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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나무 Sep 15. 2022

다채로운 색채와 모양의 퍼즐이길

 “엄마, 제가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요?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도 뭔가 불안해요. 현재 최선을 다 해 했던 일들이 나중에 필요 없게 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되기도 하고요.”

 큰 아이가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던 3학년 즈음에 한 말이었다. 1학년 여름방학 때는 한국 컨설팅 회사에서 한 달 동안 인턴을 했고, 2학년 여름방학 때는 본인이 다니는 대학에서 하는 수학 리서치에 지원해서 여러 대학에서 온 학생들과 한 달 동안 수학 공부를 했다. 그리고 3학년 1년 동안은 파리에 교환학생을 가기로 돼 있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계획하고 실행하다가도 문득 자신이 하고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이 무의미하고 헛된 것이 되면 어떻게 하나라는 막연한 불안감이 있었던 것 같다.


 딸의 걱정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럼, 네가 지금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이 네 인생에서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줄 것이라고 믿어. 나는 인생은 퍼즐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너는 지금 네 인생의 퍼즐 조각들을 하나하나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지금은 그 퍼즐이 어떤 그림으로 완성될지 알 수 없지만, 때가 되면 그림의 큰 틀이 보일 거야. 그리고 언젠가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멋진 그림으로 완성되겠지. 어쩌면 인생에서 완성이란 존재하기 어려우니까. 퍼즐이 미완성으로 끝날 수도 있어. 하지만 언젠가는 너만의 퍼즐이 만들어질 거니까 하고 싶은 것들,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열심히, 즐겁게 하면 되지 않을까?”

 그 당시에는 즉흥적으로 한 말이었는데 그 후로 이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제자들을 만나면 ‘인생은 퍼즐 조각 하나하나를 만들어 자신만의 그림을 완성해 가는 과정’이라는 말을 하곤 한다. 


 흔히 퍼즐을 맞출 때는 원본 그림을 보고하는데도 완성이 쉽지 않다. 그래서 해결하는 순서가 있다. 처음에는 한 면이 직선인 가장자리를 맞춘다. 그다음에는 비슷한 색깔로 분류하거나 이정표가 될 만한 조각, 즉 글자가 있거나 특정 모양이 뚜렷한 조각을 따로 분류한다. 분류가 끝나면 맞추기 쉬운 부분부터 작업을 시작한다. 조각을 맞추어 가다가 맞는 퍼즐 조각을 찾기 힘들면 그곳은 일단 멈추고, 위치를 바꾸어서 다른 곳에서 다시 시작해 본다. 이렇게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전체 그림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때부터는 속도가 붙어 완성이 쉬워진다. 

 원본 그림을 보고 맞추는 퍼즐은 이렇게 순서와 방법을 정해서 하면 된다. 그런데 인생에는 밑그림이 없기 때문에 순서와 방법을 정해서 퍼즐을 맞출 수가 없다. 우리는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서 하지만, 사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나마 단기적인 일들은 낫다. 인생 전체를 조망해 볼 때 지금 이 순간은 지엽적이고 부분적이어서 조각 하나하나를 만들어 가며 완성해야 하는 인생 퍼즐 맞추기가 더욱 어려운 것이며,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림을 완성해야 하기 때문에 불안과 걱정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때로는 멀리서 바라보아야 잘 보이는 조각이 있다. 조급한 마음에 부분에만 집중하다 보면 큰 그림을 놓치고 방향을 잃거나 퍼즐을 다시 맞춰야 할 수도 있고, 지쳐서 퍼즐 맞추기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조각을 찾을 수 없을 때는 거리를 두고 바라봐야 한다. 또한 흥미로운 것은 눈앞에 빤히 두고도 나에게는 절대 보이지 않던 조각이 다른 사람 눈에는 잘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내 인생의 퍼즐이라고 혼자서만 만들어 가려고 하기보다는 머리를 맞대고 찾아가는 열린 마음도 필요하다. 


 인생은 어떤 그림으로 완성될지 모르는 퍼즐 조각을 매일 만들고 맞춰가는 과정이지 않을까. 퍼즐 조각들이 하나하나 만들어질 때는 어떤 모양이나 색깔로 어느 자리에 놓일지 분명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제 자리를 찾아 자연스럽게 그림의 일부가 될 것이므로 걱정과 불안으로 시간을 보낼 필요가 없다. 의미 없다고 생각되는 것들도 어딘가 그들의 자리가 있는데, 다만 아직 찾지 못했을 뿐이다. 가끔은 잘못된 곳에 놓이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자기 자리를 찾아가니 연연해하지 말자.


 군데군데 빈 공간이 보이는 나의 퍼즐은 아직 미완이다. 가족, 그리고 퇴직은 하였지만 또 다른 것으로 이어지는 일, 마음을 열고 더욱 돈독해지는 친구들, 나를 위해 주어진 시간과 함께 할 낯선 곳으로의 여행. 생각을 따라가다 보니 퍼즐의 어느 부분을 더 채워나가야 하는지가 보이는 듯하다. 

 모노톤이 아닌 다채로운 색채와 모양을 가진 퍼즐이길 염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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