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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 나무 Oct 07. 2022

오월나무

본명, 그리고 닉네임



 아버지께서는 여섯째가 국민학교에 입학한다고 이발을 말끔하게 해 주셨다. 우리 7남매의 이발은 항상 아버지께서 해 주셨는데, 햇살 좋은 마당에서 흰 보자기를 두르고 의자에 앉아 이발을 하는 풍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앞머리는 눈썹 위로 반듯하게, 옆머리는 귀밑에 맞추어 단정하게 자르고, 빨간 책가방, 국어 공책과 줄 공책, 가지런히 깎은 연필과 지우개가 담긴 필통, 내가 보기에 입학을 위한 준비는 완벽했다.


  오른쪽 가슴에 흰 손수건을 달고, 빨간 책가방을 손에 들고, 아침 일찍 학교로 향했다. 8살 아이의 걸음으로 거의 한 시간 정도는 가야 하는 거리에 내가 다닐 국민학교가 있었다. 입학식을 위해 아이들이 운동장에 줄을 맞춰 섰고, 선생님은 입학생의 명단을 하나하나 확인해 나가셨다. 아이들이 하나하나 자신의 이름을 듣고 기쁨의 미소를 지으며 이쪽에서 저쪽으로 자리를 옮겨가는 동안, 나도 이름이 호명되기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내가 서서 기다리는 이쪽의 학생 수가 줄어들수록 점점 내 이름이 불려질 때가 되었으므로 가슴은 더욱 콩닥거렸다.


 이름이 호명된 모든 아이들이 자리를 옮겨갔고, 이쪽에는 나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선생님께서 다시 확인하셨지만 내 이름은 입학생 명단에 없었다. 코를 닦으라고 오른쪽 가슴에 달아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한 시간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내 이름은 왜 입학생 명단에 없었을까?


 내 위로 언니들이 많았는데 내가 태어나자 큰언니는 내 이름을 ‘혜정’이라고 지었다. 그래서 내 어릴 적 이름은 ‘김혜정’이 되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지어 주시고, 출생신고를 하신 이름은 '김00'으로 달랐다. 그러니 ‘김혜정’이라는 이름이 입학생 명단에 있을 리가 없었고, 아버지께서 지어 주신 이름을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나는 입학생 명단에 있는 나의 본명을 알 리 없었다. 여차저차하여 입학은 하였지만 그 때문에 나의 출석번호는 맨 끝이 되었다. 출석 번호가 제일 뒤인 경우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나는 내 이름이 못마땅했다.


 그런데 국민학교 3학년 때 사범학교를 갓 졸업한 예쁜 여자 선생님께서 부임해 오셔서 방과 후에 고전 읽기를 맡아 지도해 주셨는데, 그 선생님께서 내 이름을 반복해 부르시며 ‘참 예쁜 이름이구나.’하셨다. 세련되고 우아한 선생님께서 내 이름에 호감을 보이시자, 그때부터 내 이름에 대한 불만이 조금씩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내 이름에도 매력적인 면이 있다. 흔하지 않은 이름이라 한 번 들어도 대체로 기억하기가 쉽다. 그리고 남자 이름으로 많이 지어져서 새 학교에 부임을 할 때마다 남교사일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만든다. 요즘 학교에는 남교사가 부족하여 새로 부임해 오는 교사 중 남교사의 비율에 관심을 갖는데, 이는 남녀 차별이 아니라 어느 조직이든 성의 비율이 조화로우면 좋은 면이 있기 때문에 보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본명에는 이름을 지어 주신 분들의 바람이 담겨있다. 무탈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나, 세상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하며 마음을 다해 작명을 한다. 물론 더러는 직접 이름을 짓지 않고 작명소에 가서 이름을 받아오는 경우도 있지만, 이때도 아이에 대한 바람은 매 한 가지이다. 나의 본명에는 아버지의 소박한 바람이 담겨 있어 좋다. 소리가 밝고 명랑하며 뜻깊은 의미가 담겨 있어 애착이 간다. 다만 나의 이름이 주는 의미나 이미지대로, 아버지의 바람대로 내가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가끔 하고 산다.


 성장하면서 사람들은 본명 이외에 다른 이름을 스스로 짓기도 하고 특별히 다른 사람에 의해 갖게 되는 경우도 있다. 호(號)는 본 이름을 부르는 것을 피하는 풍속에 그 근원을 두고 있는데, 한국이나 중국 등 주로 동양에서 사용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삼국시대 이래로 호가 사용되었으며,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일반인, 사대부, 학자들에 이르기까지 보편화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별명은 사람의 생김새나 버릇, 성격 따위의 특징을 가지고 남들이 본명 대신 지어 부르는 것으로 허물없이 쓰기 위하여 만든 이름이다. 누구나 자신의 별명에 얽힌 에피소드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어릴 때는 대체로 생김새를 가지고 별명을 짓거나, 본명과 발음이 비슷한 말 중에서 우스꽝스럽거나 일반적으로 입에 담기 기피하는 단어들 중에서 별명을 지어 친구들을 놀리곤 한다.


 예명은 연예인이 본명 이외에 따로 지어 부르는 이름이다. 연예인들 중 일부분은 본명을 그대로 사용하여 활동하는 경우도 있으나, 일부는 예명으로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의 본명이 촌스럽거나 어감이 좋지 않은 경우, 혹은 같은 이름으로 활동하는 연예인이 먼저 있는 경우 중복을 피하기 위해서 예명을 쓴다. 유명한 연예인들 중 본명을 들었을 때 그 사람의 이미지와 너무 어울리지 않아 웃음을 자아내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예명이 그들의 활동에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정보 통신 사회에서 인터넷을 이용하려면 자신의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고유의 체계인 문자나 숫자 등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아이디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아이디를 정할 때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는 어휘를 아이디의 일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온라인상에서 대화를 할 때 자연스럽게 아이디의 일부를 자신의 닉네임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흔하다.


 인터넷상에서 소통이 활발해지면서 본명보다 닉네임에 익숙해지고 있다. 요즈음은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 직접 얼굴을 맞대고 모임을 하는 경우에도 본명이 아닌 별칭을 정하여 부르는 경우가 많다. 자기소개를 할 때도 본명은 생략하고 별칭만 소개하는 경우가  많아서 본명을 모르는 채 지내게 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우리는 삶의 정체성을 담아 스스로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준다. 이 이름에는 자신이 지향하는 삶을 내포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작가들 중 본명을 쓰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필명을 사용한다. 그분들의 글을 떠올리며 작가명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그 이름에서 삶을 대하는 그들의 철학이 느껴진다.  

 내가 브런치에서 쓰는 작가명은 ‘오월나무’이다. 4월 중순 즈음이 되면 딱딱한 나뭇가지를 뚫고 새잎이 나온다. 은행나무의 거친 껍질을 뚫고 갓난아이의 투명한 손톱 같은 여린 잎이 올라오는 모습은 볼 때마다 경이롭다. 그래서 나의 아이디 중 일부가 ‘봄나무’인데 브런치에서 이미 사용되고 있어서, 그 대안으로 ‘오월나무’라고 하였다. ‘봄나무’나 ‘오월나무’에는 경이로움과 새로움, 초록, 성장 등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자신이 스스로에게 부여한 이 이름은 일종의 자성예언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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