을 제외하고는 다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전혀 이용하지 않는 나로서는 SNS상에서 활발한 소통을 하는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브런치에 글을 쓰고,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으면서 댓글과 답글을 통해 나의 생각과 의견을 나누는 경험을 통해 그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서로의 생각과 의견을 나누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여러 가지 이유로 자신의 표현 욕구를 자제하게 됨에 따라 정신적, 심리적 고립을 경험하게 되는데, SNS가 그들의 탈출구가 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할 때 상대를 더 의식하게 되고, 자신의 평가에 좀 더 민감하게 되어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 있다. SNS가 비대면이라는 점이 그들의 소통을 더 활발하게 만들었는데, 이로 인한 여러 문제점도 있지만 인간의 표현 욕구와 소통 욕구를 채워준다는 장점도 있는데, 이는 SNS가 빠른 속도로 확장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독서는 작가나 작품에 등장인물과의 대화 과정이다. 독자는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글을 쓴 의도를 생각하고, 행간의 의미를 통해 다양한 해석을 한다. 작가나 등장인물을 자신과 동일시하거나 그들의 생각과 행동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고, 때로는 새로운 관점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질문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독서의 과정을 통해 한 사람의 작가에 의해 쓰여진 한 권의 책은 그 책을 읽은 독자의 수만큼 다양한 작품으로 새롭게 해석되어 재탄생하고, 독자의 삶에도 영향을 주며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기도 한다.그러나 혼자 하는 독서는 일방적인 소통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간혹 오프라인에서 작가와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상호적인 소통의 시간을 갖기도 하나 기회가 많지 않고 제한적이다. 물론 최근에는 SNS를 통해 상호적인 소통을 활발하게 하는 작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교직 시절 학생들과 독서토론글쓰기 방과후수업을 했던 기억을 떠올려 본다. 그 수업에서 학생들은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였는데, 이는 독서를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말과 글로 표현하고 소통하려는 욕구가 강한 학생들이 모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브런치 플랫폼도 같은 경우라고 생각한다. 언어를 통한 표현 욕구와 소통 욕구가 강한 사람들을 브런치에서만큼 많이 만나기란 쉽지 않다. 브런치에 있는 글을 읽다 보면 거의 모든 작가들이 독서와 쓰기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지속적인 글쓰기를 통해 출판을 계획하는 작가들도 많지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공통의 관심을 가진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쓰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공통의 관심과 흥미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브런치가 지속 가능한 공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브런치에서 글을 쓰고 읽기 시작하면서 종이책을 읽는 시간이 줄어 아쉬움이 있었는데, 한편으로는 다른 작가들과 소통함으로써 느끼는 공감대와 유대감이 있어서 좋다. 자신의 관심분야나 일상생활을 글로 표현함으로써 표현 욕구를 충족시키고, 때로는 서로의 글을 읽고 댓글과 답글로 공감을 표현하거나 피드백을 함으로써 소통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종이책을 읽는 것이 작가나 등장인물과의 일방적인 소통이라면, 브런치에서 글을 쓰고 읽는 것은 상호적인 소통이라는 점과 진솔한 소통이 가능한 비대면이라는 점도 강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