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방망이

사랑이라는 이름의 도깨비 방망이가 기적을 만듭니다.

by 해온 정옥랑


전래동화 속 '도깨비 방망이'는 참 신기한 물건입니다. "금 나와라 뚝딱!" 한마디면 보물이 쏟아지고, 혹부리 영감의 혹도 뗐다 붙였다 마음대로니까요. 어릴 적엔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는데, 요즘 들어 이 방망이 하나만 있으면 참 좋겠다는 간절한 생각이 듭니다.


최근 AI 공부를 시작하며 저는 새로운 세상을 만났습니다. 예전에는 공상과학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일들이 눈앞에서 현실이 되더군요. '프롬프트'라는 주문을 넣으면 그림을 그려주고 글도 써주며, 동화책 한 권을 순식간에 뚝딱 만들어냅니다. 이쯤 되면 AI가 바로 현대판 도깨비 방망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상상이 현실이 되는 이 신기한 기술로 남편에게 작은 선물을 했습니다. 남편이 기타를 치고 제가 옆에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영상으로 만들어 보여 주었어요. 병실에 갇혀 가고 싶은 곳도, 하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못 하지만 영상 속 자신의 모습을 보며 남편은 아이처럼 환하게 웃었습니다.


남편은 2023년 9월, '전두측두치매'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 병명을 알기 전까지, 저는 남편의 이상한 행동들이 그저 고집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것이 뇌의 오작동 때문인 줄도 모르고 참 많이도 힘들었습니다. 만약 제게 진짜 도깨비 방망이가 있다면, 저는 남편의 아픈 뇌를 향해 주문을 외우고 싶습니다. "고장 난 뇌 세포는 가고, 새 세포야 뚝딱 나와라!"


단 몇년만이라도 좋겠습니다. 건강한 모습으로 손잡고 양재천을 걷고, 탁 트인 바닷가에도 가고 싶습니다. 남들이 다 하는 '평범한' 저녁 식사를 함께하고, 주말 아침엔 같은 침대에서 늦잠을 자며 뒹굴거리고 싶습니다. 왜 건강할 때는 몰랐을까요? 남편이 내 곁에 숨 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귀한 선물이었다는 것을요.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말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아도 눈빛으로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참 다행입니다.


다행히 2주 전에 건강이 좋아져 요양병원에서 요양원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남편의 옷들을 꺼내 깨끗하게 빨고 정성껏 다림질하며 묘한 기분이 들더군요. 다시 입을 일이 없을 줄 알았던 이 옷들을 남편이 다시 입을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입소하는 날, 직원분의 부축을 받으며 남편이 한 발자국씩 내디뎠습니다. 그 조심스러운 잔걸음을 보는데, 마치 아이가 세상에 나와 첫 걸음마를 뗄 때 느꼈던 그 경이로움이 다시금 밀려왔습니다. 저는 남편의 손을 꼭 잡고 말했습니다. "살아 있어 줘서 고마워."


남편도 제 말을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씨익 웃어 보였습니다. 저도 따라 아이처럼 웃었습니다. 아리랑 고개보다 험난한 인생의 고비를 넘고 나서야, 비로소 조건 없는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알 것 같습니다. 이제는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고 사랑스럽습니다.


어쩌면 '사랑'이라는 이름의 도깨비 방망이가 이미 우리 곁에서 마법을 부리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남편이 당당히 걸어 집으로 돌아올 그날을 상상해 봅니다. 그 희망 덕분에 오늘 제 발걸음도 나비처럼 가볍습니다.



출처 : 픽사베이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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