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내린 비로 상큼한 일요일 아침,
여기저기 봄꽃 피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봄이 가까이 왔음을 느낀다.
목련의 봉오리가 제법 커져 며칠 내 벌어지고, 열흘쯤 뒤면 벚꽃도 만개할 것 같다. 우리 아파트가 오래되긴 해도 단지 내 나무들이 크고 좋아 벚꽃이 장관을 이룬다. 벚꽃이 지고 나면 옆 라인으로 느티나무의 연 두 잎들이 돋아나고 그 어린잎들 사이로 비치는 햇살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모처럼 반찬을 몇 가지 만들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썩어갈 야채들이 보여 있는 재료로 무치고 볶고 하였다.
윤고은의 EBS 북카페연출박미나, 이은정출연윤고은방송2019, EBS 라디오
주말에 집에 있을 때면 언제나 듣는 EBS 윤이 고은의 북 카페, 오늘도 두 시인이 나와 시를 낭독해 주며 그 느낌과 표현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낭독한 시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일요일 온 가족이 오후까지 낮잠을 자고 일어나 뒹굴뒹굴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갑자기 울린 초인종 소리에 놀랐는데 택배아저씨라 휴 하며 다행이라 여겼다는 이야기를 몇 줄로 산문처럼 표현한 시였다.
낭독을 들으며 장면을 상상하니 얼마나 나른하고 행복한 일요일인지 나도 당장 낮잠이 자고 싶을 정도였다. 이런 지극히 평범한 일상도 소재가 되구나 하고 생각하다, 문득 우리 식구는 언제 이런 시간을 가졌나 떠올려 보았다. 온 식구가 다 같이 낮잠을 잔다는 게 요즘엔 절대 평범한 일상이 아닌 일이다.
시인의 온 식구는 일요일 오후 꽤 긴 낮잠을 함께 잤고, 일어나서도 여전히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출출해지면 다 같이 라면을 끓여 먹어도 좋은, 그런 날이 그려졌다. 요즘은 일요일이라고 해도 아이들과 부모 모두 각자의 일정이 있어 네 식구 모두 모이기가 쉽지 않다. 저녁밥 정도나 같이 먹지 낮 시간은 제각각 할 일에 바쁜 게 현실이다.
우리 집만 해도 그렇다. 남편은 언제나 낮잠에 최적화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 잘 준비된 사람이고, 딸아이도 낮에는 침대와 한 몸이니 걱정할게 없다. 문제는 아들과 나다. 아들은 주말이면 주로 친구들과 축구하러 오전에 나가 저녁이 다 되어서야 들어온다. 나는 낮잠도 없거니와 이것저것 할 일과 미뤄 둔 공부가 많아 여전히 분주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제일 문제다. 아무것도 안 하고 쉬어 본 주말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다.
가끔 딸아이 침대에 함께 누워 이런저런 장난을 치다가도 이내 할 일이 생각나 벌떡 일어나곤 했었다. 딸이 조금 더 있다가 가라고 해도 이럴 시간이 없다며 뿌리치고 일어났었다. 일요일은 시간이 더 빨리 지나가기에 자주 시간을 보며 할 일을 하지 못했음에 늘 마음이 분주했다. 겉으로는 여유 있는 일요일인데, 마음속은 늘 해야 할 것들로 어수선했다. 그저 멍하니 베란다 의자에 앉아 꽃을 감상하거나 지난 일주일을 어찌 살아왔는지 되돌아봐도 좋으련만, 머릿속엔 늘 할 것들로 여유가 없었다.
일요일은 그냥 온전히 한번 쉬어보기.
멍하니 베란다 의자에 앉아 커피 마시며 햇볕 쬐기. 읽고 싶은 책을 읽다 이내 잠들기. 부스스 일어나 식탁 위의 이것저것 챙겨 먹고 좋아하는 라면을 끓여 김치와 맛있게 먹기. 안 보던 티브이도 멍하니 보며 입 벌리고 웃기. 아이들과 간간이 농담하기.
일요일은 조금 여유 있게 퍼질러 누워 멍하니 천정도 바라보며 벽지 색깔이 무슨 색인지, 무늬는 어떤 건지 바라보는 여유를 즐겨봐야겠다. 일요일은 그래야 한다.