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의 본능

내가 받고 싶은 온기를 먼저 건네는 일

by 해온 정옥랑

며칠 전 길을 걷다가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어르신 한 분을 만났다. 지팡이에 의지해 위태롭게 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행여 넘어질까 마음이 쓰였는데, 자세히 보니 오른쪽 운동화 끈이 풀려 있었다. 가만히 다가가 "어머님, 운동화 끈이 풀어져서 다칠 수 있어요. 제가 묶어 드릴까요?"라고 물었다. 어르신은 손이 닿지 않아 그냥 두었다며 환하게 웃으며 고맙다고, 천복을 받으라고 하셨다.


문득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누군가 무릎을 굽히고 운동화 끈을 묶어 주는 장면을 보며,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찾아오기를 꿈꿨던 적이 있었다. 내가 받고 싶었던 그 작은 배려를 누군가에게 먼저 건넸을 때, 내 안에는 낯설고도 신선한 기쁨이 샘솟았다. 받고 싶은 것을 먼저 주는 기쁨. '내가 받고 싶은 것을 상대에게 해 주라'는 황금률은 세상을 온기로 채우고, 동시에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가장 단순한 비결이다. 매달 한 번씩 하는 반찬 배달 봉사에서도 나는 이 마법을 경험한다. 정월 대보름을 앞두고 정성껏 지은 찰밥과 무나물, 돼지고기 볶음과 건파래 무침을 준비하며 나는 상상했다. 가끔은 누군가 나를 위해 이렇게 정성스러운 집밥을 차려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그 마음을 담아 음식을 드실 어르신들을 떠올리니 입가에 미소가 절로 번졌다.


나에게 건네는 따뜻한 선물. 이 따뜻한 마음은 타인에게만 향하지 않는다. 때로는 나 자신에게도 황금률이 필요하다. 오늘은 빈 화분에 심을 주황색 꽃과 노란 수선화를 샀다. 흙을 매만지며 꽃을 옮겨 심었더니 집안에 봄이 성큼 들어온 듯했다. 평소 절제하던 식습관을 잠시 내려놓고, 노릇하게 구운 수수부꾸미를 오롯이 즐겨보았다. 쫄깃한 수수와 달콤한 단팥이 도파민 분비를 도와 나에게 짜릿한 행복을 선사했다. 나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곧 타인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의 뿌리가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 안에 숨겨진 '홍익의 본능'. 인간에게는 생존을 위한 본능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열릴 때 비로소 고개를 드는 본능, 바로 '공존의 본능'이 있다. 나는 이것을 '홍익(弘益)의 본능'이라 부르고 싶다. 인류의 역사가 때로 잔인하고 차가웠을지라도, 우리가 지금까지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뇌의 가장 깊은 곳에 '함께 널리 이롭게 살고자 하는' 원시 정보가 저장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여전히 희망이 있다.

오늘 당신이 누군가에게 받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그것을 지금 바로 당신 곁의 사람에게, 그리고 당신 자신에게 먼저 건네보는 건 어떨까. 그 메아리는 당신의 마음으로 가장 따뜻하게 되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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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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