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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노트 Nov 12. 2023

우리 시대의 아줌마


저는 아줌마입니다. 써 놓고도 어색합니다. 

낼모레 50이니 할머니로 가기 전, 아줌마 시기의 절정에 있다고나 할까요 ^^


남들이 들으면 웃을 일이지만 전 아직도 이 단어가 익숙하지가 않습니다. 아마 그렇게 많이 불리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사무실에서는 직급으로, 친구나 가족관계에서는 이름이나 엄마로 불리니까요.


생각해 보니 아이들 초등 1학년 때 휴직을 하며 집에 있을 때 가장 많이 들어 본 것 같아요. 아이 반 친구들 녀석이, 짧게 자른 제 머리를 보고는,


'아줌마, 남자 같아요!! ' 하기도 하고,


'아줌마, 여기 해운대 가는 버스 오는교?' 하고 지나가는 할머니가 자연스레 묻기도 했지요.


이런 얘길 들을 때면, 이미 나를 부른 호칭에 당황해 정작 뒤에 말에 집중을 못 한 적이 많았습니다. 그 단어를 충분히 듣고도 남을 나이인데 말이죠. 아마 익숙함의 차이겠지요.


요즘, 김훈 작가님의 '라면을 끓이며'를 읽고 있는데요 작가님이 이 단어에 대해 묘사해 놓은 글이 재밌어서 우리 이웃님들과 한번 공유해 봅니다.  


아줌마는 성적 긴장의 날이 서 있지 않다.


풀어져 있고, 퍼져 있다. 


질감은 펑퍼짐하고 뭉툭하고 


무디고 질펀하다. 


지하철의 좁은 자리에도 옆 사람을 압박해가면서 엉덩이를 들이밀고, 


껌을 씹으면서도 거침없이 소리를 낸다. 


한 번의 입동작으로 딱, 딱, 딱, 세 번 소리를 낼 수 있는 신기한 아줌마도 있다. 


재래시장 좌판에서 봄나물을 살 때, 물건 파는 할머니를 윽박질러서 기어코 


한 움큼을 더 집어온다. 


아줌마는 고3의 재수 삼수 뒷바라지를 


해야 하고 수능시험 때 절에 가서 빌고, 


입영열차 플랫폼에서 운다.


김훈의 <라면을 끓이며> 중 '여자6'  259P 중 일부 발췌



이 책이 2015년에 발간되었으니 지금으로부터 약 10여 년 전입니다. 그렇다고 아줌마의 속성이 변한건 아니지만, 위의 글을 읽으니 그들의 삶에 대한 '억척스러움'이 떠올랐습니다. 재래시장에서 기어이 할머니의 채소를 한 움큼 더 가져오고, 500원을 깎고, 비좁은 지하철 좌석 사이를 비집고 앉는 것, 아이를 위해서라면 1800배도 거뜬히 하는 천하무적의 모습 말이지요.


그런데 세월은 흘렀고 요즘 아줌마들의 나잇대가 10살은 더 많아진 것 같아요. 즉 예전엔 50대가 아줌마의 전성기였다면 지금은 60대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저처럼 대중교통을 이용하시는 분들은 아실 거예요. 60-70대 분들이 예전 우리가 부르던 아줌마의 모습이라는 것을요. 그분들은 살아온 세월이 먹고사는 문제에 치열했기에 그럴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럼 지금의 40-50대 아줌마의 모습은 어떤가요? 외모를 잘 관리해온 사람들은 10년 정도는 젊어 보이고 미혼인 경우도 많으며, 온라인으로 쇼핑을 하는 등 소비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자차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굳이 치열하게 엉덩이를 들이밀 필요도 없고요. 


그럼 나의 위치는 어디쯤인지 생각해 보니, 그 중간쯤에 있는 것 같습니다. 

눈치껏 재래시장에서 흥정도 할 줄 알고, 지친 다리를 쉬게 할 지하철 빈자리도 재빨리 스캔합니다. 어딘가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뭔가 좋은 게 있나 싶어 적당히 비집고 들어가 확인도 하고요. 

시장도 아닌 어느 구석진 동네 모퉁이에서 몇 안 되는 야채를 팔고 있는 할머니의 물건을 사 주는 여유도 있고, 하교하는 아이들이 핸드폰에만 정신을 쏟아 위험해 보이면 저도 모르게 엄마가 되어 타이르듯 혼내기도 합니다.


'얘야, 걸을 때는 핸드폰 꺼야지, 위험해!' 


공공시설에서는 입을 다물고 조용히 껌을 씹으며, 마을버스가 다가오면 어디서 나타났는지 슬며시 새치기하는 선배 아줌마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기도 합니다. 사람 상대하는 게 어떤 건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분들에겐 최대한 겸손하게 대하려 노력하지요.


지금 바로, 우리 나이가 이 사회를 이끄는 중심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 가정이, 사회의 모습이 변할 수 있지요. 위로는 우리 선배 아줌마들의 삶에 대한 억척스러움과 바지런함을 배우고, 빠르게 변하는 세상살이에는 재빨리 적응해서 아래 후배들과도 잘 어울리며 소통해야 합니다. 그래서 위 세대와의 다리 역할도 해야 하고요. 지금 회사에서의 제 위치처럼 말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아줌마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다섯 살 정도는 어려 보일 정도로 건강과 체력관리에 열심이고,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잘 이해하여, 자기 목소리를 낼 줄도 알아야 합니다. 사회 약자에 대해 관심을 가지며 우리 부모님 세대와 자식들이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환경과 분위기 조성, 그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정의롭고 지혜로운, 활기차되 경박하지 않는 그런 아줌마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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