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잡힌 조화로운 아름다움
친구가 머플러 하나를 내게 살며시 건네준다. "너에게 참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샀어." 다정한 말 한마디와 함께 내 손에 들려준 머플러는, 손끝에 닿는 촉감만큼이나 부드럽고 빛깔 또한 은은했다.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은 팍팍한 일상 위로 색다른 즐거움의 결을 만들어내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여자들에게 머플러는 어떤 의미일까. 나에게는 때로 멋스러운 조화로움이며, 시린 계절의 목덜미를 파고드는 바람을 막아주는 따스함이다. 가을의 정취를 완성하는 한 조각 소품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텅 빈 마음의 구석을 가만히 채워주는 다독임에 가깝다.
생각해보면 내 머플러들에는 저마다의 추억이 묻어있다. 며느리가 생일 선물로 준 화사한 핑크빛 목도리, 가을날 트렌치코트 위에서 찰떡같은 조화를 뽐내던 갈색 사각 스카프, 그리고 작고 귀여운 쁘띠 목도리들지. 옷차림에 맞춰 머플러를 살짝 여미고 나면, 왠지 나도 근사한 패셔니스트가 된 것 같아 설레기도 한다. 옛 영화 속 여주인공들이 보자기처럼 머플러를 머리에 두른 모습은 지금 보면 조금 어색할지 몰라도, 그 시절엔 얼마나 우아한 낭만이었을까. 그것은 모자가 줄 수 없는, 조금 더 유연하고 결이 고운 아름다움이었다.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구는 어쩌면 여성에게 본능과도 같은 것일지 모른다. 여덟 살 난 손녀가 방학에 영어학원을 가며 선크림을 뽀얗게 바르고 색 립밤을 빨갛게 칠하는 모습을 본다. 나는 아이를 그저 바라보았다. 그 나이에만 누릴 수 있는 반짝이는 호기심을, 해보고 싶은 마음을 마음껏 펼치게 해주고 싶었다.
사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그 본능을 거부하며 살았다. 화장품이나 향수의 진한 냄새가 풍기면 숨이 막히고 거부감이 들었다. "여자는 애교가 있어야지"라는 말을 들을 때면 "뭐가 아쉬워서 남에게 맞춰야 하나"라며 날 선 반응을 보이곤 했다. 동화에서 왕자에게 의지하는 수동적인 삶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스스로 해결하면 안 되나? 내가 왕자를 구해주면 안 되나?' 예쁘고 착해야만 사랑받는다는 설정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나의 20~30대는 짧은 숏컷 머리와 화장기 없는 얼굴, 중성적인 옷들로 채워졌다. 여자라는 틀에 갇히지 않으려 애썼던 그 시절, 돌이켜보면 나는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채 스스로와 싸우고 있었던 것 같다. 강한 부정은 무의식의 가장 깊은 곳에서 보내는 강한 긍정이라는 말이 있다. 나 역시 예쁘게 꾸미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 나는 나에게 아무런 꼬리표도 달지 않기로 했다. 꾸미고 싶은 마음도, 거부하고 싶은 마음도 모두 나의 일부임을 그저 '그럴 수도 있다'고 받아들였다. 판단을 멈추자 마음의 균형이 찾아왔고, 딱딱했던 나의 마음도 머플러의 촉감처럼 한결 부드러워졌다.
조화로운 삶을 유지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은 숙제다. 때로는 흔들리고 때로는 다시 날이 서기도 하겠지만, 친구가 건네준 이 머플러처럼 나 자신을 부드럽게 감싸 안아주고 싶다. 나에게 갖고 싶었던 따듯하고 예쁜 모직 목도리를 하나 선물해야겠다.
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