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의 나를 기억해내는 여정

마법의 성에 갇힌 내가 기억을 찾아 빛과 사랑이된다

by 해온 정옥랑

비가 오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면 팔꿈치와 무릎에서 어김없이 신호가 온다. 오래전 빙판길에 미끄러졌던 기억이 그곳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그때는 일하느라 바빠 병원에 가지 못하고 방치했던 그 상처들이 스멀스멀 존재감을 드러낸다. 문득 엄마들이 자식을 낳았던 달이 되면 출산의 고통을 몸으로 다시 기억해낸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기억은 이토록 집요하게 우리 몸의 구석구석에 새겨져 있다.


우리가 '나'라고 믿는 것들은 어쩌면 이런 경험의 기억들이 층층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와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서로에게 묻는다. "어떤 색을 좋아하세요?", "자주 부르는 노래는 무엇인가요?", "가 보고 싶은 여행지가 있나요?"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쌓아온 기억의 창고에서 답을 꺼내어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입니다"라고 정의한다.


서초구에 사는 예순아홉의 할머니, 음악 듣기를 좋아하고 두 손녀를 둔 정옥랑. 이것이 정말 '진짜 나'일까? "Who Am I?"라는 근원적인 질문 앞에 서면, 평생을 써 온 이름과 사회적 수식어들이 낯설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자신이 누구인지 찾아내려 Who You Are' 애쓰지 말고 '자신이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지 Who You Want To Be' 물어보는 건 어떨까?


최근 닐 도널드 월시의 《신과 나눈 이야기1》를 다시 펼쳤다. 1999년 처음 이 책을 만났을 때와는 또 다른 문장들이 마음에 와 닿는다. 책 속의 신은 우리가 알고 있던 관념을 완전히 뒤엎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하게 다가온 대목은 '기억'에 대한 재해석이었다. 기억을 뜻하는 영어 단어 '리멤버(Remember)'는 어원적으로 "잊혔던 것을 다시(re) 마음(memor)으로 가져오는 행위"를 뜻한다.


하지만 책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를 'Re-member', 즉 다시(re) 구성원(member)이 되는 과정으로 설명한다. 우리는 본래 '사랑'이라는 거대한 전체의 일부였으나, 이 땅에 올 때 그 기억을 모두 지우고 분리된 존재로 태어났다. 신은 말한다. 우리는 이곳에 무언가를 배우러 온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던 우리 안의 신성(神性)을 다시 '기억해내기' 위해 왔노라고.


어쩌면 우리는 각자가 주문한 마법에 걸려 본모습을 잊고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책 속의 '작은 빛' 이야기는 울컥한 울림을 주었다. 늘 태양 빛 속에 머물던 작은 영혼은 자신이 얼마나 눈부신 존재인지 알지 못했다. 빛 속에만 있으니 '빛'이라는 개념을 인식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그 영혼은 어둠 속에 들어가 온갖 시련을 체험한 뒤에야 비로소 자신이 빛이었음을 알게 된다.


만약 우리가 세상에서 겪는 이 모든 일이 '내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체험이라면, 삶을 바라보는 태도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고통조차 스크린에 비친 영화를 보듯 조금은 거리를 두고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요즘 나는 오랜 시간 걸려 있던 마법에서 조금씩 풀려나는 기분을 느낀다. 리멤버. 내가 이 지구에 태어날 때 가지고 온 본질적인 기억은 결국 '사랑'이었음을 비로소 깨닫는다.


이제 나는 스스로에게,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조용히 묻고 싶다. 당신이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이나 환희 뒤에 숨겨진 '진짜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오늘, 어떤 기억을 되찾고 있는가. 당신이라는 마법에서 풀려나 본래의 눈부신 빛으로 돌아갈 준비가 되었는가.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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